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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꾼 Sep 26. 2023

정착과 유랑 사이, 우리가 삶의 터전을 구축하는 방식4

<미나리>와 <노매드랜드>를 중심으로 

따로 또 같이더불어 사는 미학


  끝으로 <노매드랜드>와 <미나리> 모두 ‘경제적 부흥의 실패’라는 비극적 요소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결코 절망으로 귀결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를 언급하고 싶다.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연대의 미학’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들의 ‘연대’는 어떠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결성된 것이 아닌 더부살이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이다. 

  2세대 이주민인 데이빗이 할머니 순자와 함께 방을 쓰면서 겪는 일화를 생각해보라. 어린 데이빗에게 순자는 의문투성이일 것이다. 미국인 할머니처럼 쿠키를 만들지도 않는데다가 한약 재료를 가지고 와서 몸에 좋다고 달이는 모습은 어딘가 이질적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교류가 원만하지 않았던 1980년대라는 것을 가정하면 순자의 행동은 더욱이 데이빗한테 생소하고 낯설다. 때문에 데이빗은 할머니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할머니한테서 냄새가 나요, 할머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와 같은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데이빗의 시각에서 순자는 이방인 그 자체다. 그러나 순자는 그런 데이빗을 나무라지도 않고 보듬는다. 순자의 이런 모습은 손주들한테 내리사랑을 베풀어 온 동양의 전통주의적 사고방식을 연상케 한다. 무조건적인 반항과 무조건적인 포용의 불협화음 사이에서, 영화는 순자와 데이빗의 서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아주 서서히 상대를 가족 구성원, 공동체의 일부로 인식하게 되는 시간을 담아낼 뿐이다. 그러기에 데이빗이 마지막으로 순자에게 꺼낸 말은 ‘할머니 잘못했어요,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 아프지 마요.’ 와 같은 말이 아닌 ‘할머니 어디 가요? 같이 집으로 가요’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상대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는 것, 연대란 자고로 같이 사는 행태를 인정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순간이다. 

  연대의 모습은 <노매드랜드>에서도 빈번하게 목격된다. 펀은 캠핑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아끼는 물건들을 주고받는다. 물자가 풍족하지 않은 길가에서 받은 라이터나 커피, 주방 도구들은 서로의 생활을 보충해주는 보충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언젠가 건넸던 구식의 라이터는 새로운 디자인의 라이터로 돌아오기도 하고 호의로 베풀었던 커피는 어느 날의 만찬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타이어가 펑크 나거나 페인트를 칠해야 할 때, 캠핑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누구보다 먼저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지금의 도움이 훗날 또 다른 도움의 손길로 이어져 결국엔 그네들에게 다시 돌아오게 되리란 걸. 비록 길 위에서 만난 이들이지만 그들은 서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함께 소통하며 물물교환을 하고 추모의식을 하기도 한다. 엔딩 부근에서 펀은 길에서 만난 밥이라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밥은 길 위에서의 삶이 좋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길 위에서는 영원한 작별이 없어요. 나는 절대로 완전한 작별인사(Final Goodbye)를 하지 않아요. 그리곤 만나요. 1달 뒤든, 1년 뒤든 또는 먼 훗날 언젠가는 그들과 다시 만나죠.’ 이 지점에서 영화는 진정한 생활터전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곳’에 살아서 좋은 게 아니라, ‘그들이 있어서’ 좋은 곳으로 기억된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보금자리라는 생각이 스친다. 


<노매드랜드> 속 캠프파이어를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노마드족들.

  평생의 터전이 점차 무의미해지는 시대에 <노매드랜드>와 <미나리> 두 영화가 그리는 교섭과 관계 맺음의 방식은 정착과 유랑의 기로에 선 많은 이들에게 주거환경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영화는 미지의 땅을 개척해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미지의 미래를 개척해나가야만 하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던져진 하나의 대안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앞에 두고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어디에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우선시 되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시리즈의 연재를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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