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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Oct 15. 2023

내일 불행이 찾아온다면 지금 당장 웃긴 걸 봐요


9월은 내게 악몽의 한 주를 선사한 달이었다. 직장에서 민원을 받았고 익명의 아이디에 숨어 실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에게서 무서운 말들을 들었다. 신고 이야기까지 나와 일단 사실 관계를 정확히 따지기 위해 팀장과 머리를 맞대며 어떻게 대응할지 전략을 짜는 동안 이미 나는 그에게 졌다고 확신했다.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으니까


내가 또렷하게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책임도 있었기에 그 민원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사과와 해명을 동시에 하면서도 언제 또 들이닥칠지 모르는 악플에  대해 심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실체를 모르고 누군지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을 미워하는 일.


내 몸과 영혼을 갉아먹는, 이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이때쯤 우리나라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의 행동이 온 사람들의 씹기 좋은 오징어가 되었고 도를 넘은 학부모의 만행은 교사를 무너뜨렸다. 너도 나도 나의 말이 맞다는 착각과 내 행동이 옳다는 그릇된 신념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문제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듯이 심심해서 쓴 비난 댓글 하나가 당사자에겐 심장이 쿵 떨어질 정도로 잔인한 행위였고 다른 누구는 "뭘 그런 말에 신경을 써?"라고 간단하게 말하지만 그 사람도 정작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안 미칠 수 없다고 장담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나도 그동안 시청자란 이름으로 화면 뒤에서 얼마나 남들의 불행을 씹길 좋아했나. 방송에서 보인 모습만 보고 마치 전체를 알고 있는 듯이 쉽게 말하고 욕하고 손가락질을 해댔는지. 역지사지가 되어보니 이제야 사람이 사람처럼 보였다. 당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 있는 친구, 가족과 마찬가지로 정말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는데 공개처형이 당연한 것처럼 그들의 삶을 너무도 쉽게 소비해 버렸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자면 근무시간 내내 다른 사람들 몰래 한숨을 몇 번을 내쉬면서 또 업무는 해야 했으므로 동료들과 농담도 하면서, 가족에게는 별말 없이 늘 하던 대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 시간은 굉장히 버거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나대로 준비를 해가며 상대측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걷는 도리밖에 없었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제발 그 폭탄이 터지질 않길 바라는 기도. 그것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평화로운 상황에서 했던 기도는 이때를 위한 것이었을까. 당연하다고 여겼던 하루의 모든 것들이 바뀌어버린 시간, 불안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읊조리는 기도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자 자기반성이었고 계속 나아가도록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후들후들 떨리는 두 다리로 걸으려면 '지금 이 상황이 곧 나아질 거‘라는 모래알 크기의 믿음이 필요했다. 그래서 겉으론 잘 지내는 척 표정을 지으며 마음속으로는 신께, 나의 모든 불안과 걱정을 토해내는 시간을 보냈다.



우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 일련의 방법으로 깨끗하게 씻고, 옷을 다려 입고, 신체를 꼿꼿이 유지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면을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아한 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한 순간 포착된 장면에서 얻는 고급스러움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며 그런 장면들은 너무 쉽고 이쁘게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아한 건 결코 그게 아니었다.


우아한 건 백조의 고고한 표정이 아니라 수면 아래서 발버둥 치는 발이었다는 걸. 그 수만 번의 발버둥들, 치사하고, 유치하고, 힘들고, 애쓰고, 애달프고, 속앓이 하는 모든 걱정과 불안을 마주하면서 그것들을 포용하는 힘 위에 서는 일이 우아함이었다. 실수는 실수대로, 실패는 실패대로 겪으며 주저앉고 일어서길 반복하는 발차기가 있어야만 백조는 유유히 물 위를 떠다닐 수 있었고 아마 백조도 힘든 일이 있을 땐 눈은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더 힘차게 발버둥을 쳤을 거다.


그동안 내 가슴에서 고정되어 있던 우아함의 범위가 달라졌다. 단순하게 좋은 옷을 입고 온화한 표정을 짓는 게 전부가 아니라 잘못된 일을 잘 해결해 보고자 애쓰는 시간을 보내고 심사숙고하여 고민하는 과정이 반드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킬 거라고 믿는 시간이 나를 우아한 사람으로 만든다.



