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젤 Dec 26. 2021

[영화] 루비 스팍스 (2012)

전지전능해서 무력한 나만의 너

사람은 다면적이고,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엉망진창이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의 뇌는 전력으로 상대를 이상화하지만, 이상화의 과정이 지나가면 상대의 복잡함을 이해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와 함께 내 이상에 맞춰서 상황이나 상대를 조종하고 바꾸고 싶다는, 조금 유치하고 조금 섬뜩할지도 모를 욕망이 생겨난다. 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고 표현하고 행동해주지 않지? 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랑을 이어나가는 게 어려운 건 그 이상화를 깨어내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상을 깰 필요 없이 상대를 내 취향대로 다 맞출 수 있는 관계는 어떨까. 그 관계에서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루비 스팍스>는 그런 상상에 기반한 영화다.




이하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감상.


@ 공식 스틸컷


신작에 대한 부담감에 답보 상태에 빠진 소설가 캘빈은 상담가의 조언을 얻어, 완벽한 이상형을 그리며 소설을 쓴다. 그 이상형은 '약간 성적으로 개방적이지만 사실 순수하고 나만을 바라보는' 루비로 실체화된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상형 그 자체. 캘빈은 당연하게도 루비와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이상형이니 고난이 없을까? 그럴 리가. 캘빈은 루비에게 자신의 존재와 재능을 모두 의탁하고 있다. 의존하는 자는 조종을 하기 마련이.


빈은 이내 루비에게서 맘에 들지 않는 모습을 찾아내고, 다시 타자기 앞에 앉아 자잘한 행동부터 시작해 루비를 계속 자신에게 맞추어 나간다. 때로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사람으로, 때로는 자신에게 무심한 사람으로. 그 과정은 때로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needy 해진 루비 / @ 공식 스틸컷


루비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마다 타자기에 앉아 루비를 바꾸어나가는 캘빈의 눈빛과, 원하지 않는 춤을 추며 울고 웃던 루비의 공포에 질린 눈빛은 그 둘의 아름다운 추억에 대비되어 더욱 처참하다.


목 조르는거 아닙니다 / @ 공식 트레일러


상황이든 사람이든, 뭐든 내 마음대로 된다면 모두 즐겁고 행복할까. 불편하고 바꾸고 싶은 감정을 들게 하는 어떤 상황에서, 그 자체를 해결 - 상대와 상황을 바꾼다거나 - 하거나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맞추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전자만을 택하다 보면 해결하다가 종국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맞추어간다는 건 해결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 자체를 귀찮지 않을 만큼 즐거워하는 게 삶의 의미인 듯도 하다.


미래가 현재의 미래라면, 계속해서 바뀐다면, 미래를 보아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면, 무력하기도 완전하게 전지전능한 것 같기도 하겠지. 그 기분이 권태나 공허 혹은 본능적인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루비 스팍스에서도 감정적인 불만족스러움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 상대를 바꿨는데, 그러다가 상대를 사랑하는 과정의 즐거움과 상대와 맞춰가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 결국 사랑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은 게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판타지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현실 연애에 맞닿아있는 픽션.


다르고 또 같은 시작 / @ 공식 스틸컷


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오픈 엔딩의 결말이니, 조금 성숙해지고 달라진 주인공(들)에게 희망을 걸어보아도 좋지 않을까.




이 영화의 각본은 루비 역할을 맡은 존 카잔이 쓴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최근 리뷰를 썼거나 쓰고 있는 영화들은 감독 또는 배우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서 직접 각본을 쓴 이야기들이 많다. 6 years, 반쪽의 이야기, 루비 스팍스 모두.


사랑을 막 시작하는 그 즈음에, 너와 나의 자아의 경계에서 마주보고 애착을 형성해가는 모습들을 날 것으로 포착해내는 느낌. 너무 날 것이라 공감성 수치도 평점이 낮은 이유에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있는 작품들이어서, 울림이 크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지는 것 같다.


가족이던 연인이던 친구이던 사랑과 교류는 경계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하는 손바닥 치기가 아니라 경계를 마주 대고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거라는 걸 깨닫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알아도 행동하기는 쉽지 않고.


때로는 현실의 단면을 잘라낸 영상들 보다도, 현실의 고민과 감정을 담아낸 픽션이 더 본질과 맞닿아 있다. 조금 날 것 같고 섬찟하고 부끄럽고, 그래서 울림이 있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알게 될 때는 많이 기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첨밀밀 (Comrades, 199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