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뜰 May 23. 2024

40만 원의 돈을 가지고

 

마흔이 되도록 재테크가 뭔지 모르는 어른은 돈을 잘 모으는 것과  쓰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연금저축과 연금보험의 차이도 겨우 알아가는 수준에 보험비가 뭘 어떻게 나의 인생을 보장하고 있는지 새로운 마음으로 약관을 확인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의 보험까지 들쑤시고 있는 걸 보면 요즘의 이런 부지런함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건 모두 뉴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나의 노후가 비참해진다. 연금이 바닥나고 있단 소식부터 물가 인상, 금리 동결에 더해 금테크와 비트코인, 주식, 부동산 시장까지..

도대체 인간은 죽을 때까지 경제의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할까? 예전 우리 부모님처럼 은행에 가서 이율 좋은 적금 몇 개 들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자식 대학 보내는 인생을 계획할 순 없을까?


이 문장을 쓰면서 코웃음이 났다.

“아니 왜 못 살아? 살 수 있지.”

근데 집은 어디 외과지역의 오래된 집, 차는 작고 가성비 좋고, 자식은.. 대학은 안 가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한다면  어찌어찌 살 수 있겄지.


그런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얼른 다시 계산기를 두드린다. 우리 부부가 한 달에 내는 보험비와 적금, 주식에 들어가 있는 돈 등등을 말이다.

엑셀 시트에 그동안 모아 온 적지만 소중한 돈을 적었다. 그리고서는 주식과 비트코인, 부동산으로 돈 버는 법은 죽었다 깨도 모르겠어서 내 성격에 가장 알맞은 재테크인 적금을 두 개 더 들었다. 1년과 3년의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므로 결정적인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이걸로 나마 잠시 나의 노후를 기대어 본다.


돈이란 참으로 기묘하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나쁜 이분법식의 감정으로 치닫다가도, 있다가 없어지는 돈의 얄궂은 속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에 어떤 시선으로 돈을 대해야 할지 어렵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초월한 마음을 가지고 싶지만 역시 나는 미련한 사람인지라 돈 앞에 장사 없어 있으면 좋고 없으면 짜증이 난다.



우리 부부는 각자 용돈을 받는다. 순수 금액인 40만 원이다. 그 돈으로 친구 생일 선물도 사고 책도 사 읽고 내가 사고 싶은 걸 사서 쓴다. 운 좋게 몇 달을 모으면 꽤 큰돈이 되어 약간의 사치품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난 늘 그렇듯 돈이 들어오면 일단 쇼핑 장바구니를 쫙 훑어본 다음 자잘한 몇 개를 사서 금방 잔액 0원을 만든다. 진짜 자잘한 것만 샀는데.? 몇 개 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40만 원을 일주일 만에 홀랑 써버릴 수 있는 건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친구가 1만 원대 몇 개를 샀을 뿐인데도 카드값이 100만 원 넘게 나왔다는 얘길 한 적이 있어 마구 웃었던 내가 딱 그 꼴이다.


통장에 빵꾸가 났나?


근데 내가 더 답답한 건 바로 이 지점부터다. 돈이 있을 때는 언제든 사고 싶을 때 살 수 있단 마음에 하나의 물건도 몇 번 고심해서 사게 되는데 꼭 돈이 모자라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지 당장 그 물건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당장 입에 넣어야 하는 쌀도 아닌 휑한 벽 한편을 치장하는 단순한 그림 액자일 뿐이면서 지금 안 사면 모든 불행이 내게 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당장 내 손에 쥐어져야 행운이 쏟아져 올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그 느낌 때문에 용돈 40만 원은 매달 내게 스치듯 떠난다.



