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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젤 Dec 20. 2021

[영화] 첨밀밀 (Comrades, 1996)

도시는 달고 단 꿈을 먹고 산다

고단하고 외롭다. 달콤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영 짠내 나는 표류기에 가깝다. 둘도 없어 죽고 못 살 사랑이라기보다는, '되고 싶은 나'보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를 찾아가는 여정에 가깝다고 할까. 아마도 영제인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만큼 적절한 제목은 없을 것이다. 원제인 첨밀밀이라는 제목은 오히려 그래서 역설적이다. 이 영화는 절대 꿀처럼 달고 또 달콤(甛蜜蜜)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시골 사람의 짠내나는 도시 생존기 / @ 공식 스틸컷


되고 싶은 나와 열심히 사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는, 지금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나 지금 내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의 존재가 갈급할 때가 있다. 열심히 사는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삶을 이어가게 될 듯한 사람 말고, 표류하더라도 새로운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지금 내 모습 그대로 정착할 수 있 - 을 것처럼 보이 - 는 사람. 그게 소군에게는 이요였고, 이요에게는 표형이었다. 그게 각자가 생각한 안락한 삶은 아닐지라도.


반면 이요에게 소군은 자기의 감정과 욕망, 지극히 속물적인 꿈을 꾸는 스스로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존재다. 둘은 서로의 목표와 결과가 아니고, 과정 속에서 만난 동지이기 때문이다. 소군에게 이요 역시 '이상적으로 되어야 하는 내 모습'이 아니어도 되는 존재이다. 한편으로는 동반자적인 애착의 대상이기도 하다. 힘든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애착의 대상을 선택한 오리새끼 같은 것.


그러나 사람은 또한 현실이 아닌 미래를 산다. 미래를 생각했을 때, 이요에게 소군은 나와 또 다른 사람을 같이 사랑하는 사람 - 그렇다 소군은 다른 여자의 약혼자이다. 사실 소군이 현실적으로는 호구이나 감정적으로는 너무나 우유부단 쓰레기라 - 이자 불행한 상태에서 현실적으로도 힘들고 내게 어떻게 베푸는지 모르는, 기댈 수 없는 사람이다. 소군에게 소정은 내 이상적인 계획안에 있기 때문에 그 계획대로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사람, 책임져야 하는 사람, 그래서 기댈 수 없는 사람이다. (물론 사람이 그렇기만 하겠냐만은 적어도 극에서 나타난 그들의 인식 속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이요는 소군을 떠나고, 소군은 소정을 떠난다. 외로움과 시간이 쌓은 정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선택지가 달랐던 건 그래서 어쩔 수 없던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다소 시니컬하다. 어차피 표류하는 속성의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고 해서 안정을 찾을 리는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동지였고, 동지여야만 한다. 함께 표류하고 방황할 수 있는 사람. 그 이상의 행복을 서로에게 찾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이상 없이 현실만 있는 관계는 그것대로 유지가 어려우니까.


차라리 영어강사와 매춘부처럼 둘 중의 하나가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같이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관계가 그렇다. 현실보단 구름 같은 관계. 그래야만 하는 관계. 한 번의 데이트를 품고 살아가는 소군의 친척도 그렇지 않나. 같이 표류할 수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걸지도. 홍콩이라는 부산스럽고 혼란한 상황적 배경 때문일지도. 사실 대도시와 도시 이주민이라는 것이 그렇다. 계급과 재산과 꿈과 욕망이 뒤섞이는, 적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꿈을 슬깃 보여주는 그런 곳.  사람이 재회한 뉴욕도 역시 그렇다.


현실에서만아니라 꿈을 같이 그릴 때에도 둘은 여전히 동지일 수 있을까. 같은 목표를 그리며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과연.


@ 공식 스틸컷


도시는 달고 단 꿈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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