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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Apr 10. 2024

벚꽃의 계절엔 어른의 공부를


유난히 긴 시간을 보내고 맞는 듯한 봄이다. 눈 내리던 겨울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더니 갑자기, 온몸을 휘두르듯 봄이 왔다.


냉장고를 열어 탄산수를 꺼내는데 부엌 창문에 벚꽃이 보였다. 아파트 뒤에 낮고 둥근언덕이 있어 10층 높이의 창에 나무가 걸리는 멋진 풍경이 보이는 집이다. 특히 봄의 전경은 나를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한다. 얼른 유튜브에서 노래를 틀어 창가에 코를 박아 꽃잎 하나하나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본다. 살랑바람이라도 불면 꽃비가 창문을 건드리고 그걸 바라보며 나는 작은 탄성을 뱉는다.


봄, 찬란한 봄. 다들 봄을 마주하러 밖으로 밖으로 나가는 계절. 시원한 한강도 좋고 고요한 삼청각 거리도 좋고 정겨운 집 앞의 골목도 좋을 시간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쉽게도 나의 봄은 부엌 베란다와 서재에 있다. 아니면 집 근처 가까운 스타벅스 카페 정도. 여하튼 근사한 골목과 벚꽃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커다란 창밖을 구경할 장소는 없다는 사실이다. 마음 같아서는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좋은 스피커가 있는 맛있는 커피가 있는 카페에 가 있고 싶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벚꽃의 계절을 나의 공간에서 보낸다.



1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봄은, 특히 벚꽃이 완연하게 절정을 드러나는 시기를 생각하면 아릿한 감정이 든다. 아릿함은 슬픔과 쓸쓸함을 모두 아우르는 감각으로 계절의 절정을 홀로 고독하게 맞는 사람들이 생각나게 한다.


취준생 시절, 도서관에서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하루종일 연락하는 친구 한 명 없이 지친 마음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 거리에 흩뿌려진 꽃들이 꽤 아름다웠지만 매일 책상 한 구석에 앉아 고독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틈에서 맞이하는 봄은 그만큼 괴롭기도 했다. 나 빼고 모두 행복한 계절을 지나고 있었으니까. 결코 내게는 그런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의 두려움을 찬란한 봄마저 어쩌지 못했으니까. 지금도 봄은 누군가에겐 치열한 삶의 전쟁을 치르고 아주 잠깐 눈에 담는 계절의 한 모습일지 모르고 기지개를 켜며 반쪽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벚꽃에 염원을 담아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의 계절일 수 있다. 아마 이런 양가의 감정 때문에 나는 봄을 더 사랑하고 애틋하게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년의 봄이 마냥 행복하고 밝은 것은 아름답지 않단 생각이 든다. 어딘가 모르게 처연하고 슬픈 사연 하나쯤은 있어야 찬란한 봄을 더 향기롭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이 봄에 혼자, 구석에 있는 것을 변태처럼 즐긴다. 약간의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지만 이대로 나쁘지 않다는 마음이다. 이번 주말에는 좋은 음악을 찾아 하루종일 플레이하면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벚꽃과 그 옆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쓰고 싶은 글을 생각하고, 읽고 싶은 책을 고르며 하루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그토록 내가 쓰고 싶고 말하고 싶었던 책은 중림서재에서 나온 <어른의 공부>다. 모임장 곽아람과 중림서재 독서모임 구성원들이 함께 읽고 함께 만든 책이란 부제를 달고 세 권의 책(데미안, 금각사, 위대한 개츠비)을 읽고 난 뒤의 토론을 담았다.


아침 출근 시간,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책장을 촤락 넘기며 읽었다. 얇고 가벼워서 짧은 시간에 읽기 좋았는데 그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내게 필요한 이야기였다. 매일 업무에 관한 이야기와 시답지 않은 하루의 일상을 주고받는 사람들 외에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흘러가는 지적인 대화가 하고 싶은 때 이 책은 내가 마치 그 독서모임에 참여한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같은 데미안을 읽고도 누구는 가스라이팅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다른 누구는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해석을 제시했다. 겨우 3~4페이지를 읽는 정도였지만 매일 조금씩 확장되는 삶의 시선을 재는 게 좋았고 여전히 책 읽으며 공부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 그렇게 교양과 학문이 집약된 시간을 책 속에서 보냈고 그 계절이 이 봄이라는 게 너무도 아름다웠다고 하면 내 감정이 지나친 걸까?


모든 꽃이 만개하여 절정을 향해 꽃망울을 터트릴 때 홀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병원에서 투병하는 사람들, 떨어진 면접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취준생들, 이 일은 정말 아닌 것 같지만 또다시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 주변 친구들은 다 연애하는데 혼자 집에 있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홀로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봄은 그만큼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나처럼 불러낼 친구 하나 없어 혼자 집에서 책이나 읽으며 작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봄은 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돌 하나를 손에 쥐고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앞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업무를 계속하려면 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온전히 들어맞는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퇴근하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그 이유는 회사에서 하루종일 발을 동동거리며 반드시 이 일을 잘 끝내겠다고 열심히 했지만 무색하게도 모조리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조적인 웃음과 진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진짜 되는 게 단 하나도 없는 날이네. “


예전 같았으면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이 분해서 하늘과 나와 주변 사람을 원망하며 안 된 이유를 하나하나 곱씹었겠지만 어쩐지 그날은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런 날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 실패하면 하라지, 내일 또 실패하면 되니까.‘라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슬쩍 쥐었던 것 같다. 마치 내 손안에 단단한 돌을 쥔 것처럼. 내일 하루도 또 망해도 괜찮을 거라는 자신이 들었다. 그것이 용기였는지, 자존감이었는지, 혹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포기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침마다 읽으며 머릿속에 넣었던 책 속의 사람들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통했던 지점이 남아 있었던 것 같고 저번 주에 봤던 영화 속 인물이 지나가며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 것 같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스스로 모아 왔던 나의 괜찮은 면모들, 자잘한 성취감, 좋은 이야기, 유심히 여겨 봤던 사람들의 배려있는 행동이 이 돌 안에 모여 단단하게 굳어 내 주먹 안이 텅 비어 있지 않게 꽉 채워 주었다. 특히 매일 힘들었던 사소한 얘기를 일기장과 아이패드 메모장에 폭포처럼 쏟아부었던 글들은 이 돌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그 행위들은 나의 작지만 단단한 용기가 되었다.


마냥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는 용기를 돌로 만들어 내 손에 잡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소리 없이 ‘악’ 파이팅을 마음속에 외치고 세상을 걸어가는 힘으로 전환된다. 아무것도 붙들 게 없는 고독한 세상에 스스로 만든 돌을 단단하게 쥐고 간다. 이 단단함이 더욱 견고해지도록 어른공부를 쉬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찬란한 봄, 외롭게 홀로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이여, 각자의 돌을 단단히 쥐고 이 짧고 아름다운 벚꽃을 각자의 자리에서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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