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마이클 베이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열렬한 신봉자라는 사실은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그의 영화는 현란한 추격씬과 대폭발, 미녀들의 각선미를 부각하는 순간에도 미국이 가진 힘을 강조했다. <아마겟돈>에서 지구를 구한 미국의 힘에 전세계의 민중들이 은혜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사이버트론의 내전에서 미군 특수부대가 오토봇을 도와 디셉티콘을 박살 내는 전개는 그러한 신념의 자부심이었다. 미국에 대한 그의 맹목적인 신뢰는 SF영화 <아일랜드>에서도 강박적으로 드러났는데, 정부와 대기업의 결탁으로 볼 수 밖에 없을 음모를 애써 일개 기업의 일탈로 치부해버린다. 그가 그 동안 보여왔던 작품 세계를 생각한다면, <13시간>은 먼 옛날 <황야의 7인>과 같은 서부극의 영웅담을 21세기에 변주시킨 액션 영화로 예상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13시간>은 2012년 9월 11일,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 크리스토퍼 스티븐스와 수행원 숀 스미스가 살해 당한 당시의 상황을 그려낸다. 민중들에 의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처단 당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우리는 <13시간>이 헐리우드 전형적인 전쟁영화를 그려낼 거란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네이비 씰 예비역 잭 드 실바는 CIA의 하위 부서인 GRS(Global Response Staff)에 채용되어 벵가지의 CIA 지사에서 근무 중인 타이론의 팀에 파견되는 것으로 <13시간>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업무는 긴장의 연속이며, 벵가지 지사장 밥은 이들을 달갑게 보지 않는 한편, 리비아 민주 정권과의 외교를 위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가 벵가지의 영사관에 머물면서 GRS 대원들의 중압감은 더욱 심해진다. 그런 일상에서 독립영화 <이슬람의 순진함>과 미국인 개신교 목사의 혐 이슬람 발언으로 인해 중동의 반미 감정이 심해지고, 그 와중을 틈타 정체불명의 무장단체가 영사관 건물을 습격한다. 그리고 GRS의 팀장 타이론은 대원들을 데리고 그들을 구출하러 나선다.
실화에 기반한 <13시간>의 서사는, 이천년대 초반부터 나타난 여타 현대전 영화에 비교해 특이한 부분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이클 베이가 이제껏 보여줬던 필모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마음껏 부수지 못하고, 긴박한 순간에 나타나야 할 미국의 초월적인 힘은 나타나지 않는다. 지사장 밥이 말하는 ‘권한’ 때문에 타이론과 그의 동료들은 제때 출동하지 못하고, 스티븐스 대사와 그의 수행원들은 죽어간다.
마이클 베이의 영화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그의 전작들은 여태껏 주인공들이 무얼 부수던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 어떤 견제를 받지 않았다.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서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령 <나쁜 녀석들 2>의 마약 수사관 마이크와 마커스는 마이애미 경찰 내부의 일개 부서장의 묵인과 CIA 요원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쿠바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인다. <트랜스포머2>의 레녹스 소령은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국방부 고문을 사막 한복판에 던지고 오토봇을 도우러 나선다.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언제나 최선이며 그 과정에 있어서 윤리적 고민 없는 폭력을 무차별적으로 투사 한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던, 마이클 베이의 작품 세계에 투영되는 미국 헤게모니의 초월적 힘은 등장인물들이 행하는 폭력의 당위성을, 결과를 통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13시간>의 인물들은 미국이 지닌 힘을 기반으로 이를 외부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들이다. CIA 지사장 밥과 GRS 팀장 타이론, 그리고 잭, 스티븐스 대사와 국무부 수행원들에 이르기까지 이들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있을지언정 모두들 리비아에 만연한 혼돈에 미국의 힘을 통한 질서를 가져오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로 뭉친 이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미국의 힘은 닿지 않는다. 영화 초반의 리비아 군벌과의 대치 상황 직후, 타이론은 말한다. “우리 위를 지켜주는 드론 따위는 있지도 않아.” 드론은 미국이 지닌 헤게모니의 반영이자 군벌과 미국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두려움의 상징이다. 하지만 벵가지에는 닿지 않는 허상이다.
기묘한 것은 밥의 태도이다. 그는 GRS가 리비아에서 문제만 일으킬 뿐이라고 여긴다. 스티븐스 대사가 위기에 빠진 순간에도 우호적인 민병조직 2월 17일 여단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으며 권한을 이유로 타이론을 저지한다. 아군과 적군을 완벽하게 나누는, 미국적 질서에 의한 이분법의 연장이다. 그가 강조하는 ‘권한’은 질서가 유지되는 한 유효한 원칙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 영사관의 경찰과 민병대 경비원들은 모두 도망친다. 결국 이전까지 미국이 생각해왔던 가치판단의 기준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며,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 밥은 미국의 힘이 사실은 허상이었음을 드러내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영화의 주제의식은 타이론이 지휘하는 GRS 대원들의 교전상황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이 보게 된 것은 <블랙호크다운>의 모가디슈처럼 적개심으로 가득 찬 전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건 현장 주위를 감도는 순진한 호기심과 거리의 총격전을 일상으로 여기는 벵가지 시민들의 모습, 그리고 2월 17일 여단 간부가 당연하다는 듯이 적과 내통 하는 상황이었다. 마이클 베이의 세계관에서 줄곧 그려졌던 이분법의 구도는 여기서 무의미해진다. 만약 그게 여전히 유효했더라면, 착하며 총을 든 리비아인들은 모두 죽은 리비아인으로 다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CIA 안가를 방어하는 순간에도 신중히 방아쇠를 당긴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보장하는 이분법적 판단은 더 이상 유효하지도, 유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의 회의적인 태도는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미국인의 시각에서 국가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한 것에 가깝다. <13 시간>은 미국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책 역시 부정하지 않고, 개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기에 미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마이클 베이는 여전히 열렬한 미국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분명 시대는 변했고 마이클 베이는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서사의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13시간>은 분명 흥미로운 영화다. 그의 현란한 편집과 연출력은 앞뒤 분간이 없는 혼란 속에서도 정확한 주체를 집어낸다. 최근 제작한 두 작품의 매너리즘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 세기를 걸친 흥행 감독으로서의 자질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혹자의 말처럼, 이제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별로 없다. 이제 세상은 총잡이들의 영웅담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이클 베이는 도태될 것인가? 아직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의 스타일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고, 진중함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더욱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