올해 생일이 지났다. 가족들에게 받은 생일 축하금을 봉투에 고이 넣어 서랍장 위에 올려놓았고 아직 은행에 넣지 않았다. 이번에도 돈이 있는 걸 알면 금방 온라인 쇼핑을 해댈게 뻔하니 이번에는 현금으로 그냥 둬보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며칠 정도는 눈먼 돈을 빨리 써야겠단 조급함도 없었고 또 막상 사고 싶은 것도 없어 하루하루를 조용하게 지낼 수 있었다. 원래 이맘때쯤이면 봄옷과 가방 하나를 사고 싶어 드릉드릉 갈갈이 날뛰는 마음을 잡느라 꽤 애를 먹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내 마음에 드는 게 없단 사실 하나만으로 소비 충동을 거의 느끼지 않았고 심지어 여유롭게 명품 브랜드가 아닌 에코백 위주의 실용적인 가방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읽고 싶었던 책도 장바구니 한 가득이었지만 되도록 온라인/오프라인 도서관을 이용하며 서재의 책을 한 번 더 읽는 내가 있었다. 이상하게 이번에는 돈을 서랍장 위에 고이 남긴 행동 하나만으로 꽤 가뿐하게 대부분의 소비 유혹을 넘길 수 있었던 거다.


“꼭 내 마음에 드는 게 나타나면 사야지. 그때 사도 늦지 않아. 지금은 모든 것이 충분해.”


충분하다는 마음.

늘 말로만 되뇌고 머릿속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왔던 (enough) 이너프의 세계.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감각이 몸과 마음, 머리로 고스란히 꽉 찬 들어선 날들이었다. 그리고선 무언가를 소비하는데 쓰던 계산과 고민, 스트레스가 없으니 회사 업무에 훨씬 집중할 수 있었고 쇼핑하는 시간 대신 채워지는 독서 시간의 밀도감이 좋았다. 늘 무언가를 사기 전, 가격을 비교하고 할인 쿠폰을 챙기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집중력을 방해하는 일등공신이었는데 ‘소비의 무’ 상태에 놓이니 그런 잡스러운 생각들이 없어져 머릿속이 강제 디톡스가 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렇게 꽉 찬 느낀 감각은 처음이어서 스스로 꽤 신선했고 가능한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었다.


‘무’의 상태가 단순한 소비생활을 넘어 나의 삶의 태도에 서서히 안착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 느낌은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무에서 무가 창조되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바로 충분함이었다.

<없는데 충분히 있는 것>


이건 충분한 감정에 의해 ‘유’의 성격을 띠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단단하게 속이 텅 비어 있는 ‘무’의 재질인 것이었다. 그러니 없지만 갖고 있는 느낌. 없어도 충분하단 느낌. 없지만 존재하고 있는 감각이 확대되면서 늘 내가 염두하고 있는 미래의 불안함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내가 지금 늘 불안하고 걱정하던 이유는 미래의 내가 가난하고 돈 없는 사람일까 봐서였다. 그런 마음은 지금의 나는 늘 부족하고 없는 사람이라 믿었기 때문이었으며,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의 결핍에 매일 주목해 생긴 것이었다. 존재하지도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을 ’ 돈 없고 자신감 없는 나‘로 지극히 인식해 생겨난 현재의 불안이 내가 갖고 있는 건강과 가족, 친구, 직업을 부족하다 여기게 만들었고 더, 더, 더 많은 돈이 있어야만 완벽한 건강과 가족, 사랑, 우정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게 했다.


