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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Dec 20. 2022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번 월드컵 공식 송을 듣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월드컵 공식 송을 우리나라 가수가 부르다니. 살다 보니 이런 감격적인 순간이 온다. 나는 이 노래를 어제 처음 듣고 출퇴근길마다 마치 16강에 진출하는 선수들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팔에 오른 소름을 느끼며 다닌다. 왜 진작 안 들었을고. 동료에게 이 노래 너무 좋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16강 진출 확정됐을 때 중계방송에서 이 노래가 나왔다며 그때 들었으면 진짜 더 크게 감동했을 거라고 했다.


아니. 생각만 해도 국뽕 차오르잖아..

또 팔에 소름이 돋는다. 너무 멋져.

선수도, 응원한 국민들도, 노래 부른 정국도.


내게 월드컵은 2002년, 무려 20년 전이다. 고1. 친구와 처음으로 광화문에서 응원도 해보았고 우리나라가 이길 때마다 공식적으로 야자시간이 없어지는 날도 있었다. 정말 우리나라의 축제였고 처음 챙겨본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4위를 했기에 놀랍게도 나는 그게 저어어-엉말 기적 같은 일인지 몰랐다. 약간의 운이 더해져 4강까지 간 거라고. 그러니까 16강에 오르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몇 번의 월드컵을 거치면서 우리나라가 그날 얼마나 멋진 월드컵 해를 보낸 것인지 알게 됐다. 그리고 올해 카타르 월드컵 경기가 얼마나 선수들에게 아쉽고 최선이고 또 최고였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누가 카피를 썼는지 참 잘 썼다. 8강을 가냐 마냐, 이기냐 지냐에 상관없이 중요한 건 마음이라니. 그것도 ‘꺾이지 않는’에 방점을 둔 간결하고 확실한 태도까지. 왠지 한창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청춘을 보내고 있을 20대가 이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런 생각도 편견이겠지. 여하튼 대한민국은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최고의 경기를 보여줬고 그 모습을 응원하는 국민들도 참 멋졌다. 그 와중에 출근해야 한다고 꼬박꼬박 11시에 잠든 나 반성해..




벌써 12월, 다사다난했던 2022년이 다 갔다. 이맘때쯤이면 코로나는 없어졌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 옆에 바짝 붙어있고 올 해에 이루고자 했던 다짐과 목표들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허무하게 날리고 싶지 않아 부랴부랴 열심히 살아보려고도 했지만 너무 늦은 것 같다. 회사에 가도 연말이라 그런지 마음이 붕 떠있고 집에 와서도 책 한 톨 읽지 않는 시간을 보낸다. 분명 마음만은 아직까지 의욕 가득인데 머리와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에 숨어 하기 싫다고만 하는 내가 한심할 지경이다.


생각 같아서는 12월까지 야무지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지내다가 1월 1일에 ‘땡’하고 열심히 살아볼까도 싶은데 과연 나란 인간이 가능할까? 내가 나를 37년 동안 데리고 살아본 짬바가 있는데 갑자기 그게 될 리가 없지.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미리 내년의 계획을 세워보고자 한다. 그 계획이라는 것도 거창하고 목표지향적인 어떤 도달이기보다는 대충 뭉뚱그려서 ‘~~ 한 식으로 살아볼까?’ 정도의 스무스한 느낌으로다가. 갑자기 정국의 월드컵송에 꽂혀 우리 선수들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지켜보며 그들에게서 받은 기운을 이 글을 작성하는데 쓴다.


우리의 힘은 미모에서 나오지 않는다
살아가는 방식에서 나온다



우먼카인드 13호에서 읽다가 너무 맘에 드는 구절이라 밑줄을 그어 놓고 두 달 후 지금 읽는데도 또 마음에 들어 이렇게 적어 놓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아마 수백만, 수천만, 수만 가지의 생각과 인성, 환경, 기질,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한 사람이 존재하고 또 어떤 철학 혹은 중심 같은 것들이 세워져 그 판단에 따라 인생의 모양이 완성될 터인데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빈약하고 가난해 그동안 내가 그렇게 불안했었나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나의 삶, 살아가는 방식을 점검해보기로 했다.


내 삶을 재밌게 꾸리기 위해 필요한 유연한 마음을 갖고 싶다.


