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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젤 Jan 08. 2022

[영화] 소공녀(2018)와 거짓말(2014)

남루한 고상함과 고상한 남루함 사이에서

우리는 척하는 시대에 산다.


"Fake it till you make it" 이 이 시대의 격언이 아니던가. 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능력의 상징인지, 사업한다는 사람들은 겉치레에 그렇게들 신경을 쓰는지 알지만 모른 체하기 일쑤다.


남루한 현실 속에서 척하지 않는 <소공녀> 속 미소의 고상함과, 끊임없이 고상한 척을 해야만 살 수 있는 <거짓말> 속 아영의 남루함은 일견 날카롭게 대비된다.


<소공녀> 스틸컷
<거짓말> 스틸컷


'난 너만 있으면 되는데' 라며 배시시 행복하게 웃는 미소와 행복하게 보이고 싶다며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아영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해 보이는지야 너무 명확하다. 영화 내내 보이는 주인공의 표정에서, 밀려드는 찜찜함과 소름 끼침에서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미소와 연인이 난방 안 되는 방에서 껴안으려다 추워서 그만두는 장면에서는 슬프지만 사랑스러워 웃게 되고, 아영이 몰래 비밀번호를 외워둔 고급 빌라에 차려입고서는 생필품을 잔뜩 사들고 들어와 식사를 하는 장면은 소름끼침의 정점을 찍는다.


그래서, '슬프지만 사랑스러운' 미소의 삶이 아영의 삶에 대해 KO승이라고 보아도 될까?


<소공녀> 스틸컷
<거짓말> 스틸컷


그러기는 어렵다. 영원히 그때가 좋았다며 밴드 시절을 그리워하는 미소의 해맑음은 물론, 끝내 찜찜함이 목덜미에 엉겨 붙은 채로 극을 닫는 거짓말 속 아영의 뒷모습도 어쩐지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덜 그런 척해도 되는 것일 뿐. 나의 취향을 빚은 과거와 그 취향 속에서 유영하는 미소와, 현재의 삶을 부정하며 미래를 향해 부유하는 아영 중 어느 쪽이 더 붕 떠있는지는 모른다.


<소공녀> 스틸컷
<거짓말> 스틸컷


그렇게 두 사람은 '아슬아슬함'을 공유하고 있다. 노숙을 선택한 미소는 내일 겨울 거리에서 얼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고,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영은 마지막 장면의 고급 아파트에서 뛰어내려도 이상하지 않다.


교차점에서의 역설일까, 중에서도 '척하지 않는' 미소의 주변인들은 미소의 척하지 않음을 이용하거나 미소의 대책 없음을 견디지 못해 떠나가고, 끊임없이 '척하는' 아영의 연인은 - 그 역시 사기꾼의 소질이 있다 하더라도 - 그런 아영을 끌어안는다. 미소의 연인이 너만 있으면 된다는 미소의 손을 슬픈 표정으로 놓는 장면과,  아영의 연인이 자신을 포함한 삶 자체를 부정하는 아영의 손을 잡는 장면은 대조를 이룬다.

 

<소공녀> 스틸컷
<거짓말> 스틸컷


누가 더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행복하지만 아슬아슬한 현실과, 불행하게나마 꾸며내어 만들고 있는 현실 속에서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건 정말 각자의 가치관 - 너희는 멸시당하고 구박받더라도 노동의 신성함을 알아 미소 지으며 꾸준히 노동하거라, 도 아영의 허영심만큼이나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작동 원리처럼 보이는 건 조금 비뚤어진 것이겠죠? - 에 따라 답이 다를 것 같지만.


<소공녀> 스틸컷


이래저래 요모조모 고민해 보아도, 둘 중에 택해야 한다면 나는 전자다. 한 개인으로서는 아슬아슬함 속에서 개인을 구출해 줄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도, 거대한 꿈과 이상도 아니다. 절벽에서 손을 놓지 않는 힘은 행복한 기억과, 웃을 수 있는 기력, 지금 하는 일을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에서 오는 거니까.


한 번 더 웃는 쪽이 조금 더 오래 간다. 그러니까 미소와 남루한 고상함의 아슬아슬한 판정승.


KO승은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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