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가는 월세에는 두 눈을 감아보자.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좋은 기회로 작은 회사에 들어가 남들보다 일을 빠르게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해보지 않은 일을 해내는 법을 스스로 학습을 통해 배웠다. 독립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끝낼 수가 있었고 우유부단한 나에게도 '결단력'이라는 능력이 어느 새인가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물론 그 성장의 토양에는 나를 갈아 넣은 피땀 눈물이 배어있다)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회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독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조심스럽고 겁도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런 편이었고, 물론 지금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대학생 때 작은 프로젝트의 PM을 맡으면서,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혼자 부딪히며 일을 배우며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내 안에는 독립적이고 용감한 나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독립에 대한 꿈이 생기고,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가족들을 설득하며 나온 집, 이제 1달이 되었다. 독립해서 가장 좋은 점은 단연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자취하니까 뭐가 좋아?'라고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100이면 100 했던 답변일 정도로 이 점이 가장 좋다. 본가에 있을 땐 보통 주말이나 평일에 집에 가서도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의무감"으로 거실에 앉아있던 적이 많았다. 퇴근 후 거실에 앉아 tv를 보는 건 분명 쉬는 일인데, 그 의무감으로 앉아 있으니 마음만 불편하고 '내 시간을 갖고 싶은데..' 하는 아쉬움과 불만이 계속 쌓이기만 했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내 집을 내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게 본가에서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할머니와 부모님의 취향으로 이미 꾸며진 꽃무늬 벽지, 그리고 체리색 가구를 버리고 새 것을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 이번에 독립을 하면서 가구를 사려고 보니, 원래 집에 있던 가구들이 참 좋은 거였다. 꾸미려고 마음을 먹었어도, 차마 버릴 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독립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은 그저 '사는 공간'이라고만 생각이 들었다. 그냥 원래부터 거기에서 커왔고, 내가 원해서 이루어진 부분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혼자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내 공간을 내 입맛에 맞게 꾸밀 수 있었고, 내 취향도 알게 되었다. 나는 패턴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여기선 그것을 숨기지 않고 내 공간에 마음껏 덕지덕지 꾸밀 수 있었다.
독립 한 달 차, 여러모로 굉장히 만족스러운 삶이다. 물론 빠져나가는 월세에는 눈물이 주룩 흐르지만,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소중한 경험이기에 돈이 조금 들지언정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지금의 내 상황을 비현실적으로 볼 지라도, 사람은 꿈과 이상을 가지고 그것을 좇아갈 때 잃어가던 눈에 반짝이는 초점을 찾고, 더 반짝이는 눈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번 도약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