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 내 아이에게 써주는 편지, 그 후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과제가 참 많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졸업 전 우리 반끼리 문집을 만드는데 부모님의 글을 싣기도 했다. 아빠가 어릴 때 시골에서 친구들과 수박 서리한 이야기, 잠자리 잡으며 놀았던 이야기는 문집에 실렸고 선생님이 아버님이 글을 참 잘 쓰신다며 조용히 칭찬해주셨던 기억도 있다. 글뿐만 아니라 글씨도 명필이었던 터라 학교에서 부모님에게 내어진 과제는 대부분 아빠가 손으로 써주곤 했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동생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노릿해진 종이에 <20년 후 내 아이에게 써주는 편지>라는 제목 아래로 익숙한 아빠의 글씨가 빼곡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내 눈물 버튼은 눌러졌다. '사랑하는 우리 자근 공주❤︎'로 시작한 편지는 한 줄 한 줄마다 눈물 버튼을 더 세게 눌렀고 결국 그날 눈이 안 떠질 정도로 울어버렸다. 그때의 나는 고작 스무 살이었는데, 편지 중간 즈음 '아빠, 엄마, 언니, 형부(?)랑 같이 캠핑카 타고 멋지게 드라이브 한번 가보자~'라고 적힌 구절에서 나는 무너졌다. 형부는 생겼고, 아빠는 사라졌다. 아빠가 꿈꾸던 삶이 으스러진 것만 같았다.
편지를 쓴 다음 해에 암 판정을 받았고, 쉰 나이에 칠순을 상상하며 쓴 편지는 그 어느 문장도 현실이 되지 못했다. 건강관리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도, 캠핑카 타고 전국일주 해보자던 말도, 아빠 나이의 앞자리가 70이 되는 날도.
아빠- 뭘 하든 믿어주겠다던 큰딸은 아빠도 좋아할 만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을 했어. 뭘 해도 귀여워하던 작은 공주는 훌쩍 커서 사장님이 되었어. 아빠가 없어도 시간은 흐르니까 나도 언젠가 아빠 나이를 뛰어넘는 날이 오겠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목소리는 기억도 안 나고 보고 싶은 마음은 갈수록 커지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