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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Nov 19. 2019

언제나 신과 함께

취업을 하고 돈 문제가 해결되고, 우울감이나 공황도 다 사라줄 알았다. 요즘은 넷플릭스 보면서 해피한 시간을 보내는 양이 많다. 그런데도 가끔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진짜 이상한 생각-직장에서 짤린다든가 친한 사람이 죽는다거나 등등 을 붙잡고 늘어지거나 욕심이 생길 때 마음이 불안정했다. 최근에 정토회에서 탐진치를 배웠다. 그것도 결국 욕심과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말한다. 탐진치의 끝은 고통이다. 


정신의학자 정현수 박사에게 공황장애 환자가 찾아왔다. 그는 직장 동료가 옆에서 죽는 걸 보고 그런 증상이 왔다고 한다. 그때 정현수 박사는 "오로지 현재에만 관심을 가지라"고 처방을 내렸다. 


나도 불안이 오면 결국엔 '현재'에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현재가 가지는 묘한 쾌락이 있다. 그건 세계테마기행 같은 잔잔한 프로그램을 보거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특별할 것도 없는 목소리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어쩌면 현재를 '탐닉'한다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집중하면 그제야 불안이 사라진다.


민수가 찍어준 ㅋ 경남대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불안을 붙잡고 있던 것은, 탐진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란 것을. 나는 불교라는 종교가 완벽하지만 유일한 단점이 바로 섬기는 신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리는 대부분 알 수 없는 미래에서 불안을 얻는다. 내 인생이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그리고 우리가 욕심을 내는 이유도 믿음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욕심을 내고 어딘가에 집착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어떤 형상, 이미지를 욕심내고 집착한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나에게 사랑과 만족을 준다면 우리가 굳이 어떤 것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좀 어려운 얘긴가?)


(예를들어) 나는 예전에 강박적으로 거울을 보고, 잘생기길 원하고, 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나는 신이 주신 매력이 있으며, 내 옆에 어떤 존재가 나에게 힘을 준다고 여기면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편안해질 것이다. 누군가에게 집착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믿음의 문제이다. 


우리가 불안한 것은 대부분 어떤 사고가 생길까봐 불안한 거고, 미래에 최악의 일이 일어날까봐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신이 있어서  나에게 절대 그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어보자. 그 사실을 안다면, 내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지더라도 아빠가 나를 밑에서 잡아줄 것을 안다면 불안할 이유가 없다. 


에픽테토스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 심리학자들이 말한다. "일어난 사실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이 문제라고" 나는 그 말 자체가 신의 증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어난 사실 자체가 문제가아니라는 뜻은 지금 이 존재와 순간이 결국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한다. 불교로 따지면 공의 개념이다.  나는 공의 개념을 넘어 위태로워 보이는 이 순간이 결국 '괜찮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지금 이 순을 내가 망치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것이다. 


신이 내게 가장 큰 위안을 줄 때는 지금까지 그랬지만 이번 에도 '괜찮을거야'라는 그 말한디다. 그렇다. 우리는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아무리 현재가 위험해보여도 마음이 평안할 수 있다. 


우리는 원래 부족한 존재이고, 세상과 우주의 일을 1도 모른다. 그래서 불안해하고, 뭔가를 바라고, 집착해왔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을, 한시도 빠짐없이 느낀다면 다 괜찮을 것이다. 인간의 약점은 이렇게 믿음으로 극복해야 한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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