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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이지만 계속 글을 씁니다

또 한 권의 새로운 책을 준비하며

by 천성호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말했다.

“너 예전에 SNS에 올린 글 있잖아. 그 말이 진짜 위로가 됐어.”

뜻밖이었다. 나는 그 글을 언제 올렸는지조차 가물가물했는데, 그는 정확한 문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간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 오래 남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출간한 기성작가지만, 독립출판 서적이 대부분이라 여전히 이름 없는 무명이다. 출간한 책은 이제 대부분 절판되어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고, 내 이름 또한 어디서 크게 회자된 적은 없다.

가끔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일이 의미가 있을까. 책을 낸다고 해도, 읽히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새벽까지 원고를 쓰다가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는 날이면, 가슴 어딘가 작은 틈이 생긴 듯 시리고 허전했다.

에세이 시장은 점점 더 명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인가’보다 ‘누가 이야기하는가’에 더 집중한다. 셀럽이 책을 내면 곧바로 화제가 되고, 출판사들도 그들이 던지는 말과 글에 더 집중을 한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받은 대답은 늘 비슷했다.

“매력도가 부족합니다.”

편집자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차가웠다. 나는 얇은 종이처럼 구겨진 마음을 펼쳐보려 애썼지만, 구겨진 흔적은 그대로 남았다. 글이 나쁜 건 아니라고 했지만, 출판은 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나는 다시 원고를 문서함 속에 조용히 밀어 넣었다.

그럼에도 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내 문장은 순식간에 퍼져 나가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마음속에 내려앉아 오래 머물 수 있다. 우연히 내 글을 발견한 누군가가 잠시 문장에 마음을 누이고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모든 문장이 크게 울려 퍼질 필요는 없다. 어떤 문장은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지막한 온기가 된다. 어쩌면 내가 쓴 한 줄이, 누군가의 고요한 밤을 지켜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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