얼마나 가난한 생각인지 모르겠다. 진짜 가난은 돈이 없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빈약한 생각과 믿음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 당장 갖고 싶은 걸 손에 넣어야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라니. 나는 어쩌면 그동안 스스로 불쌍한 삶을 자처해서 만들어 오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실 그동안 ‘충분하다’고 믿는 것은 종종 해왔던 일이다. 지금 인생이면 충분하다고. 더 바라면 죄라고 까지 생각하면서 주어진 하루와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충분하지 못해서 친구들이 갖고 있는 명품 가방을 부러워하고, 세계여행 떠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큰 집으로 평수를 넓혀 이사 가는 사람을 배 아파했다. 그러면서 몇 개의 비싼 소비를 통해 아주 잠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딱 이틀. 다시 부러워할 대상을 찾아 헤매며 그들을 질투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지도 못할, 그저 내 만족을 위한 여러 형태의 물건을 소비하면서 절제심을 잃어간 것이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쩔쩔 매어 끌려다니던 불안한 마음들이 몇 년 동안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의도치 않게 생일축하금을 그대로 둔 덕분에 사지 않는 ‘무’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발견하고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으니 점점 내 생각을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고 어떤 것을 사더라도 남의 이목에 상관없이 내게 꼭 맞는 물건을 자유롭게 소비할 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특정 명품 브랜드를 부러워하지 않고 진짜 내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가방을 찾는다거나 연필치고는 비싼 감이 없지 않지만 책에 남기는 부드러운 필기감과 손에 잡히는 묵직한 바디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충족감이었다.


물론 지금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아름다운 물건을 발견하곤 숨이 턱 막힐 때가 종종 있지만 그럴 때마다 ‘무’의 단순함을 떠올린다. 그리고서는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지금의 내 생활을 바라본다.


욕망에 속수무책 끌려다니지 않고 언제라도 불안한 현재 마음을 충동질하는 소비의 신을 탁! 끊어낼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는 지금의 상태가 너무 좋다.



우리가 좋은 기분을 느끼거나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 되는데 꼭 성취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실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약간의 음식과 물, 우리가 도전해 볼 만한 일, 역경 속에서도 차분한 마음, 잠, 단단한 일상, 우리가 헌신할 대의,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어떤 일 정도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모두 곁가지일 뿐이다.
<책, 절제수업>



아무도 보지 않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일에서든, 글을 쓰는데서 든, 혹은 하루의 삶을 그냥 살아내는 동안에.


그렇게 마음먹으면 무슨 일이든 힘을 빼고 좀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끝내주는 카피를 써야 할 부담감과 화려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해야 하는 내 능력을 걱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게 바로 ‘무’의 능력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일을 처리하다 보면 결국 일은 해결되고 또 어찌어찌 굴러간다. 당연히 삶은 또 다른 새로운 문제를 갖고 오지만 그 순간을 지내는 방법도 모두 안달복달 걱정하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예전에는 모든 것에서 비롯된 불안을 나의 소비적 쾌락으로 덮었다면 지금 내가 바라는 일은 약간의 음식을 먹고 잠을 잘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심플한 일상을 꾸려가는 것이다. 갖고 싶고, 하고 싶은 모든 욕망을 절제하면서 내 삶이 더없이 단순해지고 그렇다면 미래의 내 모습 또한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어디선가 “오늘을 사는 내가 미래의 나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그리곤 깨달았다. 매일 실체를 알 수 없는 앞날의 걱정은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과 걱정 속에서 지어진 무상한 것들이었다는 걸. 그러니 미래의 내가 잘 살려면 오늘의 내가 잘 살고 있으면 되는 단순한 원리를 이제야 깨우친 것이다.


기분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사지 않는 절제의 힘을 기르면서 앞으로 살아내야 하는 삶을 연습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닥쳐올 많은 문제를 차분한 머리로 해결하기 위해 돈과 마음을 제대로 쓰는 연습 중이다.


‘무’는 나를 구원한다.

‘없어도 충만하다’는 마음은 나를 늘 새롭게 자각시킨다. 모든 것의 덧없음과 허망함이 꽤 꼬여있는 내 생각과 고민을 어느 정도 단순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전히 미래를 위해 적금을 들고 또 다른 보험을 알아보며, 여행을 위한 돈도 마련하고 있지만 이런 행위가 완벽한 미래를 위한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일은 더 나은 사람으로 될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소망을 현재에 이행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벚꽃의 계절엔 어른의 공부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