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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경 May 07. 2018

촛불 이후의 불온세력


  70년 전의 사상검증


  "여기 제 손에 공산당 지령을 받는 공무원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1950년 2월 6일, 웨스트 버지니아 주 휠링의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외쳤다. 조지프 매카시, 위스콘신 주 판사 출신으로 공화당 상원의원이 된 그는,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성실함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어떤 무리수를 써서라도 대중의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 났던 무명 정치인이었다. 그의 공산당 발언 역시 관심받기 위해 지어낸 말이었고, 조금만 생각해도 뻔한 거짓말이라는 것은 쉽사리 드러날 것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매카시의 발언은 AP통신을 통해 미국 전역의 언론사에 전달되었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그의 발언을 지나쳤다.


  그럼에도 매카시는 주목받는 데 성공했다. 기자들이 사실 여부를 추궁하기 위해 몰려온 것이다. 애당초 매카시에겐 명단 따윈 있지도 않았다. 그저 위스키 한 병만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파견된 기자들에겐 발언을 검증할 시간 여유는 없었고, 그렇다고 매카시의 소지품을 뒤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카시는 그 점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기자들은 몰려올 것이고, 기자들이 자신의 발언을 기사화할 것도 알아챈 것이다. 매카시의 분석은 정확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늘어놓음에도 매카시의 이름은 안보 투사로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차례 일간 신문의 1면을 차지한 매카시는 어느새 미국의 공화당 우파 진영의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매카시가 힘을 얻은 것은 당시 시대상을 생각할 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경험한 미국인들은 미국 사회의 이상이 세계를 이끌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승리의 한 축에는 소련이 있었고, 소련은 전 세계의 공산세력을 지원하며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트루먼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은 그런 위협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앨저 히스와 오웬 레티모어 같은, 민주당의 진보 진영 인사들이 간첩 혐의로 기소됐고,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미국인들이 공산세력을 두려워하기에는 충분했다. 매카시는 이런 시류에 영합했을 뿐이었다. 훗날 매카시즘이라 불리게 되는 미국 현대사의 손꼽히는 비극에는 그런 이면이 있었다.


  전당대회 발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카시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 활동에 참여한다. 반미활동조사위원회는 1938년, 미국의 공화당 내 보수 우파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기관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진보성향의 교육자, 법조인, 사회운동가들의 사상을 검증하는 것이었는데, 미국 내 진보 좌파들이 공산주의 사상으로 미국 사회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할리우드의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그중에서도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문화예술계 특성상 영화인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진보적인 분위기였고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으며, 공산주의 역시 사상의 자유에 의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이 청문회에 소환됐다.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있거나 공산당에 가입한 이들과 친분관계가 있는 것이 이유였다. 반미활동조사위원회가 그들을 심판할 권리는 없었다. 공산당 가입은 엄연한 합법이었고, 민주주의 국가는 시민의 합법적인 행위를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언을 거부한 이들은 의회 모독죄가 적용되어 처벌을 받았다. 처벌 근거야 어쨌든,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영화인들은 업계 내 명성을 막론하고 일개 노동자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선택은 없었다. 국회에 불려 온 이들은 국민의 대표들이 보는 한가운데서 자신의 사상을 고백당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매카시의 위원회 가담은 할리우드 영화인들에게 있어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매카시가 위원회에 가담한 뒤인 1951년, 할리우드의 영화인들은 또다시 탄압을 받는다. 이제 공산당 가입 전력 정도는 이유가 되지 않았다. 공산당을 확실하게 반대하지 않고 반미활동조사위원회를 지지하지 않는 것 역시 사상검증의 이유가 됐다. 우익 정치인들의 조직적 탄압과 대중들의 분노 속에서 영화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별로 없었다. 소신을 선택하여 비애국민이 되거나, 청문회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며 동료 영화인을 고발하는 것 외엔.


