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세 곳 중 수원에 있는 정신병원을 골랐다. 여성 전용 및 알코올중독을 주로 다루는 병원이라고 하는데,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하지만, 전화를 받아주신 원무과 선생님이 친절하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내 마음은 툭 건드리면 와장창 깨지는 얇은 유리조각 같았기에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덜 상처받고 싶었다. 병원들은 다른 평범한 내과나 이비인후과처럼 편하게 내원하는 것과는 달랐다. 내원을 하려면 반드시 예약을 미리 해야 했고, 예약한다고 해서 바로 진료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과나 외과와 달리 선생님과 진료시간에 상담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예약 시스템이 필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화한 해당 주의 토요일 오전으로 예약을 했다. 경기도 어느 시골에 살던 나는 수원까지 좌석버스 두 대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우울증에 걸리면 대체로 움직일 에너지가 없는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동력이 되어 먼 길까지 가게 되었다. 6년이 넘는 일이라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일단 원무과에 가서 예약한 걸 확인한 다음, 병원에서 내 우울 증세가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검사를 했다. 검사 시간은 꽤 길었고, 어떤 검사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 각 가족 구성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적어보라는 질문은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적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중 하나의 질문의 답은 이렇게 썼다.
질문: 남동생은 본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답변: 애 같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남동생과 엄마는 외가로 갔고, 가족들이 살던 좁은 월셋집은 비워주기로 했다. 그런데 다섯 식구가 살던 집을 나 혼자 정리를 해야 했다. 사용하지 않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좁은 집을 보니 뭘 위해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쓰지도 않고 모아놓고 있었는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잡동사니들 사이에는 서류들도 있었는데 그중에서 남동생이 학교에서 작성한 프린트가 있었다. 가족에 관한 거였는데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는 거였다. 엄마나 아버지, 여동생은 모르겠고 나에 대해 쓴 건 정확히 눈에 보였다.
’큰누나는 애 같다.‘
이 짧은 문장을 보고 처음엔 화가 났다가 나중엔 운 것 같았다. 나는 첫째로써 동생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게 많았다. 내가 장녀라는 이유로 부모님 부재 속에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 주어진 것이 짜증이 나 내 멋대로 굴고, 말 안 듣던 동생들을 윽박지르고 때렸던 적이 많았다. 성인이 되어도 동생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는데 애 같다고 생각했다는 게 씁쓸하면서도 그동안 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것 같아 후회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