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가 세 살 무렵이었다. '휘핏'이라는 날렵한 개 여섯 마리가 있는 카페에 우연히 가게 되었다. 아이는 보자마자 "멍멍" 하며 개라는 걸 인식했다.
사실 주변에 개를 키우는 사람이 없어서 아이는 태어나 개를 많이 보지 못했다. 개 종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개만큼 생김, 색깔, 크기가 각양각색인 동물이 또 있을까. 그런데도 아이는 말티즈와 불도그, 그레이하운드가 모두 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개를 하나의 생물로 인식한다니, 본능인 걸까.
궁금증이 풀린 건 캐럴 계숙 윤의 분류학 책인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읽고 나서였다. 책에는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이 나온다. 독일어로 환경, 주변 세계, 나아가 세계관을 뜻하는 단어인 움벨트는 생명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 특유의 감각을 뜻하는 말이다.
저자는 포켓몬스터나 공룡과 같은 다양한 종류를 아이들이 잘 분류하고 인식하는 걸 움벨트로 설명한다. 과학의 토대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에 기대 있던 분류학의 지난 역사를 짚으면서, 인간에게 내재돼 있는 움벨트를 끌어 오는 것이다. 그제야 배운 적이 없어도 온갖 종류의 개를 하나의 생물로 인식하는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이 마흔이 다 돼 갑자기 흥미가 생겨 읽게 된 과학책이 육아에 도움이 될 줄이야. 고등학교 시절에는 흥미는 없지만 수능을 보기 위해 억지로 과학 수업을 따라가곤 했다. 그 뒤로도 과학은 나와 전혀 관련 없는 분야라고만 생각해왔는데, 뒤늦게 과학책을 보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있다.
과학책을 보며 육아를 떠올리는 건,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이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나 가만히 누워만 있던 아이는 어느 순간 뒤집고 배밀이를 하다 네 발로 기기 시작한다. 붙잡고 일어서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 아이는 갑자기 물건을 들고 다닌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족보행이 얼마나 효율적인 이동 방식인지를 아이를 통해 배운다.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지 덕분에 빅히스토리를 상상해 본다.
성별이 남자인 두 아이들은 대여섯 살이 되자 본격적으로(?) 싸움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폭력적인 걸 잘 보지 못하는 나는 싸움 놀이를 아예 하지 않는 아이들로 키워보고 싶어, 칼이나 총과 같은 무기류 장난감을 사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희한하게 인형보다 로봇을 집었고, 길쭉한 물건을 칼이라 주장했다. 남녀의 성차는 문화에서 기인하는지, 본성에서 기인하는지 궁금했던 나는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인 프란스 드 발이 쓴 책 <차이에 관한 생각>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일부 사람들은 어른들이 장난감을 통해 젠더의 편견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고 말하지만, 실험에서는 성별에 따른 선호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원숭이들에게 장난감을 나눠주면 운송 수단 장난감은 주로 수컷이 갖고 놀고, 인형은 암컷이 더 많이 가지고 논다. 이 같은 특정 장난감 선호는 수컷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인간 남자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색에 있어서는 성별 선호 차이가 없었다.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을 고집하는 건 문화적인 영향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침팬지 도나의 사례도 소개한다. 건장한 암컷이었던 도나는 다른 암컷들에 비해 수컷에 가까운 행동을 더 많이 보였고, 생식기는 암컷이었지만 발정기에도 짝짓기를 하거나 생식 능력을 과시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예시를 통해 저자는 양성을 스펙트럼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양쪽 성의 특성이 확실한 두 봉우리가 있는 반면 그 사이에는 중첩된 특성을 가진 여러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에 따른 차이는 분명 있지만 개인에 따라 그 차이는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차이가 아닌 차별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과학을 통해 배운다.
얼마 전에는 김학진 교수의 <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라는 제목의 뇌과학 책을 읽었다. 최근 들어 친했던 친구들과 멀어졌다 화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존감이 조금 떨어진 아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집어 든 책이었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언급된 건 '자기 감정 인식'이었다. 감정은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드러나는 것으로, 감정이 발생했다면 분명 근원의 이유가 존재한다고 한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근원의 이유를 찾아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자존감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함께 감정 일기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그날 겪은 감정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한두 가지를 골라 무슨 감정인지를 알아보고,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이유를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은 <아홉살 마음 사전>을 수시로 꺼내 보며, 자신이 겪은 감정의 이름을 찾고 이유를 간단히 적는다. 긍정의 감정도 부정의 감정도 모두 인정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되 타인을 해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안 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과정은 사춘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보통 자신의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한다. '헐', '짜증 나', '미친'과 같은 몇 가지 단어들로 뭉뚱그리는 것. 하지만 감정을 세분화해 인식하면, 급변하는 자신의 감정을 더 섬세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사춘기는 오지 않았지만, 부디 이 과정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 본다.
대표적인 과학커뮤니케이터인 김상욱 교수는 책 <떨림과 울림>에서 이렇게 말한다.
필자가 과학자로 훈련을 받는 동안, 뼈에 사무치게 배운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였다. 모를 때 아는 체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다. 또한 내가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질적 증거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적 태도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서로 아는 것과 가진 것을 두고 경쟁을 벌인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잘 모르는 것도 안다고 말하며 허세를 부릴 때가 종종 있다. 과학적 태도를 아이들과 함께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어 이렇게 말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무엇을 알고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과학을 배우며 육아를 한다. 육아는 내가 이전에 경험한 그 어떤 일에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험난한 여정이다. 좀 알겠다 싶으면 곧바로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그때마다 처방책처럼 과학책을 펼친다. 생생한 과학적 사실과 신비로운 진화의 세계에 빠지다 보면, 길이 조금 열리는 느낌이다. 내 양육 방식을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사고 방식 역시 과학에서 배웠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수용하고 순응하기보다 의심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아이들을 길러내고 싶다. 나 역시 그런 어른으로 살고 싶어 오늘도 과학책을 뒤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