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의 3년
첫 우울증 진단을 받은 병원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다닌 정신과는 3곳이다. 첫 번째 수원의 병원에서는 대략 3년 정도 다녔던 것 같다. 나를 담당하신 선생님은 MBTI가 대문자 T일 것 같은 무뚝뚝한 인상을 가지셨다. 하지만 그동안 봬왔던 선생님 중에서 제일 나를 걱정해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툭하면 병원에 늦게 도착했는데 그럴 때마다 병원 사람들이 퇴근을 못한다고 잔소리하셨고, 우울증으로 인한 폭식으로 인해 살이 쪄서 더욱 우울하다고 하면 오트밀을 먹으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셨다. (이 말을 들을 때 진지하게 속으로 뿜었다. 선생님의 진료실 책장에 오트밀이 있는 거 보면 선생님의 주식인 것 같다.) 그리고 3년 동안 직장이 5번 이상 바뀐 내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해 주셨다. 또한 아버지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게 내 탓이라고 자책에 빠질 때, 적어도 99퍼센트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진지하고 조용한 어투로 말씀해 주셨다.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다른 환자들보다 나를 진료하실 때 상담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한번 진료하면 20~30분 이상은 소요되었던 것 같았다. 그만큼 많이 신경 써주면서 진료해 주시는 거였다.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종종 하셨다.
‘사람 나이 20대 후반을 넘으면 그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아요’
선생님과의 상담 때 나이가 많이 언급되었는데, 주로 인간관계가 어려워 충동적으로 직장을 때려치울 때 많이 말씀해 주신다. 내 나이는 이미 만으로도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나이에 맞게 커리어를 쌓고 좀 더 책임감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잔소리를 해주시는 거 보면 적어도 나이는 많지만 내가 아직 개선의 가능성이 있어서 그러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서울로 이사 오면서 거리상 계속 다니기에는 어려워 말도 없이 내원을 중단하게 되었다. 더불어 약 복용도 중단되었는데 그로 인해 중단 증후군이 나타났다. (만약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절대로 항우울제를 갑자기 중단하지 말라도 말하고 싶다. 어지러움, 무기력증,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이 왔다 갔다 하는 심리 상태와 불안감이 엄습해 와 일상생활하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다른 병원을 꾸준히 다니고 있다.
지금은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생각해 보면서 하루하루 성장하려고 노력한다. 충동적으로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지만 내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어른이기에 꿋꿋이 출근하고 근무한다. 우울증 약도 좋은 병원을 추천받아 내게 맞는 약으로 처방받아 영양제 챙겨 먹듯 빼먹지 않고 매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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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도착해서 대기석에 앉아 있으면 책 읽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다. 혹은 진료시간에 의사 선생님께 어떤 이야기를 말씀드려야 하는지 미리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 말고도 내 또래의 여성, 주부, 어르신, 혹은 어린 학생 등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대기석에 앉아있었다. 그들 중에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한눈에도 마음이 무너져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내원했는데 생각보다 대기자가 많아 1시간 가까이 진료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세상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참 많구나, 아는 사이는 아니고, 무엇 때문에 아픈지 모르지만 부디 이 사람들의 마음이 평온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