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상자

by 으나

6년이 훌쩍 지난 일이라 상담 전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쉽게도 나는 일기를 성실하게 쓰는 편이 아니었다. 다만 한참 흐느껴 울며 우리 집 가정사에 대해 털어놓았고, 죽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만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상담사님은 내 이야기를 차근하게 들으신 뒤 나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으나님은 고민 상자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상자에 고민거리를 자꾸 만들어서 넣고 있어요.”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예민했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 있었다. 무언가 잘못된 일이 생기면 누군가 나를 탓하기 전에 먼저 “이건 내 잘못이야”라고 말하며 질책을 피하려 하곤 했다. 아버지를 비롯해 또래 여자아이들에게서 받았던 잔잔한 질책의 기억이 그런 성향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는 나는 ‘고민 상자’를 만들어두고 이미 끝난 일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고, 별것 아닌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미리 걱정해 마구 담아 넣었다.


상담사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이 무너지는 건 이미 시간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사이비 종교 문제가 아니었어도 다른 이유로 틀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당시 우리는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했다. 언젠가 부모님이 이혼할 것만 같았고, 설령 함께 산다 해도 모두가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나 역시 성격이 맞지 않는 아버지와 계속 함께 살았다면 어느 순간 집을 나갔을지도 모른다.


고민 상자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조금 가라앉자, 나는 죽고 싶은 마음 외에도 깊은 우울감 때문에 병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상담 전화를 끊으면 이 감정이 다시 치솟을 것이고, 그걸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찾아온 우울감 역시 제어할 힘이 없었다. 문득 고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떠올랐고, 나 또한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상담사님은 내 거주지를 확인한 뒤 그 기준으로 병원 세 곳을 추천해주었다. 모두 동네 병원 수준이 아닌 큰 병원들이었다. 안내가 끝나고 감사 인사를 드린 뒤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나는 각 병원의 위치와 예약 상황, 의료진 정보를 찾아보고 잠들었다. 세 곳 모두 버스로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도 꼭 갈 생각이었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감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계속>



2025년 11월 25일 아침 8시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20만 원을 보내주셨다. 놀라서 바로 전화를 드렸고, 이야기하다 보니 다시 우울한 마음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힘들게 나를 낳은 날, 나는 또 우울하다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엄마도 혼자 지내며 우울할 때가 많다고 했다. 엄마도 나도,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소박하게라도 즐겁게 살아가면 좋겠다.


생일날 그린 케이크 그림. 생일 축하한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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