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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ieBrown Jul 19. 2015

[일기] 폭력적인 잡종문화

쇼미더머니4 ep.4를 보고(2015.7.18)

#1. 참혹했던, 쇼미더머니4, ep4에서의 사이퍼 미션.


  어제 Mnet의 쇼미더머니4라는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에게 사이퍼미션을 주었다. 사이퍼 미션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참가자들 전체게에는, 총 10(+5)분동안 프리스타일 랩을 할 기회가 주어지고, 대신 마이크는 전체 인원에게 단 하나가 주어진다. 그들은 그 시간 내에, 알아서 마이크를 잡아서 프리스타일을 해야 한다. 총 28명의 참가자 중 4명은 떨어지게 되며, 그 시간 내에 프리스타일을 하지 않으면 자동 탈락하게 된다.


  이 미션이 발표되었을 때, 모두가 충분한 프리스타일을 할 기회는 갖기 어려워 보였다. 한 사람이 1 verse라고 불리는 16마디 프리스타일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 1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아주 짧게 8마디를 한다손 치더라도, 마이크를 넘겨받는 시간, 랩을 하기 전에 준비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최소 30초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몇 명만 자신의 랩 파트를 길게 하게 되면, 나중에 남는 사람에게는 결코,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일 기회조차 가지 못한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그렇게 판단했고, 또 실제로 그러했다. 참가자들은 불안했을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능력을 보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떨어지게 될까 봐. 그래서 그들은, 하나의 마이크를 앞두고, 전쟁을 벌였다. 한 참가자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그 순간의 그곳은 동물의 왕국이었다.



  미션이 진행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배려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 앞에,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마이크뿐이었다. 그 하나의 마이크를 독차지하고자, 마이크를 쥔 자의 퍼포먼스를 방해했고, 마이크를 쥐려고 하는 자들을 밀쳤다. 그럴만한 물리적 힘이 없는 이들은 마이크를 쥘 수 없었다. 한 여성 참가자는 한참 뒤에 가서야 랩을 할 수 있었고, 17살짜리 한 소년은, 거의 마지막까지 마이크를 쥐지 못했다.


  단, 한 명만이 이 아수라의 공간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프리스타일 랩 국내 최강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이었다. 그는 그 미션에서 가장 큰 비교 우위가 있었다. 그의 건장한 체격으로 보건대, 그는, 마이크를 탈취할만한 힘이 다른 이들에 비해 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군중에 섞이지 않았다. 이 미션이 펼쳐지는 내내, 제일 뒤에서 무대를 맴돌고 있었다. 이 무대가 끝나갈 무렵, 그에게도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시간은 1분이 채 안 남았고, 사람은 두 사람만이 남았다. 자기 자신과, 17살짜리 고등학생 한 명. 그 순간, 그는 마이크를 잡아서 그 17살짜리 남학생에게 마이크를 넘겨줬다. 그는 결국, 8마디 랩을 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이 경쟁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 2.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다른 약자들을 배려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부조리한 룰에 그대로 따랐다고 해서, 여기 있던 대부분의 참가자들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누가 거기서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겠는가? 다들 정말 오랜 기간 무명 래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지 모르는 성공의 기회가 찾아왔다. 여기서 가만히 있다가는, 자기 능력을 보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다시금 그 무명의 시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뿐이고, 그 시간은 비트와 함께 계속 흘러가고 있고, 옆에서는 각자가 살아보겠다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기 저 앞에 누군가 쥐고 있는 마이크를 뺐어야 하고, 그 쪽으로 가기 위해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밟아야 한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 모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마이크 쪽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난 이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그러한 불공정한 시스템을 만든 Mnet 제작진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마이크를 잡느냐 안 잡느냐는, 그 무명 래퍼들에게는, 각자의 사회적 자아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그러나 Mnet 제작진들에게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것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그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므로, 프로그램을 자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 따위 프로그램을 만든 그들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쇼미더머니는 이미 충분히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그들은 얼마든지 다른 양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굳이, 무명의 참가자들의 절박함을 이용하고, 그들을 발가벗겨 버림으로써 프로그램의 인기를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쉬운 길이었겠으나, 해서는 안 되는 길이었다. 제작진들이 그것만이 길이었다고 믿었다면, 자신의 권력과 걸맞지 않는 자신의 무능력에 그들은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것만이 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간 것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나태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프로듀서들은 또한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갖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룰에 대해서 충분히 저항할만한 위치에 있었다. 설사 그에 저항하다가 이 프로그램을 하차하게 되었다 손 치더라도, 그들이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 룰을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그러한 불공정성에 눈을 감았고, 오히려 동조했다. '힙합의 세계는 남자들의 세계고, 정글이고,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홀로 살아남기 위한 강한 투쟁심도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뭐 이런 식으로 스스로들을 자위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들은, 힙합이라고 하는 자신들의 문화를, '동물의 왕국'이라는 세계의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처절한 자기 생존 앞에서, 배려/존중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문화의 세계.  '폭력적인 잡종 문화의 세계'

