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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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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Nov 23. 2022

아무튼 두부

고기보다도 두부가 좋아 라고 한다면 비건이냐 묻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고기가 맛이 없어서 그렇다. 고기가 맛이 없다고 하면 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데 그냥 나는 그래 한다. 먹고 싶은 게 없거나 요리하기 귀찮을 때는 며칠 전 사다 놓은 손순두부에 달걀을 하나 풀어 전자레인지에 달걀이 익을 만큼만 돌린다. 거기에 들기름, 간장 한 스푼을 쪼르륵 부어 먹으면 그만한 요깃거리가 또 없다. 오늘도 뜨끈하게 한 그릇 하는데 두부에 관한 몇 가지 나의 일화가 떠올랐다.


두부와 롤러브레이드

두부 한 모에 500원 하던 시절,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롤러브레이드를 신발처럼 신고 다녔다. 그래서 그 시절 신고 다녔던 신발 모양대신 롤러브레이드 모양이 기억난다. 아무튼, 내가 그 시절 두부 값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당시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무선 알씨카 경주를 하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그래서 내 또래에 애들은 유행처럼 롤러브레이드를 탔다. 나는 원래 운동 신경이 없어서 달리기도 못하고 앞구르기도 못하고 뜀틀도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자전거랑 롤러브레이드는 잘 탔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나갔다. 엄마는 놀 때만 타라고 했지만 나는 몰래몰래 신발을 신는 척하면서 매일 타고 나갔다.


그날도 몰래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두부 심부름을 갔다. 500원을 한 손에 쥐고 2분 거리의 아파트 상가 슈퍼에 가 두부를 샀다.

“두부 한 모 주세요.”

계산대 안쪽에 줄곧 앉아있던 슈퍼 아줌마가 “잇차”하면서 앞 코가 막힌 슬리퍼를 대충 신고 나와, 막걸리와 계란이 있는 유리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옆 두부판에서 두부 한 모를, 얇은 하늘색 비닐봉지에 담아줬다. 하늘색 비닐봉지와 500원을 한 손씩 교환하고 슈퍼를 나섰다.


막 슈퍼 입구를 지나 인도석에서 도로로 내려가려는데, 소리도 안 나올만큼 순식간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워낙 빠르게 일어난 일이라 그저 뜨끈한 도로 바닥에 엎어진 대로 턱을 대고 있었다. 턱 진동을 타고 정수리가 얼얼했다. 나는 그 와중에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두 손은 바닥에 엎어져 있고 두부는 으깨어져 도로 저 멀리까지 흩어져있었다.

주섬주섬 일어나 흩어진 두부를 가능한 대로 다시 하늘색 봉지에 주워 담으며 생각했다.

두부를 제대로 담고 있는 건지 마는 건지, 몸과 생각이 따로 놀아 두부를 다 주워 담고도 두개골 박동과 심장 박동이 뒤섞였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로 인도석 위에 앉았다가 이내 다시 슈퍼에 들어갔다.


“두부 한 모 주세요. 돈이 없는데, 외상으로 하고 이따가 가져다 드려도 될까요?”

그랬더니 계산대 안쪽에 있던 아주머니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어머머 잠깐만.” 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옷걸이에 걸린 수건을 낚아채 나왔다.

“너 피가 철철 나는데 지금 두부가 문제니.”

그러면서 수건을 내 턱에 가져다 꾹 누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두부 깨진 거 걱정돼서 턱 깨진 줄도 몰랐구나.“ 아주머니가 수건을 가져다 대자 그제야 턱이 욱신거렸다. 그 위 코와 눈과 이마, 정수리까지 한 줄로 이어진 듯 얼얼한 게 느껴졌다.

”두부는 그냥 한 모 더 줄게. 돈은 안 갖다 줘도 돼. “ 아주머니는 두부를 새 봉투에 담아 한 바퀴를 빙 돌려 묶어주며 말했다.

”이번에는 깨지지 않게 조심해서 가. 두부 말고 네 턱 말이다. “

아주머니는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된다고 했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엄마 때문에 수건 대신 키친 타월을 턱에 대고 슈퍼를 나왔다.


롤러브레이드 바퀴가 평소보다 무거워 바퀴를 밀어내는 내 양다리도 무거웠다.

키친 타월을 떼고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턱을 이리저리 살폈다. 피는 얼추 멎었는데 핏자국이 군데군데 굳어져 있었다. 빠르게 스치듯 보면 잘 안 보일 것도 같아 거울 속을 빠르게 봤다가 느리게 봤다가 했다. 그래도 괜히 신경이 쓰여 계획을 세웠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 안으로 두부를 들여놓고 ”엄마 두부~“ 하고 부르면 엄마가 두부를 가져가겠지. 그러면 나는 그 사이에 허리를 깊게 숙여 롤러브레이드 벗고 엄마가 두부 요리를 할 때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서 턱을 수습하자.


