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 May 19. 2022

죽순이 올라오는 때에,

1.

동네 책방에서 하는 글 모임을 2018년에 시작해서, 8 시즌, 4년을 채우고 (나만) 마쳤다. 에세이도 쓰고 일기도 쓰고 시도 쓰고 소설도 썼는데 마지막 8번째 기수에서는 그전에 쓰던 것과는 조금 다른 글이 되었고(주로 달리기… 한창 뛰던 시절이었다) 그때 같이 하던 동료가 ‘절기’에 관한 글을 쓰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아마도 달리기를 하면서 느낀 계절감이 글에 남아 있어서였을 테지만,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가끔 나는 절기를 떠올리게 됐다.

인디언들이 일 년 열두 달을 그들만의 언어로 명명했던 것처럼, 농사를 지었던 우리도 그렇게 절기로 계절과 달을 남겼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12개가 아닌 24개로 계절을 조금 더 세분했다는 점이다. 한 계절에 여섯 개의 절기가 들어가고, 보통 한 달에 두 개의 절기가 들어있다. 이번 달에는 입하가 있었고, 곧 이어지는 절기는 소만(5월 21일)이다.


네이버를 열어 소만을 검색한다. 지난가을에 저장한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 수확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보릿고개’라는 말이 남기도 했고, 모내기를 준비하기 위해 논에 물을 대는 때라는 설명을 읽다가, 이때 올라오는 죽순을 데쳐먹으면 별미라는 설명에 눈이 멈춘다. 온갖 나무들이 초록을 뿜어내는 시기, 인디언들도 5월은 ‘나뭇잎이 초록이 되는 달’ 혹은 ‘연두가 초록으로 변하는 달’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대나무만은 누렇게 변하고 만다. 죽순에게 모든 영양분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2.

스승의  선물로 동네 철학 선생님에게 드릴 카네이션과 화병을 부탁한 날이었다. 한눈에 보고 반해버린 꽃집에 들렀다. 꽃집이 있는 상가는 40  , 아파트가 지어질  함께 생겨 이제는 낡고 낡아 여기저기 떨어진 외벽 사이로 붉은 철골 뼈를 드러내고 있다. 깨진 계단 귀퉁이에 시멘트를 발라  낡아 보이는 데다 입구 조명도 딱히 없어 어두운 건물 이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는 아늑한 중정이 있고, 중정을 중심으로   모양의 상가 코너에 바로 내가 좋아하는 꽃집이 있다. ( 옆엔 보틀 샵도 있다) 꽃집 주인은 이번에도 너무 가득 담아서 종이 상자가 조금 찢어졌다며 미안해했지만, 붉은 카네이션과 분홍 작약이 담긴 화병은 충분히 예뻤고 나는 마치 내가 선물을 받은 이의 마음이 되어 약속 장소로 나섰다.

40년 된 상가 옆에는 입주한 지 2년 남짓한 신축 아파트가 있다. 30층 가까운 고층에 하얗고 반듯한 외관과 잘 조성된 조경, 뭐든지 다 새것인 아파트 안을 가로질러 가다 한 가족과 마주쳤다. 등산복과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가운데 서 있던 중년의 딸은 ‘아버지, 저기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세요’라고 말했고 노인은 다른 말을 했다. ‘아버지 지금 안 들리시죠? 저기서 커피 한 잔 하고 올라가시자고요.’ 딸이 다시 말하자 할머니가 ‘저기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재’ 라며 한 번 더 후렴구를 외쳤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들었을까, 뒤돌아보지 않고 가던 나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햇볕이 찬란한 오월의 아침이었다.


3.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에게 끝없이 말을 걸던 그 딸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날이 좋아 나선 외출 길이었을 테고, 그들의 봄나들이는 어렵지만 그래도 무사히 마무리되었겠지. 중년의 딸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아이들 저녁을 차렸을 테고, 자기 몫이 된 부모의 무게에 한숨도 나올 테고. 그러다 나를 떠올렸다. 나에게 어떤 무게를 줄 수 없었던 아버지를, 그럴 수 없었던 당신의 운명을. 내가 내 뜻을 펼치고 싶었던 때에는 발목을 잡는 것만 같았던 아버지가, 그럼에도 그렇게 말없이 사라져 버린 것은 딸의 한계를 알아서였을까. 너는 아마도 어려울 거라 생각했을까, 혹은 미안해서였을까. 운명이 하는 일을 내가 알 리 없지만 그렇게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는 마치 누렇게 변한 5월의 대나무처럼 그렇게 조용히, 세상의 모든 나무가 초록을 뿜을 때에 혼자 덩그러니 그렇게 누런 잎으로 변해 가며 나를 세상에 남겨두었나, 싶었다.

4.

인디언들의 5월은 ‘오래전 죽은 이를 생각하는 달’이기도 하다.

재건축이 되어 새로 지은 아파트 옆에 선 낡은 상가를 보며 이런 바람을 갖게 됐다. 감자탕집 고무 대야가 계단 한쪽에 열을 맞춰 서 있고, 붉고 노란색의 봄꽃을 한가득 내어 놓은 커피집의 풍경과 함께 줄넘기 학원에 가기 전 아이들이 중정에 놓인 평상에 앉아 요구르트를 마시고 가는 이 오래된 상가가 조금 더 남아서, 나에게 오래전 사라진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나도 5월엔 푸른 벚나무 잎 아래에서 누런 대나무 이파리를 떠올릴 수 있게. 소만이 오면, 태어나는 것을 축복하고 새것에 감탄하다가도 그렇게 오래되고 낡은 무엇과 그러다 사라지고 만 세상을 떠올릴 수 있게.




매거진의 이전글 봄 속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