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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Jan 30. 2023

일테기 직장인이 일상 예술가가 되는 법

생활에 예술을 창조하세요



일테기가 온 지는 꽤 되었다. 코로나가 시작쯤부터 슬금슬금 시작하더니 작년에는 일하기 싫다와 너무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부딪혀 힘들었다.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는데 그 마음을 못 정해서 이리저리 혼자 눈치를 보며 멱살을 잡고 2023년까지 끌고 와버렸다. 정말 하루 벌고 하루 사는 사람처럼 의욕도 목표도 없이 집과 운동, 쇼핑을 반복하며 그때그때 기분을 억누르며 1년을 채웠다. 다행스럽게도 서평 활동을 하면서 하루를 조금씩 덧칠하며 확장해 온 날도 있었고 브런치 글을 쓰며 삭히는 날도 있었다. 아마 그것마저 없었으면 하루라는 시간에 질식해 버렸을 거다.




도무지 일을 잘 해낼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반복해 오는 업무도 지겨웠고, 나만 숫자로 성과를 증명하는 것도 짜증이 났고, 매일 보는 사람들과 그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인풋 없이 아웃풋을 내는 것도 버거웠다. 그렇다고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포기했느냐면 또 그럴 성격도 못 돼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한쪽 구석에 깊이 박혀 욕심만 잔뜩 담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었다.


이상하게 작년에는 한 번에 마음을 전복시킬 책과의 인연도 없었던 것 같다. 도끼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딩~'하는 울림 없이 몇몇 문장에 기대 하루살이처럼 살아왔다. 그렇다 보니 내가 더 적극적으로 무엇을 찾아 떠나든지 아니면 조용히 모든 기대를 포기하고 이 생활을 유지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선택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생산성이 하루를 제한한다면 창의성은 하루를 확장해 준다. 창의성은 계획을 따르지 않지만 그만의 성쇠를 수반한다. 하루를 할 일에 국한하는 대신, 창의성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창의성은 마주하게 되는 불안과 죄책감, 수치심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창의성이 하루를 규정하는 대신, 하루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우먼카인드 vol. 19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생각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회사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면서도 워라밸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밥 먹고 씻는 것도 힘들어 마감날짜가 주어진 서평도 겨우 썼기 때문에 뭘 더 해보려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집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 직장에선 가급적 색을 지우려고 애쓴 흔적을 가만히 둬보기로 했다.


회사는 나의 생산력을 기준으로 나의 노동 능력을 가지고 월급을 받는 곳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전화를 하고, 메일을 쓰고, 사람들과 여러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능력을 조금씩 돌려가며 쓴다. 나는 이걸 노동편집능력이라고 부르는데 일하는 사람들, 즉 노동자는 한 가지 능력을 특출 나게 쓰기보다 필요한 기술을 그때그때 업무 상황에 적용해 가며 생산적인 하루를 보낸다는 뜻이다. 어떤 직종이든 업무 매뉴얼이 있고 자신의 몸이 일에 맞게 세팅되어 매일이 같은 일로 채워져 있는 삶, 바로 근로자의 인생이다.

나는 이 건조하고 권태로운 곳에 나만의 재미를 입히기로 했다. 나의 노동력만이 필요한 곳에 내 생활을 포기하지 않도록 창의성을 더하기로 한 것이다.


삶을 예술로
인생을 예술로
하루를 예술로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가 한 말을 인용하자면, 삶의 모든 것이 예술이다. "당신이 하는 일, 입는 옷,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과 화법, 당신의 미소와 성격, 신념과 모든 꿈, 차를 마시는 방식, 집이나 파티를 꾸미는 방식, 장보기 목록, 당신이 만드는 음식, 글씨체... 삶은 예술이다."


제각기 세상과 자신,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방식을 통해 일상을 창조한다. 창의성을 행위가 아닌 존재의 한 방식으로 본다면 마치 삶 자체가 예술작품인 것처럼 매일 삶에 도전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 '일상 예술가'라고 이름 붙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일상 예술가로 거듭남으로써 창의성이 단순한 행위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 우먼카인드 vol 19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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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 제일 먼저 장바구니 목록에 두었던 무채색의 예쁜 체크리스트지와 메모지를 구입했다. 그리고 회색 형광펜을 샀고 체크리스트지 위에 별의별 일들을 나열해 놓았다.

새로 들어오는 의료진들을 위한 홍보 AD 준비 목록들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쓸 포스팅 리뷰 주제도 숫자로 일렬 세워 기입했다. 부모님들께 선물할 떡 종류와 앞으로 사고 싶은 쇼핑 목록들도 빼먹지 않았다. 회사의 일 말고, 개인적인 일도 업무처럼 하나씩 해치워나가는 방법이었다.


