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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키 Dec 12. 2021

독립을 설득하는 과정

인생 최장기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독립을 설득하는 과정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가족 4명 중 2명이라도 나를 지지한다면 괜찮았을 텐데, 친오빠의 '굳이 해야 해?'라는 애매한 입장 때문에 비빌 구석은 적어졌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점은, 반대라면 가장 넘기 어려웠을,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산인 아빠는 '찬성'이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독립을 한 지금도 여전히 가족 중 가장 날카롭게 나의 안전을 확인하시는 게 아빠지만, 놀랍게도 아빠는 처음부터 찬성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다). 이유도 아름다웠다. 내가 성인이고, 한 번쯤 해보는 것도 필요해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어느 정도 자리를 조금 잡은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실은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앞서 말했지만, 내 안전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가족이 아빠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가족의 반대로, 시간이 지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아빠의 입장이 바뀌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아빠의 찬성 의지를 여러 번 확인하고 나서야,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다음 관문을 살펴보았다. 이제 다음 관문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접근하기가 더 어려운 상대이셨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면 아예 모른 체 하셨고, 어렸을 적 무서워했던 할머니의 모습도 슬쩍슬쩍 나와 나는 몇 번이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었다. 하지만 내가 가족들한테 독립 허락을 받아내는 데에 2년이 걸린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없다면 할머니가 조금은 더 외로워지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대부분을 함께 사셨다. 부모님 대 까지만 해도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네 분 중 모난 분은 없어 긴 세월을 화목하게 지냈지만, 시부모는 며느리의 부모가 될 순 없다고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선과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지 꽤 되었기 때문에 나라도 없다면 적적하실 할머니가 눈에 선했다. 같이 산책도 가고, 시장도 가고.. 도란도란 일상을 함께 했던 것이 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이 다가오면서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내가 결혼을 한다면 세 분이서 생활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내가 독립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끝내 반대에 부딪혀 결국에 독립을 하지 못하게 될지언정 할머니한테 다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그 다짐을 한 일기를 보면 뿌듯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위해 소중한 연차까지 사용했다. 연차를 잘 안 쓰기로 유명한 나의 새해 연도 3번째 연차였다. (그때가 무려 3월이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드렸다. 한 번쯤 꼭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고, 결혼이 다가온 지금, 지금이 아니면 그럴 기회는 이제 없을 거라고 나의 간절한 바람을 말씀드리면서. 그런데 할머니의 반응은 예상보다 침착했다. 어쩔 때 보면 정말 옛날 분 다운 말씀을 하시지만, 또 어쩔 땐 여자로서 누리지 못했던 부분, 사회적으로 본인이 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큰 할머니였다. 그래서인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네라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해보라고 하셨다.


아빠에 이어 믿기지 않는 일이 또 생긴 것이다. 할머니가, 이렇게 물러나 주시다니. 믿기지 않아 5번이고 확인을 했다. 나중에 말 바꾸기 없다고 여러 번 내가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후에 할머니는 한때는 뾰로통하시고, 한때는 아빠한테 나를 좀 말려보라는 이야기를 하셨단다) 그리고 예상외로 강경했던 엄마도, 엄마가 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이지만 나는 해보고 싶다는 점과 아빠의 도움으로 설득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독립을 하게 되었다. 2년 동안 벼르고 벼르던 나의 새로운 생활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날아갈 듯 기뻤고, 오래간만에 엄청나게 큰 두근거림으로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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