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십 년 전에 <아이언맨>의 제작 현장의 소식을 접했다면 이 영화가 성공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도저히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모든 게 처참했다. 존 파브로가 지닌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는 흥행을 보장하지 않았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커리어는 마약 중독과 그로 인한 태업이 따라다녔다. 그가 맡은 "아이언 맨"은 마블 코믹스의 원작 팬들 사이에서 흔한 히어로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제일 심각한 문제는 각본이었다. 각본가들의 실력은 최악이었고 그나마도 제 때 완성시키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제프 브리지스가 촬영 당일 제공된 대본을 즉석으로 수정해가며 촬영에 임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아 대부분의 분량을 즉흥연기로 때워야 했다. 제작자 케빈 파이기가 보고 싶어 했던 결과물은 <스파이더맨>과 <엑스맨>의 전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퍼니셔>와 <데어데블>, <엘렉트라>, <고스트 라이더>에 더 가까웠다. 양자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이제 어느 누구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이하 MCU)의 영화들이 그렇게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언맨>은 성공했고, 두 세기에 걸쳐 미국의 서브컬처의 대명사였던 마블 코믹스가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에 안착해 세계적인 트렌드를 앞장서는데 기틀이 됐다.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팬서"와 같은 슈퍼 히어로들이 지니던 사회적 상징성들은 시네마에서 더욱 큰 영향력을 미쳤다. 한 때, 서부극의 총잡이들이 그랬듯 슈퍼 히어로들의 영웅담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 그리고 새 시대의 미국 신화가 됐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는 10년 간 MCU가 쌓아온 방대한 세계를 마무리 짓는다.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히어로들이 하나의 영화에 결집하고, 대규모 전장에서 한꺼번에 뒤엉킨다.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우주적인 권능에 의해 소멸을 맞이한다. 이 영화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특수효과? 상상력? 시대상? 이 작품에서 굳이 그 물음을 꺼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수효과와 상상력은 MCU 그 자체의 정체성이다. <어벤저스>는 거대한 스케일 위에 등장한 슈퍼 히어로들의 그 자체의 서사로서 장르 내 미학적 위치를 차지한다. 여기서 시대상의 반영을 이야기 하기는 쉽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에서 찾을 것은 단 한 가지, MCU 그 자체로서의 즐거움이다. 수많은 히어로들의 활약을 바라보고 그 이후를 기약하는 것만으로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타노스에 관하여다. 은하계 전체의 멸망을 막겠다는 미명 하에 자행하는 그의 선택적 학살 행위는, 많은 비평가들이 말하듯 19세기 경제학자 로버트 맬서스의 인구론에 의거한 구원이다. 물론 타노스가 말하는 구원이란 결단코 공정한 방법이 아니며, 그가 짊어지겠다는 죄책감 역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계급을 막론한 50%의 죽음은 과잉 인구로 인한 멸망을 유예할 뿐이며 1%의 지배계급이 만들어진 모순을 99%의 피지배계급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타노스의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에서 다룬, 기독교 구약 신화에 나타난 메시아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이다. 노아는 예언에 따라 가족과 함께 재난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타인들의 죽음을 외면한 것에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신의 뜻을 이행했다는 것으로 심리적 방어기제를 찾는다. 그러나 이후 태어난 쌍둥이 남매의 존재에 의해 노아의 자기합리화는 모순에 빠진다. 결국 그는 자신이 메시아적 역할에 집착해 아이들을 죽이려 들기에 이른다.
창세기의 또 다른 메시아인 아브라함도 비슷한 시련을 겪는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목격하고 그 후 메시아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산제물로 바친다. 그의 광신적 행보가 사실은 재난 와중에 겪은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라면? 대런 아로노프스키적 시각으로 바라본 아브라함에 대한 신화적 투영은 타노스의 일대기로 나타난다. 타노스는 고향 행성의 멸망을 예견하고 절반의 죽음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세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멸망한다. 그 와중에 홀로 살아남은 타노스는 우주적 질서에 의해 메시아로 선택됐다는 자기합리화로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기점으로 타노스는 절반의 죽음이란 폭력을 반복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생존자로서의 죄책감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노스는 그저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병든 자아이다. 다만 그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기에 빌런으로서 성립될 뿐이다.
타노스는 결코 위대한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게 부여된 신화적 서사와 의미를 부정할 수 없다. MCU의 과거와 미래에 관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10년의 세월 동안 만화 속에 존재하던 슈퍼 히어로들이 대중문화 전반으로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배우가 동반됐다. 그들은 활자와 그림, 칸에서만 존재하던 슈퍼 히어로들을 실사 차원으로 옮기는 시뮬라크르적 전달자였다. 문제는 배우 그 자체가 슈퍼 히어로의 분신이 됐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난 10년 간 MCU를 쌓아 올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MCU의 미래에 한계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맬서스의 표현을 빌자면, 배우의 몸값과 인지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지만 상업적 이득은 산술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배우 개개인들에게도 득실은 마찬가지다. MCU의 슈퍼히어로가 되는 것은 스타급 배우로서의 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배우가 지닌 커리어에 한계를 가져올 것임은 확고했다.
