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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Apr 07. 2023

내가 만들어갈 세상은?

요즘 든 생각.


최근 모습. 흰머리ㅠ

독서모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요즘 소설들을 읽었는데 깜짝 놀랐다. 내용이 감당하기 버거웠다. 청소년에게 해롭다고 할까. 정보라의 단편소설집 ‘아무도 모를 것이다’에는 자신에게 피해를 줬다는 이유로 가해자도 모자라 그가 소중히 여기는 딸까지 가차 없이 처형한다. 복수 전문작가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작가는 “내 이야기에는 교훈 따위는 없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축하고 써내려갔으니 내용이 짐작이 간다. 더구나 소설을 쓸 때에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고 한다.


설재인의 단편소설집 ‘사뭇강펀치’ 에서는 자신의 가족까지 감금하거나 살해하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소설에 나오는 남자는 하나같이 여자 몸을 탐하거나, 몰래카메라로 여성을 촬영해 돈을 벌거나, 여성을 억압하고 비하한다. 작가의 시선은 남성에 대한 혐오, 복수심, 증오로 넘친다. 심지어 그의 분노는 같은 여성이자, 가족인 친동생에게까지 향한다. 자신의 인생을 갉아먹는다는 이유로 언니가 친동생을 빌라 지하실에 감금하는 장면도 나온다.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지하실에서 동생에게 “샤넬백 이제 필요없지? 언니가 할게~”라고 하는 장면은 진짜 섬뜩하다.


정소현의 소설 '가해자들'에서 1111호 여성은 윗층에서 소음이 있다는 이유로 자기집 거실 천장에 우퍼를 설치해 브리트니스피어스 TOXIC 음악을 반복적으로 틀어 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봉으로 천장을 계속 친다. 그의 아래층에서 5개월 된 아이가 운다는 이유로 고의로 발소리를 내어 복수한다. 옆집도 시끄럽다면서 벽을 치면서 괴롭힌다. 이웃 간의 배려는 없다. 심지어 소음이 잘 들리지 않자 벽에 귀를 바짝 대어 기어이 소음을 찾아냈을 때 섬뜩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부정적 감정이 지배하는 세상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내가 볼 때 역사는 부정성과 긍정성의 투쟁이다. 지금 이 시대는 혐오, 복수, 집착, 편견,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시대인 것 같다.


요즘 소설에서 보여주는 이런 세태를 해체주의와 연관 지어 생각했다. 아직 포스트모더니즘은 진행되고 있다. 질서가 해체되고 있다. 종교와 전통, 공동체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자본주의 가속화와 더불어 해체는 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극단적인 경쟁과 효율성 추구는 가족도 해체시키고 있다. 그러니 갈등이 생길 때 굳이 남의 말을 들을 필요없다. 직장 상사의 말도 들을 필요 없다. 가족의 말도 들을 필요 없다. 그저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하고, 남들은 미워해도 상관없다. 배척하면 그만이다. 그게 가장 깔끔하다고 믿는다. 이런 해체주의 상황이 부정적 감정을 더 자극하는 것 같다.


이런 시대의 특징은 (자크 라깡이 말하는) 부권의 기능이 약해진다. 초자아(또는 자아)의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다. 미국에는 노키즈존이 최근에서야 생겼다고 한다. 미국은 그동안 종교적인 질서가 있다 보니 자녀들에게 예의를 엄격하게 가르쳤다. (최근에는 아이를 적게 낳다 보니 귀하게 키워서 떠드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이들이 더 시끄럽다고 한다.


또한 경쟁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MZ들은 ‘공정’의 가치가 중시되고 권리의식이 투철하다고 한다. 지나치게 법에 의지하고, 법을 어긴 사람들은 처벌로써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요즘 세대의 지나친 공정 의식을 보여주는 예시가 있다. 지난 2021년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방과후 설렘’에서 심사위원으로 나온 유리가 실력 대신 외모가 예쁜 지원자를 편들다가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아이돌을 뽑을 거라면서 외모를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농구선수를 뽑는데 실력이 낮아도 키가 큰 사람을 뽑는 게 잘못인가.


또한 공동체가 사라지다 보니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미워하기 쉽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경험담, 꼰대들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없다 보니 실제 인생에 시련이 왔을 때 취약하다.


근대시대까지만 해도 거대담론이었던 이성(理性)과 합리성도 해체수순이라, 오히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정신의학자 프로이트도 거기에 한몫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쉽게 자기연민에 빠지고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분노, 나쁜 짓을 한 사람에 대한 증오가 자리 잡기 쉽다.


-부정적 감정에 집중하는 이유


사람들이 이러한 부정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유는 알겠다. 우선 그 감정 자체만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쾌감이 있다. 이외에도 생존에 필요한 여러 이점이 있다. 공포를 느낌으로써 우리는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다.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도, 그것이 있어야 다른 강한 존재에게 위협을 가할 힘을 생기고, 자신의 영역과 가족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슬픔이나 연민도 그런 감정이 있어야 자신의 종족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다.


