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시작

by 으나

내가 매일 밤 삼키는 이름들


‘리단정, 아라빌정 2mg, 유니토파정(토피라메이트 100mg), 리보트릴정(클로나제팜 0.5mg).’


매일 자기 전, 나는 이 약들을 한 움큼 삼킨다. 우울증 약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조울증 치료제가 섞여 있다. 나는 우울인지 조울인지 아직 ‘정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몇 달 전,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통해 심리상담센터를 다녔을 때, 상담 선생님은 내가 우울과 조울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나는 도대체 어떤 상태이지?‘를 따지느라 시간을 꽤 많이 썼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 시간을 명확한 진단보다는 왜 내가 흔들리고, 지금 이 파도 같은 우울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에 썼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도 상담은 여러 의미에서 소중한 시간이었고, 내 기질과 패턴을 조금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풀배터리 검사를 한다 해도 우울인지 조울인지, 혹은 ADHD인지 명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 증상이 늘 어딘가 경계에서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드라마처럼 갑자기 울다가 갑자기 웃는 사람은 아니다. 그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 우울한가


기억을 더듬으면, 우리 가족은 화목한 편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싸우면 아버지는 늘 언성만 높이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집안 가구가 부서지는 소리, 어린 자식들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던 험한 말들……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는 그저 순한 양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분에게 아버지가 왜 그토록 폭력과 폭언을 쏟아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날이 잦았고, 경제적으로도 늘 어려웠다. 늘 일하느라 힘드셨던 엄마는 쉬는 날이면 등을 돌린 채 누워만 계셨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깨닫는 사실이 있다. 우리 가족은 살면서 서로 ‘대화’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고등학생 때, 엄마가 한숨과 함께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어 버렸는지, 지금도 종종 그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더 처참한 이야기들도 많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그대로’ 내 우울의 원인은 아닌 것 같아서 여기에는 쓰지 않으려 한다.

정말 내가 무너졌던 순간은 따로 있다.


서른 살, 아버지가 사이비에 빠진 날


서른 즈음, 아버지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 기독교가 싫어서 크리스마스 날 집에 크리스마스트리 하나 놓는 것도 싫어하던 사람이 동네 미용실을 운영하던 사이비 종교 신도와 가까워지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그쪽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릴 때 교회를 다녀서 사이비 특유의 분위기나 행동 방식을 조금은 알고 있었던 나는 바로 이상함을 감지했고 가족과 친척들에게 알렸다. 그 결과 우리 가족은 갈라졌고, 부모님은 이혼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다.


급하게 독립을 하고, 짐도 거의 없는 7평 원룸 맨바닥에 이불만 깔고 누웠던 그날.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내 마음 안쪽에서 자책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아버지를 외롭게 만들었나?’

‘내가 조금만 더 말동무가 되어줬다면, 거기로 빠지지 않았을까?’

‘가족들이 다 아버지를 피하고 무시해도 나만이라도 옆에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아버지는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몸이 아프고, 경제적 부담을 홀로 짊어진 채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 큰 상실을 겪었다. 그런 타이밍에 누군가 ‘이 길을 믿으면 부귀영화를 얻는다’고 속삭이면… 그 허망한 말에 기대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날 베개를 흥건하게 적셔가며 울었다.

’우리가족이 이렇게 찢어지게 된 건 나 때문이다‘

‘그래서 죽고 싶다, 그런데 또 살고 싶다.’ 이런 두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한강 다리, 그리고 난간에 붙어 있던 희망 문구들.

극단적인 마음이 들 때 걸 수 있는 번호들.


우리 동네엔 그런 부스가 없었지만 명칭이 달라도 상담전화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하게 ‘생명의 전화’, ‘자살상담전화’ 같은 키워드를 검색했다. 그리고 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끝나고 다정한 여성 상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밤중에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사실만으로 눈물이 또 흘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