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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홍 Aug 17. 2022

복숭아의 계절

멍들수록 달콤하게 익어간다

 내가 원한 그 복숭아


 코로나가 나를 휩쓸고 지나갈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복숭아였다.

 입안은 까끌하고 고열에 시달려 온 몸이 으깨어지는 것 같은 와중에도 생각난 복숭아. 고슬고슬한 솜털을 찬 물에 한번 씻어내고 그대로 한입 베어 물면 입안을 적시는 달콤한 과육. 어김없이 손목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릴 끈적한 과즙. 침대에 누운 채로 몸이 끝없이 내려앉는 느낌에 이대로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은 두려움에 떨면서. 몽롱해지는 의식 사이로 간절히 바랐던 복숭아. 멀건 천장 위를 올려다보며 나는 잘 익은 복숭아만을 생각했다.

 거하게 아프고 난 이후로 나는 어딘가 조금 달라져있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한 올 한 올 일어나 세상의 모든 자극을 과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 영화 루시의 주인공처럼 체내의 모든 감각이 끌어올려져 어쩔 줄을 몰랐다. 가족과 건강, 일과 삶 같은 주제는 고리타분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조금 다른 각도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내심 좋았다. 가끔은 아플만하구나. 아픈 것도 유의미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덜 아팠구나 싶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던 것 같다.




 그 후 한동안은 일에 시달렸다. 아침 출근 후 처음으로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오후 다섯 시가 훌쩍 넘어 있는 날의 반복. 여전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후각과 미각이 둔해져 식사도 제대로 하기 벅찼다. 무언가를 먹을 수도 깊이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 무렵,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와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복숭아를 먹는 것이었다. 냉장고에서 꺼낸 백도를 잘 씻어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침대 위에 걸터앉을 때쯤 이미 복숭아는 간데없었다. 정신을 차리면 덩그러니 손에 들려 있는 복숭아의 씨앗. 화장대 거울 앞에서 건장한 남자의 울대뼈처럼 생긴 그것을 괜히 내 목 위에 가져다 대보기도 하면서, 나는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희미하게 스치는 향과 치사량 이상의 달큼함은 나의 고된 하루를 보상해주는 것 같았다. 나 스스로는 물론, 누구도 내게 해주지 못한 일을 복숭아 한 알이 해준 것이다.

 


 물렁하고 달달한 그 복숭아


 오늘은 웬일로 평소보다 업무의 양이 적다. 이렇게 느린 템포로 일이 돌아가는 것은, 내게 딴짓을 할 좋은 구실이 된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복숭아에 대한 이야기를 자질구레하게 써내려 간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며칠 전에는 2년 남짓 만났던 사람과 이별을 했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복숭아 한 알보다도 못한 것들만 건넸다. 그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가 내게 건넨 것들은 내가 퇴근 후에 허겁지겁 해치운 복숭아 한 알만 못했다. 그 생각은 내가 그의 곁에 머무는 동안 이미 오래전부터 해온 것이었고, 끝끝내 나는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먹은 복숭아가 실로 대단한 복숭아였나. 동방삭이 훔쳐먹고 손오공이 훔쳐먹은 그 복숭아처럼 말이다.




 한동안 SNS에 물복이냐 딱복이냐 사람마다 다른 취향에 대해 말이 많았다. 나는 물렁하고 달달한 백도파다. 복숭아 귀신인 내게, 그는 그 나름대로 자주 복숭아를 건넸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내게 준 것은 그저 딱딱해서 이빨이 도무지 들어가지 않는, 덜 익은 천도복숭아였던 것 같다.


 나름대로 맛있게 먹으려고 용을 썼지만 그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 앞에서 맛있게 먹는 척을 했던 것도 같다. 나중에는 그가 건넨 떫고 딱딱한 복숭아를 믹서에 넣고 갈아서도 먹어보고, 잼을 만들어 먹어보기도 했다. 먹을만했다. 먹을만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먹을만했다는 것이지 마음 깊숙한 곳부터 차오르는 충만함은 없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에게 나는 사실 물렁한 복숭아가 좋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주구장창 딱딱한 복숭아만을 떠 안겼다. 덜 익어 시어 빠진 천도복숭아가 싫다고도 말해보았다.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복숭아를 건네는 행위에만 열중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딱딱한 복숭아를 먹지 않는 나를 복에 겨웠다 말하고, 푹 익어 물렁한 복숭아를 좋아한다며 비아냥거렸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냥 내가 백도든 천도든 가리지 않는 사람이면 좋았을 걸.' 하며 자책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결심했다. 그에게서 도망치기로. 멀리멀리 달아나기로.

 


 멍들수록 달콤한 그 복숭아


 하루 걸러 비가 온다. 자꾸 비가 오면 과일은 단 맛이 없이 밍밍해진다.

 여름이 끝나간다. 햇살은 뜨겁지만 하늘은 어느덧 높아졌고,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제법 선선함이 깃들어 있다. 마침내, 복숭아의 계절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실컷 아프고 난 뒤에 먹었던, 한 여름 뙤약볕 밑에서 자란 복숭아의 맛. 그 찐득한 달콤함은 이제 내년 여름이 오기 전까지 다시 맛보기 어려울 것이다.


 복숭아 한 알이 갖는 의미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나는 요즘 냉장고 안에 얌전히 놓여 있는 백도를 보면 그가 떠오른다.

 박스째로 사서 부지런히 먹었는데도 아직도 몇 알이 남았다. 진작 다 먹지 못해 복숭아 여기저기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거뭇하게 멍든 자리는 꿀을 찍어 먹는 듯한 단 맛이 돈다.

 멍들어도 괜찮다. 멍이 들었다는 것은 바로 씻어 먹어도 좋을 만큼 마침맞게 잘 익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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