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참 너답다!
최근 신혼집 집들이를 하면서 많이 듣는 이야기들이 있다. 바로 '집이 참 베키님스럽네요!' 생각해 보면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밖으로 보여지는 것들을 남들 앞에 내놓았 때 나왔으면 하는 반응은 '예쁘다' 였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옷, 가방, 신발, 내가 사는 곳 등. 하지만 몇 년 새 그런 것들을 보여줬을 때 나오는 반응들은 '이것 참 너답다'라는 비율이 아주 높아졌다. (실은 거의 100%다)
내 주변인들은 나의 취향이 본인들과는 다르거나 조금 독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예쁘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지만, 어느 순간 그런 말을 들을수록 '내 색깔이 뚜렷해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뿌듯함도 점차 커졌다.
나는 본래 남의 눈치를 보고 성격도 소심한 구석이 있어서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 특히 옷을 고를 때도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의 칭찬(?)을 듣기 위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고른 적도 있다. (물론 그 스타일이 아주 베이식해서 아직까지도 잘 입고 있는 옷도 있다) 이런 내가 내 취향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무신사의 한 에디터 님 덕분이었다.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고 무신사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통해 나만 그분을 알게 되었는데,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패턴을 사랑하고 심지어 공통으로 좋아하는 테이블웨어 브랜드도 있었다.(예를 들어, '마리메꼬?) 그리고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패션인데, 나는 방금 쓴 것처럼 내 취향을 숨기거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반면,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마음껏 입었다. 내가 대리만족감을 느낄 만큼. 그의 직업이 직업인만큼 자신의 취향을 더 잘 드러내기도 했겠지만 절대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뽐까지 내는 그의 모습이 내게는 나를 드러내는 큰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패션' 에디터였기 때문에, 나도 내 옷 취향을 드러내도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가 갈 길의 앞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후에 나는 이런 특징을 가진 것들을 밖에 꺼내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1. '패턴이 들어간'
대표적인 게 수영복이었다. 물론 취향 드러내기 시작부터 이걸 구매한 건 아니었지만, 정점을 찍은 아이템이랄까. 신혼여행을 위한 수영복을 고르고 있었고, 단순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걸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단순은 '형태'의 단순함이었나 봅니다) 이걸 고를 때쯤에는 이미, 주변인들의 '너 같다'라는 반응에 익숙하다 보니 오히려 그들을 당황시키기 위해 더 당당히 보여줬고 끝끝내 여행지에서 입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땐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들으며 나의 '취향 드러내기'는 더 자신감을 찾아갔다.
2. 유니크한 색깔과 조합
앞선 '패턴이 들어간 아이템'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나는 남들이 하는 것보다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신혼집을 꾸밀 때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일관된 아이보리' 느낌 보다는 나와 우리 부부의 취향을 담은 #그린과 #오렌지를 선택했다.
그린 아이템의 경우 남편과 나 모두 거실에서는 편안한 분위기가 나길 원해 고른 색이었다. 물론 흔치 않은 색이라 시간과 돈 모두 좀 더 들었지만,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집에 오신 분들도 꼭 한 번 언급하는 아이템 중에 하나가 되었다.
오렌지 아이템을 고르게 된 계기는 전셋집이기 때문에 인테리어에 포인트를 주기 어려워지게 되자 내 기준 '순한맛'으로 꾸민 우리 집에서, '매운맛' 포인트를 꼭 하나 주고 싶은 나의 바람에서 출발하였다. 오늘의집에서 예전부터 눈여겨본, 쨍한 컬러를 잘 뽑는 카펫 브랜드의 제품을 둘러봤고 정말 마법처럼 이 오렌지색 카펫에 마음이 끌렸다. 그 결과 서재는 집에 오신 분들이 언급하는 것을 넘어서 '너답고 예쁘다'라는,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면 '나만의 안목'을 인정받게 해주는 공간이 되었다.
3. 빈티지 & 세련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내 취향을 글로 나타낸다면 이 단어가 아닐까 싶다. 매우 모순된 단어인데 조금 더 설명하자면 깔끔한 화이트/블랙보다는 특정 색깔이 들어간, 그래서 빈티지하지만, 빈티지스럽지만은 않고 세련미 한 방울이 들어간 느낌을 좋아한다. 한 번 더 풀어쓰자면 빈티지하지만 엣지를 놓치지 않는..? 글을 모호하게 쓰는 걸 싫어하지만, 그렇게만 하다 보니 나의 세계가 한정되는 것 같아 이런 시도도 해본다.
다시 돌아와서, 이런 내 취향이 고스란히 나타난 공간이 바로 나의 첫 자취방이 아닐까 싶다.
'일치감'보다는 내 취향을 머금은 아이템을 한 데 모아 이른바 '나다움'을 통해 조화를 창출하고, 그 와중에서도 컬러 포인트를 배치하여 엣지를 주려고 노력했다.
찬찬히 사진을 보다 보니 나의 취향 드러내기는 이 6평짜리 원룸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요가 매트를 펴면 양팔, 양다리 벌리는 동작도 빠듯한 공간이었지만 5년 만에 이루어낸 독립에서 나는 내 중요한 일부를 찾았다.
이렇게 진실한 나다움을 찾아가는 요즘, 그 속에서 듣는 '너답다'라는 칭찬에 나는 퍽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