차분한 색감이 입혀진 메모지에 하나하나 볼펜의 굵기를 바꾸며 쓰는 재미가 있었고, 마음에 드는 형광펜으로 주욱 그으며 리스트를 지워가는 기쁨과 일하기 싫어 아무 생각 없이 버티는 시간을 창작의 시간으로 채우는 밀도감을 느꼈다. 너무 흔한 소재로 일상 예술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맞나 싶지만 차츰차츰 일테기가 극복되고 있고 이렇게 별 일 아닌 것만으로도 사람은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좀 더 재밌게 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충분했다. 눈으로 아름다운 색의 조합이 보이니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개념이 다채롭게 채색된 것처럼 느껴지는 수확도 얻었다.




또 하나의 일상 예술가가 찾은 재미가 있다면 아침에 하는 공부다. 어떤 공부?

영어? 인문학? 철학? 경영? 마케팅?


미안하지만 졸린 눈 비비고 일어나 그런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나의 관심이 지극히 관여되어 있는, 그런 종류의 공부를 해야 끊기지 않고 오래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를 알아가기 위해 명리학에 대해 여러 정보를 모으고 있다. 사람들은 쉽게 사주팔자? 점쟁이들이 보는 그거?라고 말하는데 요즘 사람들이 배우는 명리학은 MBTI처럼 자기 존재를 명명하고 깊게 탐구하기 위해 스스로 알고 깨우치는 어엿한 학문으로서 자리 잡았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이 명리학을 통해 기질분석이 가능하게끔 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운명론을 제시하는 것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 앞으로 어떤 시대에서 어떤 방법과 전략으로 나의 미래를 그려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출근하면서 조금씩 읽다가 퇴근하기 전 할 일을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아침에 배운 것을 타이핑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업무량에 따라 못 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일하는 시간을 좀 더 타이트하게 짜면 집중이 훨씬 잘 돼서 결국 일과 개인적인 생활에서 윈-윈이다. 물리적인 시간과 체력에 쫓겨 할 수 없었던 재미를 일에 포함시켜 새로운 창조력으로 확장시키는 게 나의 일상 예술이 된 것이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아 실패만 건지는 하루도 있다. 불안과 수치심 속에 벌벌 떨며 그 자리를 겨우 지킨 날들이. 그럴 때는 그 상황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크게 의미두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에 내가 브런치에 썼던 글처럼 나는 '작은 일'을 할 뿐이라고 되뇌면서 평범한 행위들에서 아주 작은 재미를 찾는다.


분명한 건 지루했던 하루들이 조금씩 재밌어지고 있고 이런 변화는 나의 삶을 재정렬, 즉 재창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회사에선 꼭 일만 해야 하는 줄 알고 집중이 안 될 땐 시간 때우기에 급급했는데 이제는 개인 생활의 일을 업무 시간에 적절히 버무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균형 있게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일하기 싫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서 오늘 하루는 어떤 딴짓을 하며 같이 일하고 놀지를 궁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일상 예술가로서 우리는 삶을 하나의 커다란 실험으로 대할 수 있다. 이 실험으로 자신에게 활기를 주는 것을 찾고 용감하게 다가가서 그것을 통해 자신을 확장시킨다.

우먼카인드 vol.19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지겨운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면 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든 회사에 남아 있으려면 뭔가를 시도하고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내게 활기 주는 것을 찾고 발견하면 즉시 실행해 볼 지어다.

자꾸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뇌는 여러 면면으로 넓게 생각할 수 없고 한 가지 길로 고집스럽게 생각을 축소시킬 것이다. 아마 몇 가지의 단서만으로 모든 일을 안 좋게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왕이면 하루를 즐겁게 정의 내릴 수 있도록 나의 변화를 독려해 보자. 일상 예술은 정말 어려운 게 아니었다. 향이 좋은 핸드크림을 사서 수시로 손등에 바르는 것일 수도, 컴퓨터 배경화면을 예쁘게 꾸미는 것일 수도, 하다못해 마음에 드는 캐릭터로 만들어진 탁상달력을 책상 위에 두는 것만으로도 일상 지겨움에 숨어 있는 우리의 창조력을 건드릴지 모른다. 나의 하루 속에 숨겨진 기쁨은 그렇게 찾는 거다.


일테기에 빠진 직장인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예술은 내가 살고 있는 삶, 그 자체이며 매일 변하는 내 자신이라고.



- 아직 용기가 없어 퇴사를 하지 못한 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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