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복지사의 일기
소방관이 꿈꾸는 사회는 화재가 없는 사회일 것이고, 경찰관이 꿈꾸는 사회는 범죄가 없는 사회일 것이다.
사회복지사인 내가 꿈꾸는 사회는
약자도 살만한 사회, 약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죽기 전에 그런 세상을 만나긴 어려울 것 같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약자의 삶은 사회와 더욱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인당 GDP는 세계 29위로 3만 불이 넘은 지 오래다. 꽤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에 따르면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크게 늘었고, 병사 자살 등으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 고독사 위험 계층 실태조사 연구, 2021)
성별로는 남성(65.8%)이 여성(34.2%) 보다 높고, 나이는 40대 이후로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독사로 삶을 마감한 사람의 직업은 무직이 95.4%, 일용근로 1.8% 순으로 나타났다. 즉, 더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취약계층에서 고독사가 높게 발생한다는 것을 통계로 알 수 있다.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복지정책을 내어놓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마치 경찰의 수사 기법이 진보할수록 범죄자의 수법 또한 지능적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한다.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정말 오랜만에 서울 여행을 다녀왔다. 13년 전, 서울에서 살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물가가 크게 올랐음을 체감했다. 염치가 없었지만, 결국 후배에게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후배와 새벽까지 술을 기울이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그런데 새벽 6시에 눈이 절로 떠졌다. 나이가 들었는지 아침잠이 줄고 예민해진 탓이다. 일어난 김에 산책도 하고 카페에서 글이나 쓸 요량으로 노트북을 챙겨 후배 집을 나섰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아침 일찍 여는 카페를 찾아간 것이다.
강남의 새벽 공기를 마시며 여유롭게 산책하던 중, 길에 쓰러져 있는 한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르신 옆으로 내동댕이쳐진 음식물 쓰레기통이 보였다.
‘아,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 홀로 음식물을 버리러 나왔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셨구나!‘
사회복지사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청하는 어르신의 손짓이 보였다. 얼른 달려가서 어르신을 일으켜 드리며 괜찮은지 여쭈었지만, 어르신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셨다. 꽤 충격이 컸던 것 같았다. 사회복지사의 경험으로 볼 때 어르신은 이미 뇌졸중을 경험한 것으로 보였다.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다 겨우 몸을 가누며 일어나셨다. 다행히 집이 바로 앞에 있었다. 어르신을 부축해서 집 앞까지 모셔드렸다.
어르신은 이제 괜찮다며 내게 그만 가도 된다고 손짓하셨지만, 금방이라도 계단 뒤로 쓰러질 것만 같아서 한참을 지켜보다 자리를 떠났다.
바로 앞에 몇십억을 호가하는 아파트가 있었고, 어르신 역시 꽤나 비싸 보이는 빌라에 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혼자 사는지 물으니 어르신은 그렇다고 했다.
고급 빌라에 산다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행색에 몸에서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오랫동안 씻지 못하거나 썩은 음식물과 함께 사는 사람 특유의 냄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저렇게 몸이 불편한데 혼자 지내다 쓰러지시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돈이 없어도,
돈이 많아도,
돌봐 줄 가족이 없거나 의지할 이웃조차 없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닐 텐데….
강남에 산다고 고독사가 없을까? 화려하게 보이는 강남의 고급 주택과 어르신의 모습이 너무 상반된 것처럼 느껴졌다.
어르신의 삶이 너무 외롭지 않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