-우먼카인드-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태도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도전 의식을 북돋우는 경험들이 성장을 촉진한다. 체력 강화 훈련과 맥락이 같다. 강한 정신과 마음을 얻으려면 스스로 자신을 몰아붙여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기르는 방법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타고난 재능을 더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연습하고 성장하며 최선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철저히 다른 감정 상태로 우리를 이끈다. 자신감 있고 유능하며 능수능란하고 영예로우며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갖추고, 가장 좋은 의미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자신 스스로와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아주 중요한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둘째로는 안전지대를 벗어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작아지고 두렵고 어색할지라도, 타고난 재능조차 없는 전혀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자. 자신의 약점 분야에서 성공을 얻을 때,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달갑지 않은 인생의 고난에 화답하는 과정을 통해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기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세상은 크나큰 시련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인종차별, 경제 불평등, 정치 분열의 격변하는 상황 속에서, 세계적 감염병의 유행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한 요구 사항들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불안과 상실과 분노와 무력감의 바닷속에 깊이 잠겨 허우적거린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기품 있게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길을 직접 선택하진 않았지만, 목적을 품고 사려 깊게 헤쳐나가며, 정신력과 포용력을 키울 기회로 삼아보자.

 


늘 할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하며 살아왔다. 어쩌다 한번 했다고 해도 우연이었을 뿐, 진짜 나의 실력이 아니라는 겸손 아닌 겸손을 내보이는 방식으로 자존감을 챙겼다.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 어떤 종류의 책을 다 읽어봐도 자존감은 책의 문장, 연필로 긋는 행위에서 생기는 게 아니었고 어쨌든 내가 행하고 깨지고 배워서 얻어야 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과정을 견디는 게 힘든 사람이었고 한 번의 실수도 영원한 실패로 삼아 그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놓는 부실한 마음의 소유자였는데 그 가난한 마음과 태도를 바꾸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를 갖는데만 수만 시간이 걸렸다. 구내식당에서 외롭게 혼자 밥 먹을 때 사람들의 눈치를 견뎠으며, 내 연봉의 2배를 받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아득히 멀어지는 감정을 알아차렸고 고맙게도 그럴 때 다시 손 내밀어준 친구를 놓치지 않는 과정이 있었다.


감정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여러 상황과 느낌을 마주하며 깨우친 복잡 미묘한 생각들 덕분에 지금은 자존감이 발바닥 아래에 있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겨우 허리춤까지 올라왔을 뿐이지만 적어도 외롭다고 누구를 괴롭힌다거나 내가 제일 불쌍하다는 식의 연민으로 섣부른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저 솔직하고 투명하게 내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혹은 그 반대로 철저하게 숨겨 겉으로 평온하게 보일 수 있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내년에는 자존감을 좀 더 높게 끌어올리려는 목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더 자주 그리고 더더욱 많이 가져볼 것이다. 일이 안 되어 답답할 때마다 짜증 난다 말하는 대신 조용하고 은밀하게 나의 마음 깊이 숨어 있는 목소리로 '할 수 있어'라고 작게 속삭여 볼 것이다. 정말 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일관된 태도로 내게 주어진 일을 비롯해 관계, 갈등, 불안을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볼 것이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나만의 방법 중 몇몇은 수시로 꽃을 사서 길거리에서 꽃을 갖고 다니는 내내 기분 좋음을 느끼고 집에 돌아와 화병에 꽂은 꽃을 며칠간 바라면서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다는 것과 예쁜 접시 몇 개를 사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꼭 알맞게 쓰고 싶다는 것. 또 한 가지. 내년엔 더 자주 내가 느끼는 날것의 감정과 상황을 짧은 글로 메모해 놓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휘발되는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처음 겪는 상황에 많이 겁을 먹는 것 같아 꾀낸 생각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이상한 기분이나 낌새를 가능한 많이 느끼고 메모해 놓음으로써 나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 우먼카인드 -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인내심, 관용, 용기, 겸손, 융통성, 회복력과 같은 정신 능력들을 향한 갈망을 그 안에 품고 있다. 비판적인 피드백을 듣고 수용하고 활용하며, 대담하게 목소리를 내고, 위험을 감수하며, 갈등을 중재하고, 실망과 상실로부터 회복하는 불굴의 정신을 실천하며 그 사실이 증명된다. 또한 행복과 창의력과 만족감과 내면의 안정이라는 값진 과실을 수확하고, 나 자신을 비롯한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입증되기도 한다.



온화한 미소, 여유 있는 태도, 우아한 미모는 살아가는 방식에서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는 방식은 곧 내가 선택하는 신념과 행동일 것이고, 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결국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증명되지 않을지.


결국 나는 오늘도 그저 열심히 살아내고 주어진 내 몫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늘어뜨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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