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어떤 존재로 볼 것인가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탓에 크고 작은 사고가 잦았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경운기에 치이고,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딸기 서리, 수박 서리, 자두 서리,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녔다. 요즘 시대였다면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며 치료를 받아야 했을지도.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도벽이었다. 부모님 몰래 돈을 훔쳐 읍내 오락실에서 탕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외갓집에 놀러 갔다가 삼촌이 TV에 올려둔 버스비를 훔쳤다가 죽도록 맞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도벽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옆 집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그런 아버지가 싫었던 형들은 일찍이 집을 나가버렸다. 형들이 없으니 술 취한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건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가로등 없는 컴컴한 시골길을 홀로 걸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아이가 감내하기 힘들고 무서웠던 기억, 그럼에도 갈 수밖에 없었던 건 애처롭기 그지없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소위 질 나쁜 친구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고 오토바이를 탔다. 언젠가부터 나는 학교에서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스스로 노력했지만, 작은 일에도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마저 포기했다고 느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될 대로 돼라’, 그때부터 반항심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문제아로 불리니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어 오히려 편했다. 점점 지각하는 횟수가 잦고 결석하는 날이 늘었다. 결석을 해도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진짜 문제아가 되어 버렸다. 내 편이 없다는 절망감. 누구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니 정 붙이기 어려웠다. 유일한 내 편이 되어 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내가 끝까지 엇나가지 않도록 믿어 준 사람, 어머니 덕분이다.
수능 3개월을 앞두고 뒤늦게 공부해 보겠다고 기숙사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기초가 없던 내게 좋은 결과가 나올 리 만무했다.
어렵게 대학을 진학했고, 철없던 스무 살에 운명처럼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사회복지를 시작한 것도 아내 덕분이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난생처음으로 배우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또, 인생에 좋은 스승을 만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조금씩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늘어났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두 딸의 아빠가 되었다. 여느 가정처럼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산다. 사회복지사로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이따금 강의도 한다. 우리 아들이 커서 뭐가 될꼬 걱정했던 어머니도 이제는 동네에서 자식 자랑하는 낙으로 산다.
아동문학가 박기범이 쓴 책, ‘문제아’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 아이가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일을 소개하며 이후로 뭘 해도 선생님과 친구들이 문제아로 보는 내용이다.
나는 문제아다. 선생님이 문제아라니까 나는 문제아다. 처음에는 그 말이 듣기 싫어서 눈에 불이 났다. 지금은 상관없다. 문제아라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어떨 때는 그 말을 들으니까 더 편하다. 문제아라고 아예 봐주는 것도 많다. 웬만한 일로는 혼나지도 않는다. 그냥 포기한 셈 치니까. 애들도 내 앞에서 슬슬 기기만 한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내가 점점 더 문제아가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사람들이 왜 나를 이렇게만 대하는지를 모르겠다. 나는 더는 예전의 내가 될 수 없었다. 선생님이나 다른 애들이 나한테 붙여 준 문제아라는 딱지는 영영 떼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났다. 결국 나는 문제아라는 딱지를 떼어 낼 수 없겠다고 생각한 이상, 점점 그 딱지를 이용하는 쪽으로 변했다.
나는 문제아니까.
나는 나를 문제아로 보는 사람한테는 영원히 문제아로만 있게 될 거다. 아무도 그걸 모른다. 내가 왜 문제아가 되었는지, 나를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 주면 나도 아주 평범한 보통 애라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딱 한 명 있다. 봉수 형이다.
책을 읽으며 아이를 대할 때, 사람을 대할 때, 특히 사회사업가가 당사자를 어떤 존재로 보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바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지금은 철없이 보일지라도 훗날 당신 덕분에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었노라고 말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