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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맘 은지 Sep 04. 2024

남편과 육퇴 수다

'한 사람'을 위한 기도

아이가 잠든 저녁.

아이가 깰라 붉은빛 조명 밑에서 남편과 나는 살금살금 술상을 차렸다.

대학동기 수진언니가 남편과 함께 먹으라고 선물로 준 레드와인을 개봉할 시간. 신나고 설렜다.

일명 ‘육퇴’ , 남편과 와인을 한 잔 하며 맛을 음미하고 하루를 음미했다.  

“음~~ 깔끔하고 맛있다.”

와인과 함께 편의점에서 파는 치즈비스킷을 한입 베어 물며 피로를 날렸다.

하루 동안 치였던 벅찬 숨을 정리하고,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는 시간.

분위기를 내기 위해 형광등은 끄고, 은은한 조명을 등 뒤로 마주 보고 앉았다.

하루 종일 떨어져 있다가 늦은 저녁에야 만난 우리, 분위기를 잡고 앉으니 살짝 어색도 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루를 살아냈을 우리가 서로를 들여다보는 값진 시간이기도 하다.



언제나 우리는 ‘아기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 우리에게의 이슈는 백일이 다 되어 가는 딸 다온이의 귀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 회사에서 동기들한테 다온이 사진 보여줬는데 귀엽다고 난리 났잖아. 객관적으로 봐도 진짜 너무 귀여워~! 흐흐흐”

딸이지만 대장군 같은 다온이, 오동통한 볼살에 눈코입이 반쯤 가려지고 있는 딸아이를 보고 차마 예쁘다고 할 수 없어 예의상 귀엽다고도 해주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남편은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이쁘고 귀엽다며 딸내미한테 흠뻑 빠져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사나이가 예쁜 여자 친구를 자랑하는 모습처럼 들떠있는 것이 귀여워 픽~ 웃음이 났다.



내가 이 남자의 아이를 낳게 될 줄이야.

부부연이라는 신기함에 불과 삼사 년 전으로 돌아가 연애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

교제하기로 하고 한 달이 지났을까.

교수임용에서 최종까지 가서 아쉽게 떨어지는 경우가 여럿이라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남편.

그럼에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고 노력했던 남편.

 남자를 보는데 내 마음이 되려 짠했다.

계속되는 실패에 찢어질 듯 아플 것도 같은데 늘 웃음으로 쿨하게 넘기려는 모습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정말 잘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게 했다.

이번에는 다른 직종으로 원서를 낸 당시의 남자친구이자

현 남편. 그를 위해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싶을 때 혹은 나를 성찰하며 차분히 마음을 갖고 싶을 때 찾던 길상사.

성복동에 있는 절로 <무소유>를 쓰신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신 곳이기도 하다.

장마철이었던 여름. 길상사에 올라갈 때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그를 위해 기도하고 내려올 때에는 굵은 장대비가 내려 바지가 다 젖었다.

우산은 바람에 흔들리고 빗줄기는 모이고 모여 홍수가 일어날 것처럼 아래막길로 거세게 내려쳤다.

그 빗속에서도 한쪽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쪽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남편과 통화를 하며 지하철역까지 빗물과 함께 내려갔다.

“은지 씨 이렇게 비 오는데 길상사까지 갔어요? 가서 무슨 기도했나요?”

“저 길상사 좋아해요. 한 번씩 오면 좋더라고요, 마음도 편해지고요. 그냥 간절히 바라지는 걸 기도했어요.”

그때는 남편한테 본인을 위해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를 위해 빗속을 뚫고 가서 혼자 법당에서 기도했다는 이야기는 괜히 오버인 것 같으면서도 남편에게 괜히 부담을 줄 것 같아서였다.



이제야 와서 남편과 함께 그때의 추억에 젖어들었다.

“자기야, 그때 나 자기를 위해 기도했다?”

“뭐라고 기도했는데? 나 임용 잘되라고 기도했어?”

“아니, 무조건 붙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는 않고... 자기가 원서를 넣은 그곳이 정말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자기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그렇게 서로 좋은 인연 될 수 있는 곳이라면 붙게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래서 당신도 이제는 보람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말이야.”



결혼적령기를 넘기고 잘될지 말지도 모르는 남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일.

그저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

이 사람과 연이 끊어질 수도 있지만 열심히 살아온 이 남자가 조금이나마 행복해지는 일. 그리고 하는 일에 자신감과 자부심을 얻어 더 힘차게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때의 내 마음이 하늘에 통해서였을까.

이 남자 결국 임용이 잘 되었다.

우리 관계도 더 돈독히 되어 결혼도 하고 웃음이 이쁜 딸을 낳았다.

“은지 씨랑 내가 부부연이 되려고, 은지 씨가 길상사에 가서 내 기도를 하게 됐나 봐.”

“그러게^^”

부부연이 되려고 길상사에 가서 그의 기도를 하게 된 것인지, 길상사 가서 그의 기도를 한 것이 부부연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과 이렇게 마주 보고 있어서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저기서 우리 아기는 새근새근 평화롭게 잘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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