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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블리 Oct 13. 2022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떠오른 생각

몇 년 전, 지인이 어느 책에서 우리 집 이야기가 소개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책 제목은 ‘훈의 시대’였고 김민섭 작가가 쓴 책이었다. 김민섭 작가가 쓴 대표적인 책으로는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 ‘대리 사회’, ‘훈의 시대’가 있고, 최근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신간을 출판했다. 브런치 멘토 작가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우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다양한 생각과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 간에 여러 갈등이 일어나곤 하는데, 주차 갈등, 층간소음, 흡연 문제, 경비원 갑질 따위가 대표적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여서 누구나 ‘좋은 이웃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웃을 잘 만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면 나는 잘못이 없고, 이웃이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지극히 주관적 생각)


좋은 이웃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우리 집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나와 아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우리는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부부 사회복지사다.

우리 아파트에 사회복지사가 살면 무슨 일이 생길까?


이를 논하려면 사회복지사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정의 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럼 어떻게 해야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지?

이처럼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사회복지사(사회사업가)는 더불어 살게 돕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기 때문에 내가 사는 아파트도 더불어 살게 돕고 싶었다.


주민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도 하고, 접시도 오가는 모습이길, 이웃 간에 정이 흐르고 사람을 배려하는 문화가 아파트에 스며들길 바랐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해온 일이 생활 속 복지 실천인 아파트 공동체였다.


똑똑똑 캠페인, 한 평 카페, 경비원 해외여행, +1 김장 나눔, 우리 아파트에 산타가 나타났다, 아파트 주민 인문학 교실, 일상생활 배움 학교, 겨울방학 기차여행, 코로나 시대 이웃 안부 묻기, 아파트 가족 마라톤 대회 참여, 아빠 모임, 엄마 모임, 우리 집 친구 초대.


지난 5년간 아파트에 한 일들이 그런 이유였다.


작가가 훈의 시대에서 언급한 내용은 한 평 카페 이야기였다. 한 평 카페는 택배원, 경비원, 환경미화원을 위해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차와 간식을 둔 작은 테이블이다. 대신 하단에 나눔 박스를 만들고 주민 누구나 집에 있는 차와 간식을 부담 없이 나누게 했다. 느슨한 연대를 생각한 것이다. 감사하게도 많은 주민이 취지에 동참했고, 한 평 카페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김민섭 작가가 훈의 시대에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의 핵심은 내가 표현한 단어에 있었다. 당시 나는 택배 아저씨, 경비 아저씨,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를 위한 한 평 카페라고 표기했다.


‘훈’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듯이 ‘가르침’의 의미다. 가정(가훈), 학교(교훈), 군대(훈련), 회사(사훈), 국가(훈령)에 이르기까지, 주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아니면 위계적으로 강요하는 ‘계몽의 언어’인 동시에 ‘자기 계발의 언어’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훈’은 한 개인이 가정, 학교, 회사 등 생애주기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모든 공간의 언어로 전달된다. 따라서 훈이란 시대가 개인에게 품은 ‘욕망’이다. 일상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강요되는 훈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한 개인의 몸을 만드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본다면 훈은 결국 한 인간의 격格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제라고 할 수 있다.
-훈의 시대-


즉, 나도 모르게 직업을 특정 성의 전유물처럼 나눈 것이다. 예로부터 알게 모르게 강요되는 훈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에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김민섭 작가 덕분에 일상 속 훈을 깨우치게 되었고, 말과 행동, 글을 쓸 때 한 번 더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김민섭 작가가 아내가 일하는 기관에 연사로 왔다고 한다. 전부터 한 번쯤 만나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질 못했다.


아내가 김민섭 작가에게 저자 사인을 받으면서 훈의 시대에 나온 한 평 카페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김민섭 작가가 반가워하며 사인을 해줬다는데, 글귀가 참 따스하게 다가온다.


‘정수현 님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저도 김민섭 작가님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제 브런치를 찾아 주시는 여러분의 삶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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