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틈틈이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단어 몇 개를 적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문장을 두서없이 적기도 했다.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 모여 문맥을 이루었을 때 이제는 뭔가를 쓸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과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통 모르겠어서 여러 날 패드를 열었다 닫았다. 필터 없이 써내려 간 이야기는 모조리 메모장에 일기로 남겨졌고 여전히 이곳에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어리둥절 그곳에 남아 있다.
오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일정한 주제 아래 내 이야기를 말하기보단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때론 방황하다 길을 잃는 꼬마 아이처럼 적어 보겠다.
(오늘은 소설 연재 대신 에세이로 대신합니다)
그중 한 가지는 나는 늘 두 번째를 선택했던 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 말인즉슨, 취향이라는 걸 진지하게 알기 전부터 나는 정말 갖고 싶은 걸 사기보다는 가격에 맞춘, 내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차선의 선택에서 억지로 만족하며 쓰는 사람이었단 거다.
나이키가 아닌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신었고, SKT 텔레콤이 아닌 LG 텔레콤을 이용했고, 삼성 휴대폰 대신 모토로라를, 아이팟 대신 코원 mp3로 노래를 들었다. 부모님이 사주셔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업계 최고의 인기를 달리는 브랜드 대신 그것보다 낮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날이 많았던 어린 날.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취향은커녕 상품의 이름도 잘 몰라서 주는 대로 입고, 사는 대로 쓰곤 했지만 친구들이 예쁜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을 땐 나와 다른 분위기가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은 고유의 색깔로 개성을 뽐내기 시작했는데 나는 더페이스샵에서 첫 파운데이션을 고르고 니베아 립밤으로 생얼을 가리는 수준으로 젊음을 시작했으니 이미 그들을 따라 하고 싶어도 내게 잘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선 그 어떤 것도 도움 되지 못했다. 1학년부터 4학년 졸업반일 때까지 발전한 게 있다면 눈썹을 그리고 허리가 긴 내게 상의가 긴 스타일의 옷이 그나마 낫다는 걸 알았을 정도. 싸이월드 시절의 반윤희 스타일은 내게 너무 먼 그리고 낯선 세상의 이야기였다.
취업을 하고 직장인이 된 후에도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친구가 싸게 알아봐 준 삼성 휴대폰을 썼고 돈이 없어서 노트북 대신 넷북을 샀다. 그러다 스물일곱 살에 처음으로 백화점에 가서 가방을 샀는데 그동안 인터넷에서 싸게 파는 인조가죽 가방만 메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엄마와 함께 가서 마크제이콥스 쇼퍼백을 샀고, 일 년 후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루이까또즈 숄더백을 샀다. 솔직히 좋아하는 브랜드들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직장인이 들만한 수준의 가방이 있었으면 해서 샀기 때문에 남들이 들고 다니는 걸 잘 봐두었다가 따라 산 것들이었고 그나마 내가 낼 수 있는 가격대에 맞춘 것들이었다. 사심을 담아 애착을 가진 물건이라기 보단 어느 정도 내 나이와 지위를 내보이기 위한 종류의 물건을 샀을 뿐이었다.
그럼 처음 애정을 가지고 정말 내가 원해서 산 물건이 무엇인고 하면?
그건 스물아홉 살에 산 아이폰 se다. 그때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갤럭시를 잘 쓰고 있다가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SKT 매장에 들러 그냥 사버렸다. 그동안 애플의 멋짐을 구경만 하다가 드디어 손에 넣은 것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 나서도 바로 갈아타지 못한 건 뭔가 아이폰은 쓰기 어렵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갤럭시는 모든 어플이 잘 호환되고 국민 휴대폰, 효자폰의 이미지가 있었던 반면 아이폰은 젊고 감각적인 사람들이 쓰는, 까다롭지만 그 맛에 쓰는 감성이 있는 사과모양의 후대폰이었다. 불편하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내겐 그것은 적응의 어려움을 넘겨야 하는 존재였는데 몇 달의 고민 끝에 그냥 사버렸다.
왜? 그만큼 내가 갖고 싶었으니까.
그동안 갖고 싶은 게 있어도 돈 때문에 더 저렴한 다른 걸 알아보고, 괜히 어렵고 불편하단 편견 때문에 사용하기를 포기한 적이 많았던 삶이 드디어 능동적으로 변하는 순간이 왔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나는 좀 더 주체적인 소비를 나의 취향에 맞춰 할 수 있었다. 물론 원하는 그 모든 걸 사는 건 어렵지만 열 번 중 여섯 번은 내가 첫 번째로 생각하는 제품을 고르고 문화생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 예로 300만 원이 넘는 시계를 차고 50만 원이나 되는 카드지갑을 쓰고 30만 원이 넘는 뿔테 안경을 낀다. 가고 싶었던 공연 좌석도 1층의 로얄석으로 끊는다. 그 대신 나를 위한 사사로운 꽃선물, 작고 앙증맞은 도자기 그릇, 가볍게 기분전환할 수 있는 테이블매트는 아직까지 마음속에 두고 있다.
마흔을 앞두고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어떤 취향의 향에 반응하고 추구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중이지만 중요한 점은 더 이상 가격에 내 만족을 끼워 넣지 않는다. 탐탁지 않은 제품을 쓰면서 억지로 좋아하는 척, 귀한 척 사용했던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 감정을 속이는 날이 많았다. 나는 웨딩피치 만화에서도 릴리를 좋아했는데 다른 친구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했단 이유로 억지로 데이지에게 내 애정을 주입했다. 그러면 진짜 좋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좋아졌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내 마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아무리 진짜인 척을 해도 마음 한 구석에서 의심과 불만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내 마음을 속일 바엔 아예 사지 않거나 무리를 해서라도 내 재정적인 상황 안에서 어떻게든 마련해 본다. 이것이 어른의 세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물론 확고한 취향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실패하기도 한다. 나는 버건디 고르덴바지는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어울리고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을 수 있으며, 분명 내 얼굴에 잘 어울릴 거라 산 선글라스가 나를 좀도둑으로 만들 가능성도 크지만 실패를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일에 따라오는 결과라면 잠깐 자책하고 후회 없이 받아들인다.
