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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Feb 19. 2023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합스부르크 엘리자베트 황후

내 친구는 회사 생활이 힘든 시기에, 퇴근 후 매일 서점으로 출근해서 지친 마음을 달랬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사한 지인의 남편은  마음 둘 곳을 찾아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으로 계속 걷고 있다. 강릉 바우길, 지리산 둘레길, 해파랑길, 제천 둘레길...


합스부르크 왕가의 거의 마지막 황후인 엘리자베트(애칭 시시)의 마음 도피처는 국외여행이었다.

바이에른에서 자유롭게 자랐던 엘리자베트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엄격한 예법을 힘들어했고  시어머니, 동서와의 갈등은 그녀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외모 가꾸기에 집착했는데 평생 46~49kg을 유지했고 꽉 조이는 코르사주(코르셋)를 입었다.

머리 손질에만 3시간이 걸렸는데 길고 풍성한 머리의 무게를 빼면 실제 몸무게는 더 적었을 것이다.


영화  <코르사주>와 넷플릭스 <황후 엘리자베트>에는 허리를 꽉 조이며 힘들게 코르사주를 입는 모습, 섭식 장애를 보여주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녀의 젊은 시절 초상화를 보면 유독 가는 허리가 돋보이는데 허리를 늘 19인치나 20인치로 조여 맸다고 전해진다.


“40살부터 인간의 몸은 시들고 헐거워지며 구름처럼 음울해진다”


엘리자베트는 영화 속 독백처럼 나이가 들수록 사진, 초상화를 멀리했고 공식적인 자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초상화는 그녀가 가장 아름답던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첫 아이가 죽은 후 시어머니에게 양육권마저 빼앗기자 마음 둘 곳 없던 엘리자베트는 더욱더 승마와 여행으로 공허함을 달랬는데 여행이 거듭될수록 경호와 수행 인력들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1898년 9월 10일, 제네바 호수.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꽉 조여진 코르셋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비틀비틀 걸어서 배에 올랐다.

그러나 코르사주를 벗는 순간 피가 철철 넘쳤다. 코르사주가 출혈을 막고 있어서 칼에 찔린 것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나한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녀의 마지막 말이다.


황후 자리는 원래 엘리자베트의 몫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엘리자베트의 언니인 헬레나와 결혼하려고 했으나 엘레자베트를 본 후 한눈에 반해 결혼 상대를 바꿔 그녀와 결혼한 것이다.


그녀가 황후 자리에 있는 동안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국제 정세 속에서 풍전등화였고 제국의 몰락이 드리워지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황후로서의 역할은 등한시하고 사치와 낭비,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던 엘리자베트.

만약 예정대로, 황제가 언니와 결혼했다면 그녀는 바이에른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로운 생을 살았을까?

언니는 엘리자베트의 불행한 황실 생활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힘든 시기에 황(왕)실 사람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마음의 도피처를 찾는다.


오스트리아제국의 엘리자베트 황후는 여행, 러시아제국 니콜라이 2세의 황후는 라스푸틴, 바이에른왕국의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와 건축물. 그가 지은 유명한 건축물이 바로 노이슈반슈타인 성(디즈니 로고)이다. 정작 그는 단 하루도 그곳에서 지내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도피는 때로는 비극적 결말로, 때로는 후대의 값진 문화유산이나 관광 상품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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