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사회혁신디자인, 공공디자인을 다시 묻다

by 리애

어느 날, 동네 작은 공원의 벤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잠시 머물다 가는 자리에 놓인, 오래되어 약간 기울어진 벤치였다.

그 벤치는 특별히 예쁘지도, 기능적으로 우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붙잡았던 걸까.


아마도 그곳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머무름의 여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여지는, 단순히 '설계'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오가던 사람들의 시간, 관계, 기억이 스며들며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디자인이란, 때때로 도시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디자인이라는 일을 해오면서,

늘 공간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리의 의자, 골목의 간판, 안내판 하나에도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디자인이 정말 사람에게 말을 거는 순간은 드물었다.

어딘가 부족했고, 때로는 너무 일방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되묻게 되었다.

디자인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의 끝자락에서 나는

'사회혁신디자인'이라는 개념과 마주하게 되었다.



디자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혁신디자인은 기존의 공공디자인처럼 형태를 만드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디자인은 건축적 형태나 시각적 미감보다,

사람과 사회를 움직이는 방식에 더 집중한다.

디자인이 단지 '무엇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어떻게' 바꾸어낼지를 설계하는 사고방식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공공디자인과 구분된다.


사회혁신디자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문제의 '정의'부터 공동으로 시작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결과물보다 과정 자체가 디자인의 핵심이다.

변화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로 작동되도록 설계한다.


그 안에서 디자이너는 더 이상 단순한 설계자가 아니다.

Ezio Manzini는 그의 저서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

디자인 전문가가 조력자, 행동가, 전략가, 그리고 비평가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이 디자이너 고유의 문화와 능력의 표현이여야 하며 이것이 디자인 전문가의 다양한 역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실천의 현장에서 연결자 라는 또 하나의 역할을 덧붙이고 싶다.

디자인 전문가는 사회혁신의 디자인 과정에서

조력자 1, 행동가2, 전략가 3, 비평가4, 연결자5 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1,2,3,4,5 각주 참고


디자인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는 일이 된다.



나는 이 언어를 믿어보기로 했다.


최근의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들은 점점 더 이 사회혁신 방식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이를 '디자인의 내면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겉모습이 아닌 사람의 경험, 인식, 행동 변화를 설계하는 방식.


예를 들어: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만든 골목 쉼터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참여한 편의시설 개선

청소년이 제안하고 주민이 함께 실행한 골목길 안전 캠페인

주민들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마을 간판 시스템


이러한 사례들에서 디자이너는 결과를 제공하지 않는다.

질문을 만들고, 대화를 설계하며, 과정을 동행한다.


공공디자인이 이제 단지 '누구나 사용 가능한 것'을 만드는 단계를 넘어,

'누구와 함께 만드는가'의 질문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말 없는 구조에 말을 걸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크고 작은 깊은 문제들 속에 있다.

지역의 소멸, 고령화, 고립, 관계의 해제, 기후 위기.

이 모든 문제는 단순한 기술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사고와 실천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디자인이 그 답을 가진 언어 중 하나라고 믿는다.


디자인은 이제,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는 눈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도시를 구성하는 벤치, 간판, 길 이름 그 하나하나가

다시 사회와 말을 나누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디자인은

우리 사회를 다시 이야기하게 만드는 조용한 문장처럼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사람과 공간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디자인을 상상할 것이다.
거리의 벤치 하나, 골목의 간판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연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고 싶다.




각주

1. 조력자(facilitator): 사용자와 공동체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디자이너. 설계자가 중심이 아닌, 참여자가 주도하는 디자인 환경을 조성한다.

2. 행동가(Activist):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인식하고, 실천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디자이너. 현장에 뛰어들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실행자 역할을 한다.

3. 전략가(Strategist): 문제 해결을 넘어, 시스템과 구조를 분석하고 방향을 설계하는 디자이너. 지속 가능한 변화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한 설계를 담당한다.

4. 비평가(Critic): 기존 제도나 담론을 비판적으로 재조명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는 디자이너. 디자인을 통해 사회와 문화에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

5. 연결자(Connector): 다양한 이해관계자, 자원, 공동체 사이의 접점을 설계하는 디자이너. Manzini의 이론에는 직접 명시되지 않았지만, 실천 현장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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