  
  (참고로 더하자면,  예전에  피타입이라고 하는, 한국 힙합의 거장 중 하나가, 오늘날 힙합 문화에 대해 '폭력적인 잡종 문화'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유명한 래퍼 중 하나인 산이는, Bye-P-Type이란 노래를 통해, 그러한 발언을 한 피타입을 디스 했다. 나는 이 때, 산이가 오늘날 힙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산이는 그러면 어떠냐고 말하는 거였나 보다. 피타입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가사 실수로 2차 예선에서 떨어지게 되었고, 산이는 현재 위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고 있는 메인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EBS SPACE 공감] 미방송 영상 피타입 - 폭력적인 잡종문화

# 3. 제작진의 비열함.


   제작진이 비난받아야 할 부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 사이퍼 미션을 방송한 4화 프로그램의 전체 구성을 놓고 보면, 현재 제작진이 얼마나 비열하게 행동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먼저 그들의 전체 방송 구성 방식을  살펴보자.

1) 사이퍼 미션 방송 시작 전, 간단한 사과 "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
2) 사이퍼 미션
3) 미션 후, 서출구의 인터뷰 "후회 없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이다."
4) 다른 래퍼들의 인터뷰 "룰은 따라야 한다."
   a. 한국 프로듀서들(션, 지코)의 메시지
   b. 스눕독의 메시지
   c. 마지막으로, 자메즈라는 저항했던 래퍼의 자기 반성.      

  첫째,  제작진들은, 사람들이 불쾌함을 느낀 그 지점에 대해 전혀 사과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불공정한 룰을 만들었고, 그 룰을 통해, 무명 래퍼들을 비인간적인 상황으로 몰아갔다는 것에 대해서 일체 사과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서'만' 사과했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한 2초 정도?

  둘째,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입도 아닌, 다른 래퍼들의 입을 빌려,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을 정당화하고 있다. 여러 입들이 말했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이 시스템에는 룰이 있다. 이 시스템에 들어왔으면, 그 룰을 따라야 한다.' 이 메시지의 전제 위에서는, 서출구의 퇴출은 당연한 것이 된다. 왜? 그는 이 시스템에 들어왔는데, 그 룰을 따르지 않았으니까. 그 룰이 공정하든 공정하지 않든, 그건 차후의 문제다.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서출구가 이 프로그램에 하차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 제작진의 잘못은 없다. 이렇게 그들은, 그 룰의 공정성을 문제삼는 서출구의 지적을 교묘하게 회피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그 룰을 만든 당사자라는 사실 또한 은근슬쩍 감춰 버린다.


  셋째, 더더군다나 나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그러면서 이러한 사태의 책임을 17살 고등학생짜리에게 일정 부분 은근 슬쩍, 덮어 씌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수십 시간짜리 인터뷰들 중에, '그 아이가 처음 몇 마디를 잡아먹지 않았으면 서출구에게도 충분히 랩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던 인터뷰'를 실은 것은, 다분히 제작진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 인터뷰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아 그 친구가 좀 더 빨리 랩을 끝냈다면, 서출구에서도 충분히 기회가 돌아갔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일정 부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서출구를 제외한, 그 어떤 성인 래퍼들로 자기 생존만을 생각했었고, 그러한 모습이 15분 동안 그 아이 눈 앞에서 펼쳐진 상황이다. 체격도 왜소했던 그 아이는, 건장한 성인 래퍼들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마이크 전쟁에 끼지조차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그 누가, 그 어린 친구에게, 그 어떤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서출구의 탈락이 발표되었을 때, 그 고등학생 친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제작진에게 최소한의 죄책감이라는 게 남아있다면, 위 인터뷰는 방송에 내보내서는 안 됐다. 그 아이는 아마도,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자신을 배려해준 사람을 떨어뜨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제작진은, 그 아이가 느끼고 있을 죄책감을, 전국 방방 곡곡에 까발려서 송출했다.


