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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돌보기로 했다

수술 후 나를 돌아보는 시간

by 천성호

살면서 내가 응급차를 타게 될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사 치료로 버텨오던 허리디스크가 결국 도저히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악화되었고 그렇게 나는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진단명은 추간판 탈출증, 흔히 말하는 허리디스크. 의사는 MRI 사진을 보며 척추 뼈를 하나씩 짚어갔다. 네 번째 척추에 도달했을 때, 나는 구태여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앞쪽 번호의 척추들과 확연히 다른 모양이란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4번과 5번 척추 사이를 지탱하는 디스크가 심하게 돌출되어 있었고, 의사는 수술이 시급하다고 했다. 나는 별안간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하얀 페인트 통을 뒤집어쓴 것처럼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수술을 망설이는 내게 의사는 시간을 좀 줄 테니 생각해보라며 진통제를 투여하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나는 이틀도 채 버티지 못한 채, 밀려오는 통증에 결국 수술대에 몸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는 걱정 어린 반대가 쏟아졌다.

"다른 병원을 더 알아봐야 해."
“허리는 한 번 칼을 대면 끝이야."
"조금만 더 참고 버티다 보면 나을 수도 있어."


하지만 1cm조차 움직일 수 없던 내게 그런 말들은 현실감 없이 들릴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이 왜 그런 조언을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아프지 않을 땐, 이 고통이 얼마나 막막한지 알지 못했으니까.


다행히 수술은 무탈하게 끝났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방사통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나는 기뻤다. 물론, 약해진 허리는 여전히 예전처럼 탄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허허롭다는 느낌이 마음에만 있는거라 여겼는데, 수술 후 몸에도 허허로운 느낌이 들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의사의 말마따나 이제부턴 평생 허리를 관리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살아야하지만, 꾸준한 재활로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수술 후 병원에서의 재활기록 사진



몸이든 마음이든, 무너지기 전엔 반드시 주황 신호등이켜진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그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아직 견딜만해서, 별일 아닐 것 같아서, 혹은 애써 무시하는 성향이라서. 하지만 한 번 신호를 놓친 사람은 머지않아 또다시 신호를 마주하게 되고, 그때는 이미 적신호 앞에서 멈춰서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돌이켜보면, 나는 일상에 치이고 지친다는 핑계로 저녁마다 무심코 캔맥주 뚜껑을 당기곤 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은 보상이라 생각했지만, 그 시간만큼이나 나 자신을 돌보고 살피는 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실 '나'라는 존재는 규율과 기대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아주 작은 숨 같은 존재이지만, 그런 숨 하나하나가 모여 이루어지는 게 세상이기에 나는 이제부터라도 나를 조금 더 아껴보기로 했다.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지나쳤던 나에게, 오늘만큼은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보려 한다. 어쩌면 조금은 어색하고 낯간지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찻잔과 함께 스스로에게 사과를 건넬 용기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매일의 걸음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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