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일지, 못다 한 이야기
난생처음 면접을 본 기억은 스무 살, 대학 입학 날이다. 내 점수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꼭 가고 싶은 대학이 있었다. 내가 원했던 학과는 영어영문과였다.
“온블리 씨, 우리 학과에 왜 지원하셨습니까?”
“여기 들어오기에는 성적이 너무 낮은데?”
대놓고 까였다. 당연히 결과는 불합격. 인생의 쓴 경험을 그때 처음 했다.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힌 면접, 20년 넘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로도 여러 번 면접을 봤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신입으로 채용된 면접, 심지어 양가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간 것도 일종의 면접이었다. 그사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다시 시험과 면접을 반복하게 되고 마지막까지 통과해야만 비로소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인생은 그야말로 면접의 연속이다.
앞서, '퇴사하고 나니 입사 제안이 들어왔다.'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원글을 먼저 읽어본 뒤에 이 글을 읽으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퇴사를 선언한 뒤 8곳에서 입사 제안이 있었지만,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직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취직했다가는 몇 달 만에 후회하고 다시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 특히, 나처럼 사십 대 이상 가장이라면 정말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 이번 이직에 더 많은 고민을 하며 준비했다. 여유가 있을 때, 이직에 관한 주제로도 포스팅해볼 생각이다.
나는 어떤 일을 선택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한다. 그건 바로 ‘재미’와‘의미’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회사에서 무슨 재미와 의미를 찾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인생은 즐거워야 한다. 특히, 내가 하는 일이 즐겁고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오래 할 수 있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의 풍요만을 위함이 아니다. 자기 내면의 자아실현 욕구를 끊임없이 이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직할 때마다 이 질문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인가?’
나는 위 두 가지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행에 옮겼다.
한 달 전, 퇴사를 결정할 때만 해도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음을 위한 계획은 사실 1도 없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책이 없었다. 적어도 석 달은 쉴 요량으로 과감히 사직서를 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한 달 사이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곳이 나타났다. 이번에 면접을 본 곳은 그동안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물론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바로 지난주였다. 나이 마흔 넘어 10년 만에 면접을 다시 봤다. 그간 발표 경험이 많았음에도 ‘면접’이란 단어가 주는 긴장감은 여전히 익숙지 않다. 면접 날이 가까워져 올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예상 질문지를 만들었지만, 좀처럼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이 감정을 기억하고 싶어 면접 준비도 제쳐두고 메모장에 기록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우습다.
면접 날 아침을 굶었더니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허기는 채워야겠다 싶어 단골 해장국 집을 찾았다. 혼자 가도 친절히 대해주는 집이라 즐겨 찾는 집이다. 평소에는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는데 오늘은 먹는 둥 마는 둥 밥을 절반 넘게 남겼다. 차라리 굶을 걸 그랬나 보다.
면접 3시간을 앞두고 이번에는 단골 미용실을 찾았다. 누구보다 내 스타일을 잘 표현해주는 곳이라 10년째 단골이다.
원장님께 면접 보러 간다고 했더니, 한 올 한 올 최선을 다해 머리를 만져주셨다. 역시,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로 탈바꿈했다. 비용을 내려고 했지만, 원장님은 극구 받지 않으셨다. 면접 보러 간다는 말에 꼭 선물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계산대 앞에서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실랑이하다가 결국, 원장님의 마음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대신 합격으로 보답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마음이 불안했을까, 1시간 전에 면접장에 도착했다.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려니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다. 때마침 미용실 원장님이 챙겨 준 사탕이 생각났다. 사탕을 입에 물고 있으니 한결 나아졌다. 센스쟁이 원장님이다. 여러분도 면접을 보러 갈 땐 물과 사탕 정도는 꼭 챙겨가길 바란다.
1시간이 10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심장아, 나대지 마. 제발.’
“면접 번호 00번 응시자, 면접실로 들어오세요.”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