취향도 배워가며 견고하게 다듬어야 하는 삶의 한 영역이므로 쉽게 완성될 수 없는 걸 안다.
두 번째가 아닌 첫 번째를 선택해서 좋은 점은 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어서다. 그동안 돈은 늘 부족해서 문제였고 돈 때문에 포기하는 선택 앞에 항상 감정이 상했었다. 당연히 그런 삶에서 자제와 인내를 기르고 장기적인 재정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지만 동시에 돈의 이중성에도 휘둘려 봤으니 이제는 돈이 갖는 명징성을 제대로 알고 싶다.
돈은 최고일까?
아픈 부모님이 계시다면 병원비 마련에 돈은 최고다.
그럼 돈이 인생에 있어 모든 순위에서 첫 번째일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짝에 쓸모없으니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돈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는 사실이고 그 이유는 자유를 준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자유라고 하면 막연히 하늘을 훨훨 나는 새를 생각했다. 무한하고 경계 없는 느낌을 주는 단어에 잘 어울리는 이미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졌다보다. 다들 자유를 원하고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하는데 정작 그 자유를 제대로 알고 체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이가 들면서 돈을 벌어먹고 싶은 걸 사 먹고, 하고 싶은 일에 쓰면서 어렵게 느껴지던 자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자유는 내가 원하는 걸 손에 넣는 물리적 행위를 넘어서 정신적인 감정과 닿아 있는 마음이었다.
책 <돈의 심리학>에서는 “월급보다도, 집의 크기보다도, 위신 있는 직업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원하는 것을, 원할 때, 원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마드는 가장 뚜렷한 생활양식상의 변수였다.”라고 한다.
이 문장을 따라 적으니 모호하게 느껴지던 ‘돈이 주는 자유로움’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돈은 우리 삶의 피부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가치이고 자유였다.
가족들과 함께 고기를 사 먹고, 후식으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배부르면 소화시키러 노래방도 갈 수 있는 돈.
초호화 크루즈 여행을 가거나 명품가방을 사는 돈도 있지만 매일 살아가는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돈이 우리에게 확실한 자유를 선사하는 거였다.
춥고 비 오는 날, 방구석에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누워 읽는 책이 얼마나 재밌는지 알고, 뜨끈한 국물에 수제비를 뜨고 호박과 감자 그리고 청양고추 쫑쫑 썰어 넣어 호호 불며 먹는 음식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
이 일상의 행위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건 돈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가치, 자유 덕분이었다.
자유는 멀리 모호하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느끼고 발견하는 자기 세상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는 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돈을 제대로 쓸 줄 몰랐다. 소비의 기준은 값이 먼저, 그다음 실용성, 마지막에 내 마음에 드는지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그곳에 내 가치관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애써 그 감정을 무시하고 찜찜하게 쓰거나 결국 얼마 못 가서 버리고 다시 사고 싶은 걸 사는 실수를 반복해 왔다.
모아둔 돈도 별로 없고, 소비에 관한 자기 철학도 없어서 헤맨 날들이지만 덕분에 점차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인간으로 또 재미있게 소비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고, 그 돈을 쓰며 겨우 그딴 걸 사느냐고 묻는 사람들 말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젠 내 마음에 드는 첫 번째를 선택하고 싶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철학이 담긴 맨투맨을 사고, 아무도 모르는 작은 서점 이름이 쓰여 있는 작은 연필도 좋다. 보면 볼수록, 쓰면 쓸수록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들을 가까이 두면 일상의 자유로움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데 나는 그동안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수첩이나 볼펜을 집에 모셔두고 보는 것으로 만족해 왔다. 이게 얼마나 엉망진창인 일인지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집보다 직장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고 많은데 왜 회사에서 쓴다는 이유로 대충 어디서 얻어 온 다이어리를 썼을까? 매일 쓰고 보는 물건을 더 기분 좋은 것으로 곁에 뒀어야 했는데.
그래서 작년부터 나의 회사 다이어리는 신중하게 골라 내돈내산, 마음에 드는 걸로 쓰고 있다. 펜도 필기감 좋은 것으로, 각종 인덱스와 형광펜으로 업무일지를 쓰고 있음은 물론이고 서재 책상 서랍에 고이 넣어둔 좋아하는 엽서를 내 자리 책상 벽에 붙여 놓았다.
자유란 이런 모든 행동과 느낌이 좋고 감사해서 힘을 내서 일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담아 소비하며 나를 보호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가족을 지키고 주변 사람들에게 성심성의껏 베풀기도 한다.
일은 소비하기 위해 한다. 금방 시들지만 한 시간이라도 기분 좋기 위해 꽃을 사고 금방 닳아 해질걸 알면서 질 좋은 가죽 가방을 큰돈 주고 산다.
왜? 내가 좋으니까.
내가 좋으면 자연스레 내 삶이 풍요로워지니까.
결국 모든 소비는 나란 사람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며,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현 방법이고,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대한 은유법일지도 모르겠다. 은유로 가득 찬 나의 삶은 점점 나라는 인간을 직유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그리고 그곳엔 나의 즐거운 인생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