  월트 디즈니와 MGM의 로버트 M. 메이어 사장 같은 할리우드의 자본가들 역시 사상검증의 대상이었다. 할리우드에 좌파가 창궐한 것에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문회에 소환된 자본가들은 도리어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적극 협조했다. 매카시즘은 하나의 기회였다. 자본가 입장에서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노동자는 눈엣가시였고 이들을 대놓고 쫓아내기에 사상 검증 문제만큼 좋은 기회가 없었다. 더군다나 로널드 레이건 같은 보수 우파 배우들과 -먼 훗날 후배 영화인들의 야유 속에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받은- 엘리야 카잔 같은 변절자들이 동료들을 고발하는데 앞장섰으니, 자본가들이 노동탄압에 큰 힘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영화인들은 할리우드에서 추방당했다. 찰리 채플린은 스위스로 이주해 말년에야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나치즘을 피해 미국에 정착한 브레히트 베르톨트는 매카시즘을 피해 미국을 떠나야만 했다. 존 휴스턴과 험프리 보가트, 캐서린 햅번과 같은 영화인들이 헌법에 의거해 핍박받는 동료들을 위한 목소리를 냈지만, 그들 역시 매카시즘에 호응하는 대중들에 의해 활동 취소 압박을 받는 등의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할리우드의 흑역사였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매카시즘은 1954년에 수그러들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미국의 보수 정치인들은 더 이상 좌파몰이를 필요하지 않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매카시즘이 잘못된 것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조지프 매카시와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활동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1954년 3월 9일, CBS의 뉴스 앵커 에드워드 머로우는 TV토론에서 매카시가 그동안 해왔던 주장이 거짓말이었음을 폭로한다. 그 순간 이후 매카시를 지지하던 이들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사상검증과 맞서던 소수의 목소리에게 힘이 실어주기 시작했다. 권력과 명예를 한 순간에 잃게 된 매카시는 스트레스로 인한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1957년 5월 2일 간염으로 사망하고, 미국 사회는 매카시즘의 광풍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매카시즘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많은 이들은 대부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매카시즘에 협조했던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자본가들은 애당초 "빨갱이"들을 쫓아낼 궁리만 했었고, 부역자들은 "빨갱이"를 제물 삼아 정치적 성공을 바라고-로널드 레이건은 훗날 대통령이 된다.- 있었다. 변절자들은 자신들의 비겁함을 부정하고 싶었다. 피해자를 위한 사회는 없었다. 



  오직 여성, 노동자만 탄압하리라


  나는 2년 전 대중문화시장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한다. 한 프리랜서 성우가 페미니즘 티셔츠를 인증했다. 주로 젊은 남성들이 중심이 된 불특정 다수가 그를 '남성 혐오'와 '역차별'을 조장하는 '메갈'이라는 불순분자로 취급했다. 그가 참여했던 온라인 게임의 작업물은 기업의 의견에 따라 일방적으로 폐기된다.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소수의 노동자들이 소신을 밝혔다가 그들 역시 '메갈'로 낙인찍혀 일상과 생계가 위협당했다.


  그 이후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젊은 남성들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이제는 여성의 삶을 말하고 대중문화의 여성 혐오를 언급하거나 혹은 언급하는 이들과 가깝게 지낸다면 그 역시 사상검증의 대상이 됐다. 걸그룹 '레드 벨벳'의 멤버 아이린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으로 <82년생 김지영>을 구입한 인증숏을 올렸다가 불특정 다수에게 사이버불링을 당했다. 게임업계의 손꼽히는 원로 개발자이자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개발사 IMC 게임즈의 김학규 대표는 자사의 여성 직원이 여성민우회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한다는 이유로 '메갈'여부를 추궁하고 사상을 검증했다는 사실을 대표 명의로 발표했고, <벽람항로>의 퍼블리셔 X.D. Global의 내부 관계자가 프리랜서 노동자에게 노골적으로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발표를 하라.'는 압력을 행사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 상황에서 하나의 기시감을 느낀다. 1951년 할리우드다. 매카시즘의 지지자들은 자유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할리우드 노동자들의 신상을 뿌리며 그들의 삶을 위협했다. 2018년 대한민국의 젊은 남성들 역시 웹툰과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신상을 나무위키로 유포하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매장을 조장한다.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는 남성 혐오주의자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 이유다. 남성 혐오가 종래의 '혐오' 범주에 들어가냐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타도 명분과 그 과정이 신념의 자유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일까. 국가보안법 정신에는 확실히 부합한다.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도 동의될 일이다. 소비자들에게 페미니즘을 반대할 권리가 있다면 기업은 거기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권리가 기업 혹은 기업가들에 대한 분노로 표출된 적은 없다. 적폐 세력에게 공감하던 김학규 대표에게, 넥슨의 법인 명의로 우병우에게 뇌물을 증여했던 김정주 회장에게, 과로와 임금체불로 점철된 넷마블로 향한 적은 없다. 심지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분노가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번진 적도 없다. 오직 여성의 삶을 말하고 그에 공감하는 노동자 개개인들에게만 분노가 향했다.  