# 4. '룰'이니까 따라야 한다고?


   프로듀서들이 그렇게 주구장창 외쳐댔던, '룰은 룰이니까 따라야 한다.'라는 주장의 부당성에 대해서 살펴보자. 오늘날 힙합의 Godfather라고 불리던, 스눕독은, 이러한 미션이 바람직한 거 같냐는 한 래퍼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니오. (그리만 문제 될 건 없어요.) 예를 들어 좋아하는 스포츠를 생각해보세요. 그게 어떤 종목이든 거칠고 온 힘을 다해야 할 거예요. 게임이 끝날 무렵에는 악수도 하고 웃기도 하죠.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악수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아요. 서로 경쟁하고 있으니까요. 이게 바로 진정한 게임이고 경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이 사이퍼 미션의 말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에는 몇 개는 그냥 인정하고 몇 개는 따라야 하는 룰이 있어요. ... 그(서출구)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했어요. ... 여기 서 있는 24명의 래퍼들은 어려웠지만 그 마이크를 잡으려고 싸웠잖아요. 그들은 룰에 따랐기 때문에 여기 남아 있는 거예요."

그의 주장 속에 담겨 있는 수사를 걷어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모든 게임에는 룰이 있고, 그 룰 안에서, 다들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한 경쟁은 문제 되지 않는다. 이 사이퍼 미션도 마찬가지다.

2) 어떤 룰은 때론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그 룰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기 잘못이다. 그 잘못에 대가 또한 물론, 그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의 첫 번째 주장은, 그 자체로 타당하나 이 상황에서 적용될 수 없고, 그의 두 번째 주장은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할 소리가 아니다. 각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첫 번째, 그의 주장은, 그의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중차대한 전제를 놓치고 있다. 그것은, 서출구가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걸고 지키고자 했던, 공정성이라고 하는 가치다. 룰은, 그 룰이 공정성을 잃지 않을 때만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룰이 공정하다는 뜻은, 게임의 참여자들이, 최초에 그 게임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때 정해졌던 룰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퍼 미션은, 이 공정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쇼미더머니4가 시작될 때 명시적으로 표방된 룰은 없다. 다만 '참가자들은 랩 실력에 따라 평가를 받되, 그 평가의 기준/주체는 다양할 수 있다.' 정도가 암묵적으로 합의된 룰이었을 것이다. 이 룰 안에서, 쇼미더머니4의 제작진이 어떤 룰을 만들었다면, 참가자들은 그 룰을 욕할 수는 있겠지만, 그 룰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맥락 안에서는, 스눕독의 주장이 타당하다. 그러나, 제작진들은 이 룰을 어겼다. 사이퍼 미션은, 참가자들의 간절함을 평가하겠다는  명목하에, 그들의 랩 실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근력을 평가했다. 이러한 경쟁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위 사이퍼 미션의 맥락을 고려해봤을 때, 스눕독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 가능하다.

"불합리한 어떤 룰이라도, 자기 생존을 위해서 때론 전적으로 그 룰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룰을 받아들이지 않은 건, 잘못된 것이다. 그 잘못된 선택을 자신이 했으면, 그 대가 또한 온전히 그 자신이 져야 한다."

