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블리 Mar 08. 2021

유언(遺言)을 미리 쓰는 이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

2008년 5월에 장기기증 신청을 했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장기는 모두 기증해 주십시오.     


정수현( 회원 번호 : 2008-023***)

장기기증 서약일 2008-05-27

사후 각막 기증, 뇌사 시 장기기증

1588-1589


무덤이나 비석을 만들지 말고 납골당 같은 곳에 비용을 쓰거나 자리 차지하는 일은 하지 마세요. 시신은 화장해서 가까운 곳에 뿌려주십시오.


철없이 살다 당신을 만나 꿈이란 걸 꾸게 되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게 사는 삶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바르게,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했고, 아빠로, 남편으로, 자식으로 소임을 다하려 노력했습니다.


힘들고 슬프겠지만, 장례식에선 평소 즐겨 듣던 노래가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힘이 나는 노래가 흘렀으면 좋겠어요.





위 글은 6년 전에 쓴 유언입니다.


우리 사회는 죽음을 말하지 않는(못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유언을 쓴다고 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11번가 희망쇼핑 광고 영상 중


'부정 탄다.', '말이 씨가 된다.' '좋은 생각만 하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면 대체로 당황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어떤 마음인지 이해합니다. 두렵기 때문일 겁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나이가 들수록 부음(訃音)을 접하는 날이 많아집니다. 유년 시절을 함께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별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죽음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오는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인간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책, '누구나 죽음은 처음입니다.' 강원남 지음


'누구나 죽음은 처음입니다.' 책의 저자 강원남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은 곧 삶의 모습이었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죽음은 늘 두렵고 불편한 주제지만, 죽음이 없는 삶은 없다. 죽음도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로 받아들인다면 더없이 소중한 삶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사람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기에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음은 곧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세상에 없으면 어떻게 될까?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내 옆에 없으면 어떻게 하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고 감정이 북받칩니다.


저는 2008년에 장기기증을 신청하고 2015년부터 매년 유언장을 쓰고 있습니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못했을 때, 슬퍼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며 쓰기 시작했습니다. 유언장에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집, 자동차, 금융계좌 정보도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뒷일을 감내해야 할 아내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함입니다.



죽음이란 단어를 처음 마주하게 된 건 여섯 살 할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막내인 저를 특히 예뻐하셨기에 슬픔이 더욱 컸습니다. 이후로도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봐왔지만 죽음이란 단어가 특별하게 다가온 계기는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 책을 읽고 난 후였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정의 내리니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정의 내릴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첫 번째가 유언장을 쓰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유언장은 매년 고치고 다듬고 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그 시기에 맞춰 수정하는 거죠. 우리 인생은 유한하며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언장을 쓰다 보면 인생을 더 잘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특히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 가족 생각이 많이 납니다. 좋은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와 동료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그럴 때면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지 다짐하게 됩니다.


짧은 유언장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고 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삶의 철학이자 방법입니다. 분명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진지하게 삶을 돌아보며 작성해보면 어떨까요?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보고 싶다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