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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Mar 02. 2023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져 그녀들을 기리며 궐기한 것을 기념한다고 한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요구했고 UN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 1977년 3월 8일을 특정하여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여자이고, 또 여자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많은 일들과 느낀 감정들 때문인지 여성의 이야기와 여성이 갖고 있는 매력은 늘 내게 자극제가 된다. 특히 책과 영화에서 영감을 이끌어내는 여성들은 묘하게 공통점이 있는데 오늘은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여자들을 좋아하는가


<버너자매>의 앤 , <빌레뜨>의 루시 , <환락의 집> 릴리, <우아한 연인>의 케이트. 책의 인물도 있지만 실존인물 에밀리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또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여성들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점이?


모순에 휘둘리면서도 중심을 찾으려 했던 여성

첫 번째, 빌레뜨의 루시는 빅토리아 시대의 비혼 여성을 대표하며, 지금 시대에서야 '비혼'이 주목받고 또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그 옛날 비혼여성은 꽤 낮은 직급으로 평가받고 불쌍한 여자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루시는 기숙학교의 교사지만 지금의 교사 위치보다 굉장히 아래에 있는, 요리사나 집사보다 보수가 적고 가정주부와 하녀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직업이었기 때문에 비혼여성의 삶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는 뻔하디 뻔했다. 하지만 내가 루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한 남성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그 남성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다스리는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남성에게 고백 편지를 받고 뛸 듯이 기쁜 루시지만 애써 그 마음을 침착하게 다독이고 본인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양면적인 모습. 사랑에 상처받기 싫어 먼저 방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다른 여성처럼 남자의 사랑으로 신분을 상승시키고 살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본인의 삶을 정하고 그 인생에 맞게 소신을 지키며 나아가는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루시가 절제된 감정을 따르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할 줄 알고 그 가치를 소신 있게 밀고 나가는 점에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여성의 주체적인 노력이고 자신의 삶을 건 도전이자 용기니까.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바라본 여성

환락의 집 릴리는 뉴욕 재력가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연이은 부모의 사망에 고아가 되면서 후견인 고모와 함께 살아간다. 남다른 외모와 센스, 섬세한 취향 덕분에 남성들에게 인기는 많지만 나이가 많은 게 걸림돌이라 자신에게 청혼하는 아무 남자와 결혼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릴리는 결혼상대로서는 아니지만 어쩐지 본능적으로 끌리는 남자와 결혼상대는 충족되지만 영혼이 끌리지 않는 남자 사이에서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삶을 끌고 가는 게 인상적이다.


아마 수동적인 여자였다면 나이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이 조건에 수긍하여 결혼했을 것이다. 하지만 릴리는 본인이 원하는 물질적 욕망과 정신적으로 자신의 이상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남성을 기다렸다. 주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본능을 따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바라보고 인정하는데서 오는 자존감이 아니었을까.


결혼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고 결국 자신의 노동으로 정직한 독립을 하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천성적으로 비참하고 초라한 환경, 가난과 누추하게 타협하는 일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녀가 갖고 있는 노동력이라는 건 실로 너무 쓸모없는 것이었으므로(상류층 파티계획 같은 것들) 결국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전체적으로 그녀의 삶은 슬펐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볼 수는 없었다.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차근차근 이뤄가는 여성

상류층 맨해튼과는 전혀 다른 도시, 브루클린 출신 케이트는 본인의 살아가는 환경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양심에 인생을 맡기며 자기의 삶을 꾸려가는 여성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독서는 케이트가 더욱 성숙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무기다.


앞서 두 여성과는 좀 더 현대적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남성을 통해서만 신분상승이 가능했던 건 아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가부장적인 문화와 정치가 배경인 시대에서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는 일은 좀처럼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트는 천성적으로 물려받은 본인의 성격과, 문화를 습득하면서 기른 취향과 안목으로 자신의 욕망을 차근차근 이뤄가는 여성이었다.





이밖에도 많은 여성은 언제나 내게 삶을 살아가는 영감을 준다. 그 영감의 원천은 밀푀유나베를 벗기듯 촘촘히 놓여있는 여러 모습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내게 큰 영향을 주는 건 언제나 '우아함'이다.


마냥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우아하게 먹는 장면이 아닌 박복한 환경에서, 밑바닥을 드러내놓고 모순적인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실행할 때에 자신의 삶을 밀고 나갈 결정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들인 것이다.


<버너자매>의 앤은 헌신적으로 아픈 동생을 보살폈지만 결국 죽고 나자 모자가게를 팔고 혈혈단신의 늙은 몸으로 일할 곳을 찾아 떠났고, 에밀리 디킨스는 순간마다 찾아오는 외로움과 불행을 옆에 두고 시를 썼다. 그녀들이 느꼈던 복잡한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고, 아니 감추었을지언정 언제든 금세 드러내어 인정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우아했다. 그 덕분에 내면의 깊이는 한층 더 격정적으로 깊어졌고 이는 시, 글, 음악, 그림의 예술로 표현되어 현대의 여성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격정적인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여성들이 우아함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자제와 절제로 발휘된 욕망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절제의 미덕은 여성이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었고 이는 곧 속마음을 잘 숨길 줄 아는 영역으로 발달되어 특유의 히스테릭함으로도 절절하게 드러난다. 누군가는 이 까칠함이야말로 여성들만이 갖고 있는 매력의 정점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감정은 결국 모든 것을 인내하고 참아야 하는 환경에서 까다롭게 다듬어진 결과물이므로 여성의 정점에 있는 매력은 이런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데 있고,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무수히 많은 밤을 불면의 시간으로 지내본 여성만이 가지는 삶의 정수가 있다.


아아 나는 이런 여성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고야 만다. 있게 태어났든 없게 태어났든 스스로를 못 믿어 쉼 없이 증명하고 까탈스럽게 삶을 꾸려가는 여인들의 강인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인생의 고독을 내치지 않는 이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내가 취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고 돌이키고 싶지도 않았다. 뒤로 물러서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나았고, 아무리 좁고 험난해도 조만간 길이 열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강력하고도 막연한 생각이 다른 감정들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 빌레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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