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아이 학교에서 보호자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책은 좋아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는 건 대학 때 이후 처음이었다. 시작할 때의 마음은 반반이었다. 기대 반 걱정 반. 한 권의 책으로 다양한 감상평을 들을 수 있다는 건 기대가 가는 대목이었고, 혼자 자유롭게 하던 독서가 달라지진 않을까 하는 염려도 조금 되었다.
1년 반 가까이 독서모임을 해보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혼자 읽다 함께 읽으니 더 꼼꼼히 읽게 된다. 밑줄도 치고 그때그때의 생각을 메모도 하면서, 문장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읽는다. 혼자 읽으면 이따금 독서의 공백이 생기거나 느슨해질 때가 있는데, 모임을 통하니 더 열심히 읽게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가장 만족스러운 건 어떤 책이 선정되더라도, 독서모임에서는 그 이상의 것을 건져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마다 성격도 기호도 환경도 다르다 보니, 책에서 느끼는 감정과 감상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이 서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줄 때면,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기를 잘했다는 만족감이 차올랐다. 상대를 더 이해하며 공감의 반경을 넓혀 가고 싶다는 생각도 더해졌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양육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진행하는 독서모임이다 보니, 처음에는 책 이야기를 하다가도 시간이 좀 흐르면 육아나 교육 이야기로 방향이 바뀌기 일쑤였다. 육아의 고충이 나오기도 하고, 자식 자랑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입시로 귀결되고, 뿌리 깊은 교육과 계급 문제를 안고 있는 이 땅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느냐는 한탄의 목소리로 마무리 된다.
보호자들의 모임이니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대화가 천편일률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문제가 있었다. 교육이나 양육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는 차치하더라도, 다른 분야의 책을 읽었는데도 모조리 대화가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면 다양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한두 번 그런 대화가 오가는 건 자연스런 과정으로 이해할 만하지만, 매번 독서모임 때마다 그러는 건 지양해야 했다.
모임의 목적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대체 왜 같이 책을 읽는 것일까. 보호자 단체라는 특수성이 장점으로 기능하려면, 어떤 규칙과 공감대 아래 독서모임을 꾸려가야 할까.
나보다 먼저 보호자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한 지인은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빼는 걸 규칙으로 정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실제 보호자들 중에는 보호자라는 정체성이 너무 비대한 나머지, '나'의 존재감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나의 감상',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다. 독서모임 시간 만큼은 '나'로 설 수 있도록 호스트가 관련 질문을 만드는 것도 좋다고 귀띔했다.
또 한 지인은 독서모임에서 '올바른 독서모임 꾸리기' 강사를 초청해 다 같이 강연을 들었다고 한다. 강사는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할 거면 다른 모임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독서모임에서는 책에 집중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강연을 들은 후 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확연히 줄었다고 한다.
조언을 듣고 보니 어느 모임이나 한 차례씩 겪는 시행착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들만 모였다는 특수성이 정체성이 되어 책보다는 아이 이야기로 흐르는 모임으로 변하기 쉬운 것이리라. 그렇다면 우리 모임은 앞으로 어떻게 정비해 나가야 할까. 서로 오해 없이 상황을 이해하고, 새로운 규칙과 분위기를 잡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는 보호자이지만 함께 책을 읽는 목적은 아이들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육아는 중요하지만 그 전에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아이를 기르는 일도 휘청일 수밖에 없다. 나를 깊이 이해해야 나의 언행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결국 이는 육아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자식을 대하는 것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것.
우리 학교의 경우 보호자 독서모임이 존재하는 건, 학교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제주형 혁신학교로 운영되고 있기에, 다른 학교에 비해 중시하는 가치가 분명한 편이다.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경쟁보다는 협력을 중시하고, 소외되는 아이가 없도록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이를 보호자들이 이해하고 함께 협조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매개로 한 공부가 필요하다.
보호자 동아리는 지역 공동체의 역할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터넷이 발달해 모든 걸 혼자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소속감 없이 한 개인이 건강하게 존재하기는 어렵다. 은둔형 외톨이는 늘어나고, 위기 가정이나 소외된 가정은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책을 매개로 만남을 이어가면서 구성원들의 면면을 이해하고, 다양한 가정의 상황을 알아가면,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저자와 책 속의 인물들을 이해하며 나아가 나 자신과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데, '내 아이'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내 아이의 미래보다는 나와 우리 공동체의 성장을 목표로 해야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똑바로 서야 공동체 역시 바로 설 수 있다. 나를 이해하는 길을 여는 건, 분명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터.
모임을 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건, 작더라도 제대로 모임을 꾸리려면 많은 고민과 토의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임은 생물과 같아서 구성원도, 시기마다 필요한 부분도 달라진다. 그에 발맞춰 계속 점검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발전할 수 없다.
일례로 책을 꼭 읽어오는 규칙은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책을 꼭 읽지 않아도 되는 규칙은 자칫 모임이 와해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구성원의 면면에 따라, 모임의 분위기에 따라, 그때그때 규칙을 재정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작은 모임 하나를 꾸리는 것도 이렇게 품이 많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은 보호자들이 모였으니, 잘 정비하며 나아가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건, 내가 서 있는 이 작은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조우하는 유일한 창구일 수도 있기에. 이 작은 세계 하나를 제대로 꾸리는 일이 커다란 세상을 바로 잡는 시작이 될 수도 있기에. 멤버들과 다시 머리를 맞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