타인은 나의 불행에 관심이 없다. 오직 내가 그 불행을 견디고 극복해 내야 한다. 극복이란 말은 입에서  쉽게 뱉어지지만 실제 그것을 이루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어두운 감정과 계속 마주치면서 나를 잘 어르고 달래며 앞으로 걷게 해야 한다. 마치 손과 발을 못 쓰게 된 재활환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물리치료사처럼, 혹은 매일 불행의 편지를 배달하는 배달부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믿고 의심하기를 반복하면서 자기혐오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일이 어려우면 믿는 척이라도 해서 기어코 앞으로 가야 한다. 얼마간은 움직이지 못하고 숨을 고르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결국 극복하려는 의지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우습지만 아직 나는 극복해내지 못했다. 여전히 사무실 전화기가 울리면 혹시라도 신고 전화가 걸려온 건 아닌지 오금이 저린다. 그 순간 호흡은 없어지고 머나먼 우주에 잠시 홀로 떨어진 사람의 시간을 살다 오는 하루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능하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몇 마디 말로 그동안 내가 유지해 온 하루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일을 놓지 않으려 한다. 평소처럼 필라테스 수업을 받으러 가고 남편과 시시껄렁한 농담도 주고받는다.


요즘의 시대가 좋아진 걸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재밌는 콘텐츠가 많다는 거다. 여러 OTT와 유튜브에서 일부러 재밌는 영상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잠시 거실 바닥에 누워 짧은 영상을 보고 있으면 종일 내 머릿속에 플레이되던 비난의 화살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이 '잠시'의 순간이 쌓이고 쌓여 내 마음에 가득했던 스스로의 불신 자리를 조금씩 몰아내고 그저 재밌는 감정이 자리를 잡는데 누군가 불행한 하루를 극복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반드시 얘기해 주고 싶다.


"제발 재밌는 걸 보세요"


재밌는 걸 직접 하지 않아도,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된다. 편안한 곳에 앉거나 누워서 웃긴 예능이나 콘텐츠를 찾아 낄낄낄 웃는 것이다. 예능인 홍진경 님은 암투병 중일 때 일부러 무한도전 프로그램을 찾아봤다고 한다. 내 주변의 어떤 분도 힘든 시기에 일부러 재밌는 예능을 찾아봤다고 했다.


내가 직접 겪어보니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일은 굉장히 아름다운 일이었다. 답답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당장 여유를 잃고 마는데 가령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과 다정함 같은 것들을 챙길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점점 나의 세계는 편협하게 좁아지고 결국 주위의 사람들과 멀어지고 만다.


그전에 우리는 스스로를 구출해야 한다. 좁은 동굴에 숨어드는 자신을 데리고 나오는 일, 죽어가는 사람을 스스로 살게 만드는 일은 웃음이 유일무이하다.


슬픔의 시간을 걷고 있든, 불안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든 우리가 그 시간을 충분히 '잘' 극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그래서 각자 어떤 방법으로든 그 시기를 거쳐야 한다면 즐거운 시간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어쩌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숨 쉬는 것조차 벅찰 때도 있겠지만 아주 조금씩 그 숨이 고르고 부드러워질 때 반드시 즐거운 시간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내가 해본 것 중에서는 단연코 유튜브에서 짧은 시간으로 많이 보이는 예능짤이 최고였다. 아무 도움도 안 될 것 같이 보여도 '피식' 웃는 소리가 스스로를 일으키는 신호가 된다. 이런 시간이 먼지처럼 아주 작게 소복하게 쌓여 어느덧 뒤를 돌아보면 어쨌든 우리는 그 시간을 잘 견뎌왔음을 알 수 있다.


내일이면 또다시 울릴 전화기 소리에 내 심장은 덜컥 내려앉을 테지만 어제와 오늘 재밌는 영화를 틀어놓고 잠시 현실을 잊는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켜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일을 살아낼 것이고 사무실 전화기가 울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유튜브에서 예능을 볼 것이다. 당분간은 이 웃음만이 나를 살려내는 유일무이한 일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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