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게 백설기를 찌겠다고 새벽부터 설쳐댄 날이었다. 집에 있는 떡순이에게 떡을 직접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문제였던 걸까? 찜기에 물을 붓다가 팔팔 끓는 수증기에 데어서 손이 닭다리 튀김같이 부풀어 올랐다.
원래 직원이 아픈 것과 회사일은 무관한 법. 회사일은 줄지 않고, 손에 계속 무리가 가서 상태는 안 좋아지기만 했다. 피부과 치료로는 낫지 않아서 몇 주 후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겨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40살의 쉼표가 되어준 입원 치료 시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남편과 엄마가 맡아주었고, 회사 일은 그냥 놓아 버렸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니까.
병원에서의 일과는 굉장히 심플했다. 아침. 옆 자리 모녀의 수다에 잠에서 깬다. 보통 둘은 시시콜콜한 이유로 싸운다. 엄마를 불렀는데 엄마가 대답을 안 했다거나, 딸이 기침을 하면서도 아아를 고집한다거나 하는 이유. 시끄러울 때도 많았지만 대체로 귀여웠다.
아침밥을 먹고 진료를 받는다. 온화한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은 후에는 창밖 사거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앙상한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다. 덕분에 왼손 스킬이 많이 늘었다.
점심을 먹고 1층 커피숍에 간다. 장기 입원 환자분들은 다 거기에 모여 있다. 어떤 젊은이는 여자친구가 매일 안 온다고 투덜대고, 어떤 아저씨는 퇴원 후 괌 여행을 준비한다. 나는 스탬프 10개를 모아 공짜 커피를 마시는 것이 목표다. 다시 돌아와서 책을 읽으면 잠이 쏟아진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또 저녁밥이 나를 기다린다.
킹스오브컨비니언스의 신곡을 들으며 해가 지는 창밖 사거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나도 분명 저 버스에 타고 았었겠지만 지금은 버스에 탄 사람들을 바라보니 새삼 직장인들의 삶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전 울먹이는 아들과 통화를 하고 힘들다는 남편을 다독인 후 침대에 눕는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 상태를 확인하고 나면,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잠이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상에 누워서야 나를 챙길 수 있었다. 오직 나만 생각하며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직 회사-집의 루프를 무한반복하던 사이 나는 40살이 되었고, 병상에 누워서야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왜 지금 여기 있는 걸까? 일주일 남짓 사이, 나무는 어느새 새싹을 피워내고 긴급 화상치료도 끝이 나서 붕대를 풀고 퇴원했다.
집에 돌아오니 다시 전쟁터였다. 집은 개판이고 아이들은 서로 엄마랑 있겠다고 난리, 남편은 지쳐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회사는 말할 필요가 뭐 있나… 나는 다시 회사-집의 무한 루프에 갇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절절 메며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세월은 잘도 흘러 어느덧 내 손에는 발그레한 새살이 돋아났다. 입원했던 시절이 그리우면 안 되는데... 그곳에서 본 오후의 반짝이는 햇살이 떠오르고, 나를 잊지 말자 다짐한다. 내 손도, 나의 정신도, 나를 잊지 말자 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