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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ndraw Jul 01. 2023

파리에서의 8일

행복을 찾아서

죽을 만큼 가기 싫었던 출장이었다.

잘하는 거라고는 몸을 들이미는 것 밖에 없는 상사를 보며, 대체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그걸 또 좋아하는 상사라… 너무 싫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늙은 막내에게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1월과 다르게 밀란의 맑은 날을 처음 보았고, 우연히 대성당 앞을 지나갔다. 설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문득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공원마다 모여있는 사람들, 카페테라스마다 옹기종기 모여 떠드는 사람들을 보니, 살아있다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에 갔다. 에펠탑이 뭐라고, 사람들은 그렇게 몰려드는 걸까? 나는 일 하러 가서 혹시 늦을까 엄청난 속도로 걸어가고 있는데 나만 빼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여서 질투가 난 시간도 있었다. 밤마다 좁아터진 호텔방에서 새벽까지 일을 하고, 아침에는 상사 깰까 봐 컴컴한 방에서 조용히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한다. 밥도 먹지 못하고.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시간이 조금 남아서 혼자 산책을 하러 나갔다가 에펠탑을 보며 신나서 뛰어가는 가족을 보았다. 회전목마 앞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샷을 찍고 있었고, 다들 얼굴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관광지였고 진짜 여행자들이었다. 다시 못 올지 모르는 순간을 간직하고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마지막 날 일정이 모두 끝나서 혼자 다닐 시간이 생겨 미술관까지 걸어가다가, 우연히 에펠탑 맞은 편의 트로카데로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여행자 무리들에 끼어서 나도 에펠탑 사진을 찍고 있었다. 8일을 머물렀지만 그제야, 나도 파리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에서 커다란 마티스의 그림을 마주하며 행복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그림처럼 내 마음도 춤을 추었다. 공원에서 옆돌기를 하는 소녀에게 박수를 쳐주었고, 앉아서 물을 마셨다.


 배가 고파서 르 코르동 블루에 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남은 빵이 소시지 프레첼밖에 없었다. 그 역시도 맛있었다. 옆에서는 요리 수업을 하고 테라스에서는 노부부가 맥주를 마신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거리고 비둘기는 빵 부스러기를 먹으려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렸다. 8일 동안에 가장 정적이면서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낯선 공간 속에서 찾은 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다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다음에는 원데이 클래스라도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남은 커피를 마시고 나왔다.


다시 회사 사람들과 함께 억지로 웃으며 비행기를 타러 갔다.

무언가를 찾아 여기저기 헤맬 때 행복은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긴 출장이 끝나고 그를 마주하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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