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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Feb 03. 2024

공명하는 날들

지인들의 리뷰가 속속 도착하고 있다. 말이나 글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지금쯤이면 책을 받았을까', '어디쯤 읽고 있을까', '읽다가 흥미가 떨어져 책을 그냥 덮진 않았을까'...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일주일을 흘려 보냈다. 생각이 넘치도록 많은 건 참 지독히도 안 변한다.


학교 일을 하면서 알게 된 한 언니가 있다.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누구보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 내가 존경하며 따르는 분이다. 책 속 지인으로 언니가 잠깐 출연하는데, 사연을 나눠준 데 대한 감사함의 표시로 책을 선물했다. 언니는 다짜고짜 나를 앉히더니 사인을 주문했다. 사인이라니. 내가 사인이 있을 리가 있나.


사인만 하지 말고 뭐라도 적으라는데 나는 악필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엄청난 구박을 먹었다. 왜 이렇게 글씨를 못 쓰냐며. 엄마랑 언니는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잘만 쓰는데 나는 아무리 써도 삐뚤빼뚤이었다. 중고등학생을 거치면서는 하도 필기를 해서인지 글씨가 나름 봐줄 만해졌다. 하지만 기자일을 하면서 매일 불러주는 말들을 재빠르게 날려 쓰다 보니, 글씨는 다시 괴발개발이 되었다.  


그 뒤로는 거의 타자만 쳤지 직접 손글씨를 쓰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쩌다 메모를 해도 나 혼자 볼 글이라 글씨체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내게 자꾸 지인들이 뭘 써달란다. 이름 석자라도 써라, 뭐라도 한 문장 적어라. 읽고 중고로 팔려면 아무것도 쓰지 않아야 한다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정말 난감하다. 팔자에 없던 사인에 글씨 연습까지 해야 할 판이다.


언니는 못생긴 내 글씨가 박힌 책을 기어코 들고 갔다. 그러더니 읽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내게 톡을 보내온다. 언니가 밑줄 친 부분, 그 아래 적은 언니의 생각, 책을 읽으며 느낀 점 등을 상세히 적어 내게 보낸다. 그럴 때면 마치 함께 책을 펼치고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나도 내 책을 꺼내 들고 언니가 어디쯤일지를 가늠해본다. 그렇게 나는 수십 번 봤던 내 글을 또 읽는다. 결국 완독한 언니가 내게 말한다. "왜 네 첫 책이 글쓰기 책일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우리는 이렇게 공명에 이른다.


온라인에서 글을 쓰다 만난 감사한 분께 책 한 권을 선물로 보냈다. 분명 오늘 오전에 도착했다고 했는데, 몇 시간 지나자마자 메일이 왔다. 책을 덮자마자 쓴다면서. 얼마나 애를 쓰고 공들여가며 쓰고 고쳤는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며. 책이 너무 좋아 품에 가득 안아보기도 했다는 말에는 결국 눈물이 맺혔다. 여기저기 도서관에 책을 신청해주시고, 페이스북에도 감상평을 올려주셨다. 내가 드린 건 고작 책 한 권인데, 받는 건 흘러 넘치게 많다.


인근에서 북카페를 운영하는 분도 책을 들이면서 인스타그램에 내 책을 소개해주셨다. 소개글을 읽으니 책을 완독하고 쓰셨다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자신을 '쓰는 사람'으로 정의하기까지의 고백으로 읽힌다는 말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담겨 있어 더 좋았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 글이 타인에게 가닿는 것, 내가 담고자 했던 마음을 독자가 오롯이 느낀다는 것, 더없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너가 썼으니까 사본다던 한 친구는, 금손답게 멋진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친구는 내게 책을 만나러 가는 길이 너무나 두근거렸다고 고백했다. 서점에 마치 내가 있는 것처럼 떨렸다며, 자랑스럽고 고생했다고 말해준다. 영상 속 친구의 발걸음과 손길이 그 두근거림을 고스란히 전하는 것 같아 나도 함께 가슴이 콩닥거렸다. 책을 만나는 것만으로 공명하는구나 우리는. 함께 해온 세월은 그런 힘을 지닌다.


친구 품에 안긴 책.


친구가 보내온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품에 꼭 안긴 내 책을 보니 마치 내가 친구 품안에 안긴 듯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전국에 퍼져 있는 내 책들이 마치 내 분신인 것만 같다. 내 몸이 천 갈래 만 갈래 나뉘어져 여기저기 세상을 유영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책을 낸다는 건 이런 걸까. 온라인에서 글을 쓰면 누군가가 내 공간에 찾아와 나를 만나주는 느낌이었는데, 책을 내니 내 책이 나 대신 이곳저곳으로 날아가 직접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여기 책 한 권이 있다고. 만나보지 않겠냐고.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서야 내가 활동하는 온라인 플랫폼 몇 곳에 들러 내 소개글을 변경했다. 기존의 소개글을 지우고 책 이름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나를 포장해준 필명 박현안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책을 막 출간했을 때도 그랬는데, 나는 필명을 내려놓으며 다시 한 번 알몸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까발리듯 내 이야기를 적어왔으면서도 나는 또 한 번 내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인가. 내가 선 이곳은 내가 바라던 곳인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침착하려 애를 쓴다. 그런데도 온라인에서 만나던 피드백과는 또 다른 반응들을 직접 만나면서 마음이 자주 둥실 떠오른다. 마음 깊은 곳에는 감사함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내 책을 샀다고 귀띔해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미주알고주알 묻고픈 주책맞은 속마음을 꾹 누른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흘러나온 감상평을 듣는 날도 오겠지. 그땐 또 어떤 마음이 내 안에 차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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