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새로 생긴 도넛 가게에 들렀다가, 몇 년 만인지도 모를 만큼 오랜만에 옛 제자를 만났다. 제자라고 하기엔 쑥스럽지만, 그 녀석은 여전히 나를 '선생님!' 이라고 불러주니 일단 명칭은 그렇게 정리하도록 하자. 십여년 전에 누군가의 소개로 고3이었던 그 아이의 수학을 봐줬다. 야간 자율 학습 끝나고 보통 밤 10시 반쯤 시작한 수업은 12시 반이 훌쩍 넘어 끝나서, 서로 번갈아가며 졸기도 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고3 짜리 열 아홉 남자애로 보이는 그 아이를 드문드문 동네에서 마주치다가 몇 년 전 결혼했다는 걸 알았는데(옆에 여자친구가 아니라 아내라고 소개했을 때, 하아 내 나이…) 이번에 만났을 때는 두 아이 아빠가 되어 있었다(으아…역시나 또 내 나이).
- 와, 너 ** 맞지? 잘 지냈어? 너 아빠 됐구나!
- 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 어디 살아? 아직 여기 사니?
- 네, 이 근처 살아요. 선생님, 진짜 오랜만이에요.
쌤, 도 아니고 선생님이라니, 네 나이 무엇(그리고 내 나이 무엇)...여전히 성실하고 착한 말투의 그 녀석이 훅 들어온 것은 그 다음이었다.
-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어요, 쌤.
흡사 수능 모의모사 17번 문제 앞에서 '이거 안 풀려요, 쌤' 하는 열 아홉을 다시 마주친 것만 같았다.
- 사는 게 별 거 없어. 다 그런 거 같더라. 애들 크는 거 보면서 예쁜 짓 하는 거 보면서 사는 거지, 뭐. 담에 동네에서 술 한 잔 하자!
- 네. 학교 다닐때가 진짜 좋았던 것 같아요.
이쯤에서 나는 문제집 뒷편 해설지라도 몰래 뒤적이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너에게 뭔가 힌트라도 알려주고 싶구나. 그런데, 거 참...나도 알 수 없으니 말이야.
돌아와서도 내내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왜 우리의 삶은 짐이 되었을까, 풀어야 하는 최대 난제, 해설과 해답이 없는 문제집 같은 존재가 되어 눈 앞에 있는가. 그 질문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한나절을 보냈다.
나도 가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운데-신입생 기운이 뽈뽈 넘치는 애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그건 하나였다.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며 보내면 된다는 단순함을 알아버려서.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학점을 따고 레포트를 쓰는 게, 학교라는 담을 넘고 나면 졸업장과 함께 사라지는 그 과제물들이 이제는 스스로에게 부과되는 무엇이 되어 돌아온다. 실체가 없는 무엇. 점수도 없이, 나아지는 과정도 확인 할 바 없이, 그렇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으로. 그 안에서 끝없이 의미를 찾고 이유를 찾고 당위를 찾아내는 것. 어른이 되는 건 그렇게 스스로에게 무엇을 부과하고 확인하고 사는 것인가.
아침에 일어나 포털에 접속하니 오늘이 춘분이라고 알려온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때, 매화와 산수유가 만개하는 날이라(윗동네인 여긴 아직이지만)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한번 다녀간다는 그때. 봄이다, 이제, 봄이라고 소리내어 외치지 않으면서도, 슬며시 여기저기에 쑥이며 산수유와 생강꽃의 노란 빛, 매화의 희고 분홍 꽃망울 까지 봄의 기억을 뿌려놓는 틈새로 낮은 바람이 불어오는 때. 신입생의 기운에 덩달아 들썩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어떤 때를 다시 그리워하는 시간이기도 한 춘분. 본격적으로 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여전히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해서, 인생의 여름과 가을, 겨울을 마주할 몸과 마음이 아직 아니어서, 그어진 선 밖에서 서성이는 때. 그러나 낮속에 있다 한들 똑같이 12시간씩 나눠가진 날이니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12시간이 지나면 밤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니, 춘분이 되면 신입생의 마음을 품고 어색한 교복 옷 매무새를 만지는 손놀림으로 봄의 선을 넘어가보도록 하자. 전교 1등이란 목표 따윈 접고 좋은 친구 사귀고, 재미있는 동아리 가입하고, 단축수업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휴강의 은혜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 마음으로, 주저하는 선을 넘어보자고. 매년 새롭고 매년 어려운 삶의 봄 속으로 들어가보자고. 그 녀석과 맥주 잔을 기울이는 날이 오면, 그 정도 해설은 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