욕심이나 집착도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미덕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도 부정적 감정임에는 틀림없다. 불교는 인간의 모든 부정적 감정이 다 욕심이나 집착에서 비롯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라캉도 대상a라는 개념을 들어 어떤 대상에 대한 지나친 선망이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다고 한다. 프로이트 또한 지나친 사랑(집착)은 쉽게 증오로 전환되기 쉽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프로이트가 말하는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적 감정이 좋지 않은 이유


부정성은 그들을 위해서라도 좋지 않다. 우선 부정적 감정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내 피를 빨아먹고 유유히 비행하는 모기를 봤을 때 분노에 차서 풀스매싱으로 죽인다고 해서 뭐가 문제겠는가? 하지만 세상에는 모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결국 사회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그 속에는 복잡한 인간관계와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화를 내는 그 순간부터 사회로부터 매장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자신을 스토킹한 남성에게 최대한의 벌을 주고, 접근도 하지 못하게 했지만 결국 그에게 살해당하는 안타까운 예도 있다. 가해자에게 비굴하게 행동하라는 말이 아니라, 부정적 감정이나 강력한 처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동체의식에 바탕을 둔 사법제도 개편으로 이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라는 책을 보면 뉴기니 부족들이 개인 간의 분쟁이 생기면 족장(사법기관 역할)이 우선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면시켜 충분한 대화로 해결을 시도한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갈등은 사전에 원만히 해결된다.)


-긍정적 감정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역사가 부정성과 긍정성의 투쟁이라고 했듯이, 이제는 긍정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성에는 사랑, 이해, 감사, 존중, 상생, 공동체 의식, 합리성 등의 가치가 있다. 인류가 더 이상 부정적 감정이나 비합리성에 빠지지 않고 긍정의 가치를 ‘선택’한다면 세상의 많은 부분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감정을 선택(윌리엄 글래서의 ‘선택이론’ 참고)한다고 보는데, 긍정적 감정을 느끼기를 선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내가 쓴 책 ‘공황과 불안의 극복’이나 내가 쓴 논문 이기론(理氣論)에서 이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경쟁, 욕망, 집착, 증오에서 동력을 찾지 않으면 인류가 새롭게 세상을 재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세계에서는 무분별한 발전을 멈추고, 기후위기도 적극 대응할 것이다. 우리가 그런 대단한 사회적 결단을 내릴 수만 있다면 자본보다 인간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인간적인 새 문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일기를 쓸 때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통계도 많다. 심리학계에서 긍정심리학이 새로운 기류로 떠오르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내가 공황장애를 극복한 것도 감사일기와 명상의 힘이 컸다.


합리성도 찾아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감정적으로 되거나 자기연민에 빠진다. 나는 mbti의 t가 f의 진화형이라고 말한다. 실제 사회에서 많은 시련을 겪다 보면 점점 t로 변한다. (현재 mbti에서는 긍정적 공감에 잘 반응하는 사람과 부정적 감정에 잘 반응하는 사람을 묶어서 t로 결론 내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둘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mbti도 맹점이 있다.) 또한 내가 공황장애를 치료한 요인도 막연한 감정에 빠지기보다는 합리성을 찾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투자자 모집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위해 우선 긍정심리학 모임을 만들 것이다. 이 모임에서는 감사일기를 쓰고, 긍정적인 마음의 변화를 주는 기적을 공유할 것이다. 합리성을 가지고 마음일기도 쓸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소망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을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앞으로 이런 일을 하라고 내게 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가 ‘돈이나 벌어오라고, 일이나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인류를 위해 분명히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데ㅠ 빚이 있는 프리랜서 기자로서 이런 일을 할 수 없어 서럽다ㅠ 생활비때문에 곰탕집 홍보 기사나 쓰고 있다.


역사를 바꾼 사람들 옆에는 그를 지원해준 후원자가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생활비를 줬다. 마르크스도 친구 엥겔스가 자본론 집필에 전념하도록 돈을 후원했다. 베토벤도 그가 유명해지기까지 그의 능력을 알아본 라즈모프스키 백작이 전폭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교황곡 5번(운명)과 6번(전원)을 내고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나도 이런 후원자가 필요한 것 같다. 지원이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왜냐하면 투자한 사람들에게 200% 정도는 되돌려줄 계획이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보다 수익률이 낫지 않을까. 수익 모델도 있다. 우선, 유튜브(채널명-참새의 인문학)로서 수익을 낼 것이다. 현재 영상 49개에 구독자가 544명인데,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꾸준하게 영상을 올리면 금방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인문학 콘텐츠를 기본으로 하면서 내 꿈과 이상을 영상에 담을 계획이다. 기자를 하면서 콘텐츠 만드는 것에도 요령이 생겼기 때문에 잘할 자신이 있다. 그 외 긍정심리학 모임을 비롯해 감사일기 쓰는 방법, 인간관계·사랑에 대한 다양한 인문학 컨텐츠 오프라인 강의로도 수익 모델을 생각할 수 있다. 진짜 아무 걱정 없이 이런 일만 하면 좋겠다. 지금 버는 것보다 한 50~70만원만 더 있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어필, 내게 투자하면 좋은 점. 인류 역사가 바뀌는 과정을 직관할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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