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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맘 은지 Sep 04. 2024

꿈속 할머니의 예견

늘 같은 일상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씻고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일터로 나아가는 마음이 무겁다. 오늘의 빡빡한 일정과 잘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

하지만 기저에 깔린 미세한 설렘이 출근길의 발걸음을 가볍게도 한다.

밥도 안 먹고 미친 듯이 자료를 만들고 강의를 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 안에 있는 열기가 다 빠져나가 다시 나를 휘감는 듯하다.


아이들과 손잡고 일에 미쳐 살다 보니 사랑이 멀어졌다.

아니, 사랑을 하고 싶어 열심히 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번번이 실패다.

서로가 사랑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멀어지고,

노처녀 소리 들을 정도의 나이를 먹었으나

사랑표현이 어린애처럼 순진하고 서툴러 멀어지고,

조급함에 사랑이 멀어지고,

너와 나의 마음이 달라 멀어지고,

이렇게 가슴앓이를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하다 보니 가슴에 멍울이 졌다.  


수업이 끝나 밤이슬을 맞으며 오색형광들이 빛나는 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커플들이 맥주를 마시며 어깨를 비비는 모습들이 나에게는 찡하다.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 이유를 모르겠다.

뭐가 진짜 잘못인 건지.

뭐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나에게는 왜 이리 사랑이 어려운 건지.


집으로 돌아와 새까맣게 꺼진 불을 켜고 들어온 차가운 방.

툭하니 가방을 내려놓고, 후다닥 씻고 한숨 한 번 푹 쉬고

잠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 생전에 나를 아끼셨던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은지야, 너 왜 시집을 안 가냐..?”

“모르겠어요 할머니,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봐라, 내년에는 꼭 만날 거다.”


꿈에서 깨니 할머니가 해 주신 마지막 말씀이 귓가에, 마음가에 맴돌았지만 외로워서 꾼 개꿈이려니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해 주신 말.


“봐라 내년에는 꼭 만날 거다.”


할머니가 손녀를 쓰러이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턱 막혔다.

쉼 없이 달려온 나날들.

할머니의 말씀처럼 누군가를 만나

쉼을 내며 사랑이 하고 싶다.

할머니의 예견인가.  


그러고 일 년 후

나는 꿈처럼 그를 만났다.

지금의 남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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