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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Aug 21. 2023

잃어버린 우아함을 회복할 것


오늘도 하릴없이 인스타그램을 한다. 그러다 한 사진에 꽂혔는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조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와 그의 연인 배우 루니마라의 사진이었고 이는 사진작가 그렉 윌리엄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이상한 건 어느 시상식의 뒤풀이와는 다른 묘한 신선함이 있었다는 거다.


루니마라의 블랙 롱드레스 안에 숨겨진 스니커즈, 멋진 턱시도를 차려입고 생애 첫 남우주연상을 탄 호아킨 피닉스가 먹는 비건버거와 바닥에 곱게 놓인 영광의 트로피까지. 빠른 손가락을 움직이며 알맹이 없는 아닌 기사만 보다 이 사진 한 장엔 오래도록 눈과 손이 머물렀다.


뭘까 내 마음을 건드렸던 포인트는?


처음에는 참 소박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축제가 끝나고 축배를 드는 자리치고는 꽤 건전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파티의 비싼 음식도 없고 누구나 알법한 할리우드 스타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닌 어느 길거리 계단에 철퍼덕 앉아 진심으로 즐겁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이는 그들.


어떤 파티 뒤풀이보다 근사하고 멋져 보여서 하마터면 할리우드 커플의 소박한 데이트로 기억에 남을 뻔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좀 더 근접하게 내 마음에 남은 포인트가 있었는데 무슨 디테일이었을까? 그들의 의도야 어떻든 전문 사진작가가 찍었다면 연출이 있었을 테고 대중들이 열광할만한 요소들을 사진에 담아야 했을 것이므로 무언가가 더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을지 몰랐다.


아마도 그 지점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수상 후 뒷골목 계단에서 먹는 음식이 비건 햄버거였고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자면 햄버거와 격식 있는 옷차림에서 비롯된 묘한 이질감이었다.


요즘 애들 말로 “이거 너무 힙한데?”


그러니까 내가 반한 지점은 소박함이 아니라 그 반대, 화려함과 우아함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아’는 클래식하고 고전적인데  반해 요즘은 되려 이런 스테레오타입이 힙하고 신기한 세상이 되었다.


우아미는 어디에서나 표현된다.

얼굴, 목소리, 태도, 패션, 손짓, 성격 등등 하다못해 횡단보도 앞에서 신중히 신호등을 기다리는 일도 우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그동안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온 우아미가 모든 사람들에게서 없어진 듯하다. 나보다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사람을 해치고 혹은 아무 이유 없이 지나가는 여자를 때린다. 영화에서 오락거리로만 보던 장면을 일상에서 급작스럽게 마주하는 이 세상이 과연 잘 돌아가고 있는 걸까.




인간이라면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리고 생각해서 내게만 부당하게 느껴지는 세상을 건전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빨라지고 참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세상에 맞춰가고 있다. 재미없는 광고는 쉽게 건너고 복잡한 건 간단하게, 반드시 필요한 일은 쉽게 거둬버린다. 마치 하루살이 인생처럼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일만이 이 시대의 목표가 된 것만 같다.


세상은 더 좋게 변하고 있다지만 인간은 더 후퇴해 동물이 되어간다. 오직 본능과 직감, 즉흥적인 기분으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예전에는 이런 사고가 창조와 창의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였지만 시대는 다시 바뀌고 있고 우리는 지금까지 잃어버린 차분한 우아함을 다시 머리와 몸에 새겨야 한다.


천천히 걷고 생각하여 내가 원하는 바를 밀고 나가는 힘을 기르고 진정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건전한 욕망을 품어야 한다. 그 욕망을 좇는 과정에서 투명하고 깔끔한 솔직함을 보여야 하는 것이지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삶 또한 용납할 수 없다는 얄팍한 생각은 응원할 수 없다.


시대가 강요하는 빠르고 폭력적인 시간 속에서 인간은 삶을 점검하고 규율과 통제 속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루함을 견딜 줄 알면 몸과 마음이 넓어질 뿐 아니라 바다처럼 깊어진다. 심심하고 조용한 시간에 비약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창조는 이런 때 나오는 거다. 이름 모를 사람의 명품가방을 부러워하거나 내게 없는 이쁘고 화려한 집에 하트를 누른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내 인생을 튼튼하게 건설하는 인사이트는 얻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못 된다. 오직 내가 가진 능력, 센스, 할 수 있는 자신감, 못해내도 다시 시도해 보는 착한 뻔뻔함으로 어려운 상황을 주시하고 타파해 나갈 힘을 만든다. 그러함으로써 우리에게 없어진 우아함을 회복할 수 있다.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고 그 대상이 불특정다수여서 어디서든 자기의 못난 힘을 과시하고 행사하고 싶거든 공원 철봉에 1시간 동안 매달려 보길. 하늘이 무너져 내 작은 몸도 주저앉고 싶을 때 나는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 운동을 하러 간다. 무엇이든 때려 부수고 싶은 힘을 가능하면 올바른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견디기 힘든지 안다. 하지만 그 연습을 하는 거다. 참는 것도, 인내하는 것도, 이 악물고 견디는 것도 다 연습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 해보고 싶은 일 앞에서 충분한 고민을 한 뒤 제대로 출발해 보는 것. 결국 인간에겐 지루하고 평범한 시간을 잘 보내는 임무가 주어지고 이것을 잘 운용해 본다. 대체로 성실하게, 그러나 때론 게으르게 나의 시간과 하루를 잘 꾸려가는 것. 우아한 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게 아니라 좋은 말을 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웃긴 농담도 하면서 신호등의 빨간불이 초록불이 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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