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반가운 비가 내린다. 며칠 미세먼지로 갑갑한 하늘이었는데 차라리 비라도 내리면 좀 덜 우울하지 않을까 싶었다. 낙엽이 우수수, 사정없이 떨어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차피 평생 머물러 있을 단풍도 아니니.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하늘이 맑고 파아란 것, 춥고 더운 것, 흐리고 스산한 것들 등등.
아이를 데려다주고 친구의 작업실로 향하는 길, 빗방울이 발끝에 떨어진다. 운동화의 앞코가 촉촉해진다. 엄지발가락부터 양말이 젖어 들어간다. 운동화가 젖는 것쯤 아무렇지 않아 하며 비 오는 날의 산책을 즐겼는데, 언제부터인지(아마도 해가 거듭할수록이겠지) 발이 시린 게 싫어지기 시작했다. 해서 일부터 도톰한 양말을 꺼내 신었다. 가을이 가고 있는 이 시간을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고만 있기는 싫었다. 계절 속으로 들어가는 일, 계절에 머무는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은 계절을 겪어낼 수가 없다, 나는. 장면 전환. 지난번 글 모임에서 나눴던 얘기가 여전히 나에게 진행 중이다. 장면 전환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완전히 머물다 빠져나오는 것. 옷깃에 발치에 젖어든 장면을 다음 장면과 그다음 장면, 또 다 다음 장면에 걸쳐 서서히 말리지 않으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옷을 갈아입듯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머물러야 한다. 젖은 발걸음을 옮겨 가을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 차를 한 잔 마시는 동안 양말은 조금 말라 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조금 더 빨리 마르길 바라본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1월이 유독 어려운 것은, 장면 전환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늘 순간의 계절. 두 계절의 공존. 어느 하나를 두고 어느 하나에게 가기에 발걸음이 쉽게 옮겨지지 않는 달. 가는 가을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숫자처럼 내리는 비속에 서서, 발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낙엽에게 고한다. 안녕,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