  사상검증의 논란 한가운데에 '메갈'이란 키워드를 두고 양상을 살펴보면 기시감은 선명해진다. 논란의 한 축에서 탄압받는 여성 노동자의 편을 든 것은 민주노총과 여성민우회, 게임 개발자연대와 IT산업노조 같은 시민단체다. 반대항에는? 시장 논리를 앞세우는 기업과 그 경영진이 있다. 사태의 본질은 페미니즘이다. 더욱 자세히 말하면 여성의 권리가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남성들에 의해 위협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노동자의 목소리를 말하는 이들과 신자유주의적 가치 지닌 기업과의 대립이 결부되어 있는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기업이 노동자의 사생활을 사찰하는 행위는 노동권에 있어 어떤 의미인가. 소비자 대다수는 결국 노동자 계층인데, 이들이 동류 계급의 시민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선다는 것은 어떤 징후인가. 70년 전 할리우드의 자본가들이 매카시즘에 편승해 얻어낸 이득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올 것이다.



  포스트 촛불의 시대


  어떤 관점에서 페미니즘 사상 검증 논란은 사소한 문제일 것이다. 남북 종전선언 혹은 삼성과 대한항공이라는 재벌이 자행한 범죄 행위에 비하면 사회적 파급력은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념 갈등과 재벌권력의 폐해는 70여 년의 세월을 거쳐 현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를 형성한 대의의 근원이다. 동시에 수많은 사회적 모순의 시작이자 모든 세대들이 당면한 시대적 과제이다. 하지만 게임과 웹툰의 세계는 온전히 젊은 세대의 영역이다. 젊은 세대 내부의 갈등은 우리가 지난 시절의 관점으로 시각으로 해석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기에 게임과 웹툰 업계 내의 사상 검증 이슈가 사회 전체적 논란으로 부각되기는 당분간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 사건은 절대 젊은 세대만의 해프닝으로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적 억압은 진영과 세대에 막론하고 걸쳐있다. 예컨대 페미니스트 교사 최현희 씨에에게 가해진 사법적 억압은 '미풍양속'에 근거한 극우 시민단체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민주정의당 같은 진보정당 내 페미니스트 여성 정치인에게 '메갈'과의 관련성을 언급하며 공격한 이들은 동 진영의 남성 당원들이었다. '공작의 사고방식'을 통해 미투 운동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 것은 진보 진영의 아이콘인 김어준이었다. 미투 운동의 변질성 논의가 시작된 것은 그 대상이 진보 진영 내부에 집중됐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 매카시와 같은 존재가 나타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난 10여 년 간의 국가 권력의 반공 히스테리를 겪으며 우리는 국가 권력의 시스템을 이용한 사상 통제의 패악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카시즘의 정서는 실재한다. 거기에 영합하는 유형 역시 실존한다. 음모론에 의거한 오피니언 리더도, 자의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생산하는 집단도, 노동 탄압의 구실을 찾는 자본가에 부역하는 노동자들 역시 지금의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현시대의 대한민국에 매카시적 존재가 재림할 토대는 갖춰졌기에 불가능을 확신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작금의 논란을 둘러싼 그 누구도 군사정권과 군국주의 사회로의 회귀는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시즘이냐 민주주의냐의 문제는 무의미하다. 반공을 기준으로 피아를 구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촛불 혁명은 성공했고, 우리는 그 사회를 살아간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그다음이다. 촛불 이후 시대에서 진보 의제가 향해야 하는 길은 무엇인가. 반공이라는 본질이 부재함에도, 매카시즘의 맥락과 현재의 맥락에서 겹쳐지는 것들이 무엇인지 직시한다면, 답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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