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소설가 김중혁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말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가장 아끼는 캐릭터는 ‘소설가 김중혁’이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춰섰다.
그는 이어 말했다. 방송도 열심히 하고, 다양한 일에 참여하는 것도, 결국은 그 캐릭터가 끝까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마치 자신이 자신을 돌보는 사람처럼, 그렇게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참 오래 남았다. 누군가 자신을 캐릭터처럼 아낀다는 건, 그것이 허구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진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 있다. ‘글을 쓰는 천성호’. 그는 나보다 조용하고, 말이 적고, 쉽게 지치지만 끝끝내 다시 돌아와 책상에 앉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천성호는 불쑥 나타났다가 한동안 보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느 새벽엔가 또 문득, 마음을 툭 건드리며 돌아온다. 그를 알아보는 건 언제나 나다. 그리고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더 단단했을지 몰라도 덜 나다웠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를 위해 다른 삶을 살아내는 중일지도 모른다. 낯선 자리에서 말을 건네고,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도 결국엔 그를 지키기 위해서. 그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그런 사람을 품고 산다.
조금 느리고, 쉽게 상처받고, 현실에선 자주 밀려나는 사람. 하지만 이상하게도, 삶이 낯설어질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그를 지키는 일이 종종 벅차더라도 그를 잃고 사는 건 더 먼 길을 돌아가게 만든다. 그 사람이 있는 쪽이, 결국 내가 가야 할 방향이었다는 걸 우리는 언젠가 알게 된다.
그러니-
너무 멀어지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지 말 것.
얇은 끈일지라도 지금의 나와 꼭 연결해 둘 것.
닿아만 있다면, 그는 꼭 나를 찾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