타노스가 빌런이자 뒤틀린 메시아로 정의되는 것은 당연하다. MCU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해답은 <스타트랙>과 <엑스맨>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프랜차이즈의 리부트다. 타노스가 첫 등장 이후 6년 간 집착해왔던, 인피니티 스톤을 통해 얻게 되는 우주적 권능이란 리부트를 위한 서사적 장치이자 MCU의 거대한 세상을 이끌어 온 히어로와 그 배우들을 위한 은유적 존중이다. 타노스가 지닌 인피니티 건틀렛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 닥터 스트레인지는 말한다. '이제 마지막 단계야.'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의 마지막에서 리부트는 시작됐다. 이제 MCU의 과제는 리부트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끌어나가냐는 것이다. 은하계 전체의 인류 절반이 무작위로 소멸되는 와중에도 어벤저스 4인방이 온전히 살아남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타노스가 말한 우주의 섭리란 사실은 MCU 제작진들이 세계관의 한계에 다다름에 대한 고민이 포함된 답이다.
다만, 혼란스러운 것이 있다. 타노스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다. 타노스는 분명한 빌런이다. 가모라에게 아버지로서 자신의 존재를 자칭하는 타노스는, 정작 서사의 그 어떤 곳에서도 가모라에게 아버지로서의 유대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가모라에게 가르친 것은 사랑이 아닌 암살자로서의 기량이었다. 그는 딸이라 부르는 네뷸라를 산 채로 조각내 고문하고, 딸이라 부르는 가모라를 보르미르 행성의 절벽에 내던진다. 그럼에도 영화의 시선은 타노스의 눈물에 주목한다. 그의 슬픔은 분명 진실된 감정이다. 그 대가로 그는 소울 스톤을 얻을 수 있었으다. 인피니티 건틀렛의 권능을 발휘한 이후 그가 본 환상은 가모라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자아의 투영이었다.
여태껏 그가 보여준 권위주의적 폭력성을 생각하면 이는 모순이다. 하지만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실패라 볼 수는 없다. 타노스에 대한 시선은 자기 연민에 심취한 가부장 폭력배에 대한 은유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염두할 것은 MCU가 지닌 무의식적 한계다. MCU의 빌런들 중 동정받을 여지가 있던 이들의 동기는 늘 남성 중심 가부장제에 기댄 명예와 좌절에서 시작했다. 로키에서 킬몽거에 이르기까지 그 기준은 한결같았다. 그들의 악행이 미화된 적은 없지만, 그들의 동기가 동정받을 여지가 있었음은 종종 드러났다. 이를테면 킬몽거를 생각해보자. 그는 민간인을 학살한 전쟁범죄자였고, 와칸다로 가겠다는 목적 하나로 자신의 연인을 거리낌 없이 살해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킬몽거가 세상에 대한 원한과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부정되지는 않았다. 킬몽거는 오히려 트 찰나의 품에서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한다. MCU가 다루는 사연 있는 악당이란 그런 것이다. MCU는 남성 중심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폭력을 미화하지 않았다. 다만, 남성 중심 시각의 세계를 부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타노스에 대한 모순은 그러한 맥락의 연장이다. 그것은 명실공히 리부트 이후 MCU가 마주 봐야 할 극복 과제이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이후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은 MCU가 나아갈 방향이다. 그동안 MCU를 이끌어 왔던 슈퍼 히어로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히어로들이 그들의 행보를 이어받을 것이다. 일단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이후에 새로이 등장할 히어로는, 쿠키 영상을 통해 예고되었듯 "캡틴 마블"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캡틴 마블"은 MCU 역사 최초의 단독 타이틀 여성 히어로이며 MCU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히어로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한편 서브 히어로에 머물렀던 "블랙 위도우" 역시 단독 타이틀의 주인공으로 출연할 것이란 계획도 확정됐다. <블랙 팬서> 이전에 등장한 히어로들이 전부 백인 남성 캐릭터였음을 생각하면 MCU가 진보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 예고들이 끌리지 않는 것은 MCU가 지난 십 년 간 보여왔던 보수적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현대 신화의 계보가 되었다 한들, 그 이야기는 순전히 백인의 것이자 남성의 것이었으며, 비백인의 존재는 너무 오랫동안 백인 히어로의 보조적 역할에 한정되고 말았다. 두 여성 히어로의 단독 타이틀이 예정됐음에도 내가 열광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이벤트가 시대적 요구에 마지못해 부응하는 생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리부트 이후의 MCU가 더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다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것은 단지 더 많은 만화 속 캐릭터의 더 많은 실사적 재현의 기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엑스맨과의 세계관을 통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으나, 그러기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타노스의 신념의 자가당착에서 보듯, 리부트는 유예일 뿐이지 본질적인 해답은 아닐 것이다. <캡틴 마블>과 <블랙 위도우> 이후 MCU가 세계관 자체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