나는 계획대로 두부를 들여놓고 허리를 숙여 롤러블레이드를 벗었다. 그런데 엄마는 두부를 안 가져가고 그 앞에서 내가 롤러브레이드 벗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엄마, 두부.“ 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계속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엄마 봐봐.“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엄마를 힐끗 쳐다봤다. 엄마는 바로 내 등짝을 때렸다. ”아니, 두부를 만들러 갔나 왜 이렇게 안 오나 했더니, 얘가 얘가! 엄마가 롤러브레이드 타고 가지 말라고 했지?“

나는 괜히 헤헤거리면서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엄마는 느낌이 딱 와. 그게 엄마야.“

나는 누가 봐도 앞으로 넘어진 애처럼 한동안 턱에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다녔다.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다녔다. 두부 심부름을 할 때 빼고. 슈퍼는 사라지고 두부는 다른 곳에서 사 먹지만 하늘색 두부 봉지에 들어찬 뜨끈한 두부 한 모를 볼 때면 괜히 턱을 한 번 만져본다.


채림과 두부찌개

두부는 구워 먹어도 맛있고 조려 먹어도 맛있고 국물로 끓여 먹어도 맛있다. 그중 두부찌개는 비가 오는 날에 생각나는, 일종의 트리거 같은 음식이다.

그 시작은 우습게도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부터다.

채림과 감우성 주연의 ‘사랑해 당신을’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학생 채림이 선생님 감우성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는 내용인데 어느 회차에선가 채림이 시댁살이에 지쳐 비를 쫄딱 맞고 친정 집에 가 친정 엄마가 끓여준 두부찌개를 먹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두부찌개를 끓여 달라고 했다. 엄마는 갑자기 웬 두부찌개냐고 했지만 다음날 저녁으로 두부찌개를 끓여줬다.


엄마의 두부찌개는 거창하지 않다. 그냥 호박이랑 두부랑 파 마늘, 고춧가루, 거기에 새우젓으로만 간을 한다. 혼자 두부찌개를 끓여봤는데 툭툭 넣는 엄마의 갈량을 따라잡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엄마가 끓여주지 않아서인지, 도무지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시작은 채림 엄마의 두부찌개였고 나는 채림 엄마의 두부찌개가 어떤 맛인지 모르지만 분명 우리 엄마 두부찌개처럼 포근한 맛이었겠다 한다.


비를 맞은 것도 시댁살이를 한 것도, 엄마와 떨어져 산 것도 아닌데, 뜨끈한 두부를 후룩 한 번, 후룩 두 번에 나눠먹으면 엄마 품에 안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가을비에 오들오들 떨리는 날이 되면 엄마가 끓여준 두부찌개가 생각나니 거참 이상한 일이다.


1층 두부공장

나는 방과 후에 학원 두 개를 가는 것 빼고는 저녁 해 질 때까지 동네 문고에 가 있었다. 방문 기록장에 이름과 시간 전화번호를 적고 문고에 들어서 책을 골라 읽다가 대출 기록장에 이름과 책 제목, 출판사를 적으면 책을 빌릴 수 있었던 동네 문고는 두부 공장 위에 옥탑방 형태로 있었다.


문고에 가려면 1층의 두부공장을 지나, 뒤돌아보면 머리가 핑 도는 높이의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철제 계단도 계단이지만 1층의 두부공장을 지나가야 하는 게 곤욕이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항상 뜨뜻미지근한 꼬릿한 냄새가 났다. 특히 여름이면 ‘이런 게 두부 만들 때 나는 냄새라면 나는 두부를 먹지 않겠다.’ 할 정도로 냄새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특히 첫 번째 계단을 밟을 때쯤 나는 냄새에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숨을 참고 정신없이 계단을 올랐다.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최소 5년 이상 두부공장 앞을 지나다녔는데 아무리 지나도 그 두부공장 냄새가 익숙해지지 않았었다. 어느 해 그 땅은 재개발이 되어 두부공장은 싹 밀리고 빌라 촌이 됐다. 나도 고등학생이 되어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야간 자율 학습은 해야 했기 때문에 문고며 두부공장이며 그다지 생각지 않으며 살았다. 그러다가 한참 뒤 성인이 되어 대학에 다니던 어느 해, 동네에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파는 손두부 가게가 생겼다. 주인아저씨 혼자서 날마다 모두부와 순두부를 만들어 팔았는데 12시에 가면 그 시절 두부공장의 꼬릿한 냄새가 거기서도 났다. 뭉게뭉게 가게를 가득 채운 두부 김과 꼬리꼬리한 냄새를 뚫고 주인아저씨를 찾아 부르면 안경에 김이 허옇게 끼인 주인아저씨가 “뭐 드릴까.” 한다. 그럼 나는 “국산 두부 한 모랑 순두부 하나 주세요.” 라고 한다. 아저씨는 역시 하늘색 봉지에 두부를 담아주면서 말한다. “오늘은 물을 좀 덜 뺐어요. 먹어보고 뭐가 나은지 다음에 말해줘요. 허허.”

뒤돌아서 가게를 나오면 온 몸이 두부 존(Zone)에 담가졌다 나온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코를 막고 뛰어 지나가던 1층 두부공장의 사계절이 떠올라 피식 웃고는 두부 담긴 봉지를 털레털레 휘저으며 간다. 그게 좋아 일부러 매번 12시에 두부를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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