그의 말처럼, 생존을 위해서, 때론 불합리한 것이라도 삶에서 수용해야 될 때가 있다. 그러나 누군가 그것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이, 그 사람을 비난할, 혹은 그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게 할 근거는 결코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행동은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아야 할 근거이다. 그 행동은, 그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일이다. 그와 같은  행동들이 모일 때, 그 공동체는 더 공정하고 정의롭게 발전된다. 따라서, 룰의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자기보다 약자를 위해 자기 생을 던진 서출구의 행동은, 오히려 프로듀서들이 존경을 표했어야 마땅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프로듀서들은 그를, '필요 이상으로 친절했다.' '지나치게 착했다.'라고 깎아 내렸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것은, 불공정한 룰을 만들고 그 룰을 강요하는 인간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러한 불합리한 룰에 대한 책임은, 프로듀서들에게도 크게 있었다. 그들은, 그 룰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고, 그것을 약자인 참가자들에게 강요했다. 그들은 평가와 조언의 주체가 아니라, 반성의 주체가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자기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면서, 룰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부당한 룰로 발생한 문제의 책임을, 온전히 서출구 개인에게 덮어 씌웠다. 스눕독은 괜히 스눕독이 아닐 것이다. 그의 말처럼, 24명의 참가자들은, 그 부당한 룰에 온전히 수긍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고, 쇼미더머니에서 살아남았다. 그 오랜 기간, 미국의 힙합 계에서, Godfather로 불리는 위치를 점하며 살아남기까지, 스눕독이 해 왔을 노력들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나 알고 떠들었을까?  개인적으로,  이처럼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은, Mnet 경영진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통통 튀는 래퍼들에게, 자신들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했을 것이다. 내가 만든 룰 앞에서는, 언제나 개처럼 복종해라. 복종하지 않으면 이 세계에서 퇴출이다. 그렇게 서출국은, 자신의 신념을 지킨 죄로 퇴출되었다. 미국 힙합의 Godfather와 한국 힙합을 이끌고 있는 9명의 프로듀서들은, 그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주류 힙합을 이끌고 있는 래퍼들의 클래스라니, 한국의 힙합을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 5. 이것은 힙합 문화만의 문제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시스템,

 - 처음부터 불공정한 룰을 가지고,

 - 그 룰에 저항하는 이들은 바로 아웃시키며
 - 그 룰을 잘 따르는 소수만이 살아남도록 그 구성원들을 경쟁시키고
 - 그 불합리한 룰을 사람들이 잘 따르도록 유도하는 심판관들을 가진 시스템


  이와 같은 부조리한 시스템이, 단지 한국의 일부 힙합 문화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스템은 아마도, 현대 한국 사회 구조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이, 처음으로 편입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부터, 이와 같은 부조리한 시스템은 나타난다.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 있지 않고, 학생들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룰들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무조건적인 단순 암기를 강요하는 내신 평가 시스템은, 성실성이라는  미명하에 학생들을 평가하는 좋은 척도로써 활용되고 있다. 학생은 그 룰의 부조리를 지적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룰에 저항하는 것은, 상대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학벌주의 사회에서 좋은 학벌을 받기 어렵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룰에 잘 따르는 실력을 가진 소수만이, 좋은 학벌이라는 열매를 쟁취할 수 있다. 그 룰에 저항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선생님들은 말씀하신다. 그렇게 정해진 거 어쩌겠냐고. 일단 따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불만이면, 너가 올라가서 바꾸라고. 그런데 올라간 사람들은 아무도 바꾸지 않았고, 그렇게 이 시스템은 60년간을 굴러왔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그 선생님들의 말씀에 따라, 나의 신념을 지키면서, 반드시 이 아수라의 세계를 뚫고 살아남겠다고 다짐했었다. 나는 그 다짐대로, 이 정글에서 세계에서 살아남았고, 올라올 수 있는 데까지 올라왔다. 올라오고 나니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던 사람이며, 또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게 될 사람인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 왜 이처럼 불합리한 시스템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어 올 수 있었는지 알 것도 같다. 살아남아 받게 되는 혜택의 열매는 달콤하고, 이 열매의 맛을 누리고 살기는 쉽다. 그러나, 이 거대한 시스템에서 살아남아 쥐게 된 작은 권력으로, 그 열매를 버리고, 이 사회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시스템이 아무리 불합리하다 한들, 내가 여기까지 가만히 앉아서 올라온 건 아니니까. 자칫 잘못하면, 얼마 없는 이 권력까지 통째로 내려놔야 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나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신념과 자기 행복, 이 두 가지는 이 부조리한 한국 사회에서 공존 가능한 것인가? 나는 이러한 소망을 평생 동안의 내 삶으로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의 관건은, 아마도 앞으로 몇 년간, 내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능력을 얼마큼 쌓아 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지 않나 싶다. 나야 내 신념을 버릴 마음이 없지만, 그 신념은, 그것이 내 능력의 토양 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을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지금의 내가 할 일은, 신념은 간직한 채, 꾸준하게 내 실력을 쌓는 일이다.


  서출구는, 자기 능력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있었기에, 끝까지 자기 신념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그가, 그의 신념을 지키고 꾸준히 자기 능력을 쌓아, 지금부터 20년이 지난 뒤에는, 한국 힙합의 godfather의 자리에 그가 앉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때의 나 또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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