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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ree Jun 07. 2022

생각이 켜진 밤

멀리 사는 남편의 친구들이 근처로 여행을 와서 잠깐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가까워지긴 했으나 한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거리였고,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과 놀고 12시에 출발하겠다고 했다. 조심히 집에 들어가라는 메시지를 남기고서 잠을 청하며 누웠는데 문득 머릿속에 생각이 켜졌다.


'평소에 일찍 자는데, 그 시간까지 깨있다가 혹시 졸음운전을 하진 않을까?'


누구보다도 안전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속수무책으로 이미 켜져 버린 생각은 점점 그 불빛을 밝혀냈다. 한번 생각을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는 이러한 이유로 잠들기 전 정성스레 생각을 지우곤 하는데 그날따라 방심했다. 산길에 고라니가 나오진 않을까, 졸음운전하는 차랑 사고가 나진 않을까 등등 온갖 물음표가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결국 그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뜬눈으로 물음표와 싸웠고 아마도 내가 진 승부였을 것이다.


또 어느 날이었다. 산책을 많이 해서 그랬는지 유난히 피곤해하던 달래(우리 집 강아지)를 집에 뉘어주고 나도 내 방에 누웠다. 또 문득 머릿속에 생각이 켜졌다. 여름이(첫 강아지)를 심장마비로 보내서인지,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잠이 확 달아났다. 깊게 잠든 달래를 보다가 움직임이 없을 때면 괜히 불안한 마음에 한번 툭 건드려보기도 했다. 나의 손짓에 쭈욱 기지개를 켜며 날 쳐다보는 달래의 눈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또다시 잠든 모습을 지켜보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날을 새 버렸다.


대체로 잠들기 전 반짝 켜지는 생각들은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을까에 대한 걱정이다. 분명 잃는 과정들이 쉽지는 않았던 듯한데 내게 남아있는 마지막 순간들은 생각보다 허무했고 초라했다. 그래서인지 문득, 꽤 자주 나의 누군가가 혹은 내가 갑자기 숨을 잊는 순간이 올까 봐 두렵다. 그럴 리 없다고 괜찮을 거라며 잠을 청해 보지만 아무래도 물음표의 힘이 더 센 듯하다. 생각이 켜지는 날이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지쳐 잠들곤 한다.


모두가 오래도록 함께 남아주길 바라는 염려가 소중한 이들에게 닿길 바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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