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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ree Jan 24. 2022

꽃 따라와 주길 바라.

꽃 따라 보냈던 그 길 따라서

작년 오늘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에게서 큰 꽃다발을 받았었다. 나에게 오던 그 꽃은 오는 길에 목적지를 바꿔 그날 아주 먼 소풍을 떠난 여름이에게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좋은 향기 맡으면서 가라고, 길 잃지 말라고 처음이자 마지막 꽃 선물을 했다. 그리고 그 꽃이 시들어 정리하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또 한 번 정리되는 듯했다.


여름이를 보낸 지 꼬박 1년이 되는 오늘도 꽃을 사러 갔다. 꽃집과 책방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자꾸만 가게 되는 꽃집. 사장님께 전화로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꽃을 찾으러 갔다. 갈 때마다 따듯한 온기로 맞이해주는 사장님은 오늘도 여전히 따스했다.


'마음 잘 다독여드리세요. 저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잘 알지 못해서 위로가 되어드릴 수가 없네요. 그래도 어머님께 작은 편지 하나 썼어요'



가족을 잃어본 사람일지라도 저마다의 상황과 사정이 다르기에 가족을 잃은 슬픔에는 딱 들어맞는 위로가 없다. 마음이 앞서 힘이 되지 않는 온갖 말들을 늘어놓는 것보다 위로가 되어드릴 수 없다는 말이 왜 위로가 되는지 모를 노릇이다. 어설픈 포장 없이 솔직하게 꺼내어 보인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사장님이 끼워주신 편지를 열어보았다.


다정하고도 다정한 따님 사위 덕에 어머님께 짧은 글을 드립니다. 따님 통해 잠시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중한 가족을 보낸 지 일 년이 되는 날이라고요.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할지 가늠하지 못하지만, 멀리서 잘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나르시스가 사라진 자리에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고 하여 떠나보낸 가족의 모습을 담아 수선화를 어머님의 꽃에 그득히 담아보았습니다. 오늘 같은 날, 깊은 심연에 빠질지 몰라 어머님을 염려하는 따님과 사위가 곁에 있으니 슬픔은 잠시겠지요? 날이 춥습니다. 마음만은 따듯한 날들 보내시고요. 어머님께 저희 꽃을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볼 때마다 슬퍼지게 왜 꽃다발을 사 왔냐고 말하며 편지를 읽는 엄마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있었다. 나는 또 그 모습에 그래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가 햇살을 쬐어주어야 하는 존재인데 그 틈에 꽃이 함께하면 진심이 더 잘 전해진다는 사장님의 말이 맞았다.


여름이를 보낸 날 밤 잠이 오지 않아서 온갖 채팅창을 거슬러 그간 놓치고 저장 못했던 사진들을 다 끌어모았다. 이제 새로운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그렇게 저장한 수백 장의 사진 중 한 장도 지우지 못했다. 꽃다발을 사서 집에 오는 길에 문득 밤공기가 너무 시려서 눈물이 왈칵 났다. 꾹꾹 누르고 있었는데 내 손을 꽉 잡는 남편 손에 누르던 눈물이 터졌다.


차를 대놓고 여름이를 보러 공원에 갔다. 멀찌감치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보고 있자니 한 줌의 여름이를 안고서 매일 산책하던 공원을 한 바퀴 돌던 춥고 아픈 그날이 생각났다. 사랑을 주기만 한 여름이가 너무 아린 마음에 또 왈칵 눈물이 났다. 누나가 꽃다발 큰 거 집에 가져다 놓을 테니 꽃향기 따라서 집에 한번 놀러 와 달라며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벌써 일 년이 지났고, 여전히 일 년이다. 많이 보고 싶다 나의 첫 강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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